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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Oct 07. 2024

저건 에미도 문제야, 문제!

그러니까 결국 사람의 말 한마디가


가족들과 함께 신리성지에 갔다. 넓고 탁 트인 논밭을 보고 싶었는지도, 거기에 있는 작은 십자가를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전부터 책을 읽으면서 신리성지와 공세리성당에 꼭 가보고 싶었다. (혜진쌤과 심선생님 탓이기도 하다, ㅎㅎㅎ자꾸 떠나고 싶게 만드는 두 분!) 재밌게 읽은 책의 배경이기도 했고 교회를 다니지만 교회 안에서는 느끼지 못한 성당 건물 특유의 특별함을 좋아한다. 파이프 오르간  소리와 목조건축물이 주는 아늑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남양성모성당 대성당엔 미사 시간에 맞춰 들어가 보고 싶다. 연이은 연휴에 당진으로 함께 여행을 가서 미술관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오자며 기분 좋게 떠난 발걸음, 초록초록 모내기부터 시작했을 파란 논들이 황금빛 들판으로 변한 것만 봐도 기분이 좋았다. 아직 24K순금은 덜 된(?) 약간의 푸릇함이 감도는 논 밭이었지만 완연한 가을 들판을 달리는 기분, 마음도 풍성하게 꽉 차는 듯했다. 가을의 중심에 서있는 것 같았다. 





입구부터 눈이 트이는 곳, 신리성지 (당진) 





역시나 지루했던 차 안에서 시간이 힘들었는지 스프링이 튕기듯 튀어나가는 둘째, 여기를 대체 왜 오냐면서 투덜거리는 첫째 아이, 양쪽을 달래 가며 그래도 '오긴 왔다'란 생각으로 마음을 가라앉히며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2시간 정도 예상한 시간이 차가 막혀서 3시간 가까이 걸렸으니 내내 운전한 신랑도 표정이 영 힘들어 보였다. 내가 오자고 한 장소지만 이렇게 눈치 보고 여기저기 마음이 쓰이는데 왜 왔을까를 생각한 것도 잠시, 성벽 위를 걷겠다며 자꾸 오르는 선율이.





선율아, 안돼! 위험해!


 



오솔길이나 얇은 보도블록 테두리만 봐도 언제나 올라가서 걷고 싶어 하는 아이라 한쪽 벽돌로만 이뤄진 성곽길이 분명 시선을 끌었을 거다. 한쪽에서 보면 잔디밭이지만 점점 좁아지는 길목 아래는 바로 절벽처럼 높은 위치라 못 걷게 아이를 단단히 잡았다. 자, 어디로 시선을 끌어볼까 하면서 넓은 잔디밭과 곳곳에 세워진 성인들의 동상이 있는 작은 처마 같은 장소에서 뛰어놀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열심히 또 거길 도전해 보겠다고 오른다. 아래쪽에서 불안하게 지켜보다가 다시 위로 올라가서 아이를 잡아서 부르는데 성지 순례를 마친 한 무리의 어르신들이 지나가면서 한 마디씩 하셨다. 위험해 보이니 내려오라고 손짓하며 이야기하는 중에 어떤 할아버지께서 내려오라고 선율이를 꾸짖다가





저건 애도 문제고 에미도 문제야, 문제! 쯧쯧





순간 선율이 발이 한쪽으로 기우뚱, 나는 덥석 아이 목덜미 옷을 잡아당겨서 내쪽으로 안았다. 개구쟁이 아이를 키우면서 내 손안에 안 잡히는 아이, 통제력을 상실한 엄마로 엉엉 운 적도 있지만 아이가 여섯 살이 될 동안 한 번도 직접 대놓고 들어본 적 없는 말. 




에미도 문제




엄마도 아니고  에미라, 방언일 수도 있지만 욕 같기도 한 그 말에 문제보다 '에미'란 단어에 움찔했던 것 같다. 그 말이 스치는 찰나, 아이는 마침 또 실수로 발을 헛디뎌서 떨어질 뻔하기도 했다. 이내 균형을 잡았다 하더라도, 내 눈과 손이 아이 옆에 바짝 쫓아서 따라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놓쳤다면, 아이가 실수했다면 분명 팔이나 다리가 크게 다쳤을 것이다. '성지'인 만큼 가족 공원 놀러 간 기분이 아니라 찬찬히 둘러보고 오는 것이 맞지만 우리 아이들 외에도 다른 무리 아이들이 왁자지껄 위험하게 놀고 있었는데 이렇게 사람을 대놓고, 하...


사실 그 뒤로도 열심히 아이를 따라 달려가느라 다 까먹고(잊고^^) 몰랐다가 오늘 우연히 친정식구들과 단체 톡방에서 신리성지 이야기하다가 그때 일이 생각났다. 여태껏 극성 투성이 아이를 키우면서도 한 번도 안 들었던 말을, 뭐 뒤에선 욕을 했을지언정 앞에서 대놓고 나를 문제 에미 취급한 사람은 없었는데 성당 성지 순례에서 들었다고 스치듯 말하다가 꺼내보니 기분이 나쁘기도,  더 심한 상황에서도 나와 아이에게 배려해 준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좋은 사람들만 만난 거구나, 그 할아버지 역시 아이를 오히려 같이 걱정해 준 마음으로 꺼낸 말일 텐데 말이 진짜 무서운 힘이 있는 거구나 깨달았다. 


