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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Oct 08. 2024

믿음

어둡고 길 모ㄹ니

멈춰있지만 가고 있는 것

끝난 것 같지만 다시 시작인 것

두려움 있지만 나아가는 것

떨리는 마음 다독이는 것


작아질 때 어깨를 펴는 것

초라할 때 하늘을 보는 것


수많은 실수에도 굳건해질 거라는 것


조금 더 자라났다는 것


언젠간 꼭 빛날 거라는 것

아니 지금도 빛나고 있다는 것

포기하지 않고 걸어갈 때 어느 날

자연스레 나를 찾아오는 것


불완전하지만 반듯해지는 것

어그러진 맘 다시 붙잡는 것

아픔 있지만 견뎌보는 것

나아질 거라 되뇌는 것

              

             …


포기하지 않고 걸어갈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설 때

어느 날 어느 날 어느 날

자연스레 나를 찾아오는 것


『믿음』 커피소년 / 2019.06.05






믿음을 표현한 많은 노래, 찬양들이 있지만 나에게 제일 와닿았던 가사는 바로 이 커피소년의 《믿음》이란 곡이다. 우연히 라디오를 듣다가 이 노래를 알게 됐는데 첫 소절부터 마음을 빼앗겼다. 하루종일 이 노래를 듣고 가사를 듣다가 눈물이 터졌다.

당시에 마음이 힘들었었나, 뚜렷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던 건 확실하다. 


'믿음'이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아도 오히려 캄캄한 암흑에서 더 빛난다고 생각했는데 

예를 들어 감기에 걸렸을 때는 감기 걸렸네 하고 후다닥 약을 먹고 간절히 기도하지 않지만 더 큰 병이 걸렸다고 하면 신을 붙드는 심경으로 눈물 콧물 다 쏟아내고 기도의 마음이 간절해지는 것처럼,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멈춰있지만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이 무너진 마음에 위로가 됐던 것 같다. 제자리 상태, 아니 몇 보 후퇴의 자리 같지만 사실은 계속 나아가는 마음이 믿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무너졌던 마음이 재생할 수 있고 다시 마음을 다잡겠다는 생각에도 이른 것 같다.





대단한 주교님도 신부님을 통해 믿음을 배운 성도도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관심도 없는 신리성지에 왔다고 툴툴거리던 선재도 성당 아래에 있는 미술관을 보더니 다시 집중 모드로 바뀌었다. 죽을 각오로 바다를 건너고 목숨을 걸고 믿음을 전하러 온 선교사님들의 이야기, 선교사님들을 통해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그 이유로 죽음도 피하지 않았던 신자들의 이야기가 그곳에 남겨져 있었다. 





거대한 성화를 하나씩 감상해 본 시간 볼 수 있다 (선율이는 의자에서 카봇을 가지고 노는 중;;)





나는 입구 쪽에 있는 한 그림에서 잠시 멈칫했다.





강경 포구를 통해 입국한 선교사들




누가 봐도 외국인데, 유달리 새하얀 피부에 파란 눈을 가진 외국인들이 조선에 첫 발을 내딛게 된 순간, 그것만으로도 감격스럽지만 아예 자신의 존재마저 지워야 했기에 저렇게 상복으로 갈아입고 삿갓 같은 걸 쓰고 들어왔구나. 얼굴을 가리는 것을 넘어서 어깨까지 덮을 정도로 큰 방립을 단단하게 쥐고 그 얼굴과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어떤 마음으로 바다를 건넜을까. 신기하게도 목숨을 걸고 온 사람들의 옷차림이 우리의 상복이었다는 점이다. 대단하고 떠들썩하게 오지 않아도 신분을 감출 방법이 없었기에, 금방 탄로 날 신분이었지만 죽을 각오를 가지고 죽으러 온 것이다. 낯설고 경계하는 사람들 틈에 들어가기 위해 조선으로 들어온 선교사님들 역시 평범하게 믿음을 지켜오고 자란, 부모님께 사랑받고 귀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누군가의 첫걸음 덕분에 수많은 죽음으로 이어진 행렬 가운데서도 믿음은 살아남았기에 나도 지금, 믿음을 배우고 기도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니 그림 속 파란 눈동자를 그저 무심히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끝난 것 같지만 다시 시작으로 돌아올 힘을 주는 건 역시 믿음 밖에 없다. 두렵고 떨리지만 마음 한 번 꾹 먹고 다시 다짐할 수 있는 것도 사람의 신념뿐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점점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믿어주고 옆에 있어주고 기도해 주고 응원해 주는 게 전부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 옆에 머물 수 있는 시간보다 독립해서 날아갈 시간도 머지않았을 거고 얼굴을 보고 싶어도 마주하고 싶어도 지금만큼 볼 수 없다는 것도, 그래도 그런 순간이 오더라도 그때도 기도해 주고 아이의 마음을 응원해 주고 단단하게 자라주길 믿어주는 게 결국은 내 자리 역할이 아닐까. 걱정이야 될 수 있지만 걱정과 믿음도 종이 한 장 차이듯 내가 뭘 선택할지 정할 수 있다. 그들 역시  부유한 포도원을 가진 신앙심 좋은 가정의 자제들로 그대로 프랑스에 머물고 거기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었지만 또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그 선택이 자기 자신만을 위한 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선택을 해서 처음 들어본, 알지도 못하는 나라 조선으로 온 거겠지. 라틴어를 처음 들어보고 배우는 조선사람들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재밌었고 그렇게 성서를 읽기 위해 배운 라틴어로 생긴 믿음들이 쌓여 결국 목숨을 거는 일이 됐다. 




엄마, 난 믿음은 있는데 구원의 확신은 없는 거 같아. 믿음은 뭘까.




언젠가 '구원의 확신'에서 혼자만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고 의기소침해하던 선재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누구보다 솔직한 그 표현이, 질문들이 아예 시작조차 던져본 적 없는 사람보다 더 빛날 날이 올 거라 믿는다.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서 선교사