원래의 성격 같으면 조금만 기분 나빠도 불같이 화를 내고 부당하다고 따지고 사과를 요구하는 성격인데 아이 둘을 키우면서 순간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서 어디 화낼 틈도 없이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 기분이다. 덕분에 성격이 좀 더 둥글해졌으니 아이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인가, ㅎㅎㅎ (그냥 웃지요)



우리 엄마도 가끔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전철 안에서 유난히 소란스럽고 신발 신고도 좌석에 서있는데 아무 조치를 하지 않는 엄마에게 저런 말을 하곤 했다. 물론 돌아와서 우리끼리 있을 때 한 말이지만,





그건 완전 엄마 문제야, 애 교육을 똑바로 시켜야지! 




어린아이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말 잘 듣지 않으면 부모탓, 그중에서도 엄마 문제가 맞는 거구나 스치듯 들었다. 대부분 주양육자가 엄마일 테니. 우리 신랑말처럼 옆에 신랑이 아이를 보면서 성곽 길에 서있었다면 아마 그 할아버지가 들리지 않게 소곤소곤 일행에게 작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뭐 그런 건 다 별게 문제고 내가 하려는 말은 나도 아이를 낳기 전에는 동의했고 지금도 끄덕끄덕 맞는 말이라고 느낀다는 점이다. 



막상 나도 아이를 키우다 보니 말 잘 듣는 아이도 있지만 선율이도 4살 때까지 신발을 벗지 않고 현관에서부터 신발을 신은채 집이고 어린이집이고 교회고 전부 뛰어들어갔다. 그걸 가르치는 데만도 몇 개월의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대중교통을 못 태운 건 물론이고. 말을 심하게 안 듣는 애들도 있다. 엄마가 아이에게 방법을 못 찾기도 하고 기다리는 중인데 거기에 비난의 화살까지 퍼붓는 건 말이 화살이 돼서 날아와서 상처를 만드는 것과 같다. 나는 선율이를 낳고부턴 친정 엄마의 다른 아이들을 포함, 한 번 본 적 없는 공중도덕에 소홀한 엄마를 싸잡아 비난하는 거에 괜히 발끈하곤 했다. "왜 다 엄마 탓 이래?!"


난 그 말이 유독 왜 이리 싫었을까. 

말 한마디가 스쳐가는 바람이 아니라 순간 나를 움찔하게 했고 만약 우리 아이가 사고가 난다면 달려와서 걱정해 주고 조치를 도와주는 사람들 보다




거봐라, 네 탓이다, 내 말처럼 됐지!




이렇게 비난할까 봐 두려워진 마음이 앞섰는데 순간이어도 불안과 초조, 인류애마저 잃게 만드는 말. 그래도 감사한 건 금방 잊고 또 다른 거에 몰두해서 스치듯 안녕할 수 있었단 거고, 다시 떠올린 덕분에 이렇게 글을 쓰고 글감이 됐다는 거다. 한 번쯤 생각해 보고 떠올려보고 왜 싫었지, 뭐가 기분 나빴지 들여다보게 되는 말속에 가장 큰 두려움은 진짜 그 말처럼 내가 그렇게 될까 봐였다.


아, 내가 우리 아이가 다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속상한데 문제아 에미, 엄마 잘못 100% 사람으로 손가락질받고 그런 말을 듣게 된다면 견뎌낼 자신이 없어서 더 불안하고 긴장하고 내내 초조하기도 했던 마음이었구나. 








다정한 말 한마디, 따뜻한 말 한마디, 좀 더 순화된 말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마저 녹이고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주는 것 같다. 열심히 성당 안을 보고 나오면서 작은 기념품 가게에서 한 수녀님께서 우리 선율이를 보면서 말씀하셨다.




엄청 예쁘네, 아가, 우리 간식 하나 골라볼까?



작은 바구니 하나를 내미셨다. 안에는 다양한 과자와 사탕, 작은 마들렌도 보인다. 쭈뼛쭈뼛 아이가 망설이자 괜찮다고 자꾸 권하시고 고르라고 하신다. 친절한 간식 선물에 아이가 하나를 고민 끝에 고르자,




하나만 더 골라보자, 또 고르고 싶은 거 가져가. 




그렇게 세 번이나 더 고르게 하시곤 포도맛 사탕, 찹쌀과자, 마들렌 빵까지 챙기고 뿌듯한 표정으로 나온 선율이를 예쁘다고 쓰다듬어주신다. 결국은 사람의 말 한마디가, 또 작은 행동이 내 마음의 어두웠던 그늘을 씻겨 나가게 하고 그 덕분에 나도 '문제 에미'란 말은 깜빡하고 잊고 어딘가 던져놓을 수 있었구나. 기념품을 사지도 않았는데 온전히 친절을 베풀어주신 그 수녀님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러니까 결국 또 사람으로 돌아오는 내 마음과 발걸음은

사람의 말로 머물었다가 사람의 말로 허물어졌다가, 다시 일어나기도 한다. 





기념품 가게에 계셨던 수녀님, 감사합니다





오히려 그 어르신께 바로 대거리할 찰나도 없이 아이를 챙겨야 했던 내 상황에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아빠는 날 보고 조금만 기분 나빠도 어른이고 애고 할거 없이 싸운다고 그만 좀 싸우고 다니라고 하셨는데, 바로 따지려 들고 사과받고 싶어 하는 내 태도도 누군가에겐 또 당황스럽고 혼돈스럽고 가시처럼 박힌 하루였을 수도 있겠단 생각에.



나도 그 수녀님처럼 아이들 간식으로 사탕이나 작은 과자, 젤리를 넣어가지고 놀이터로 나간다. 조금 위험해 보이고 엄마에게 떼쓰는 아이가 있다면 비타민 하나라도 건네주면서 '이거 먹고 얼른 엄마 따라 가자~' 이렇게 말해줘야지. 아, 나는 이미 나에게 이렇게 해준 엄마들도 정말 많이 만났구나. 덕분에 재이 엄마랑도 친해질 수 있었고. 고맙고 귀한 인연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많은 걸 배우고 찾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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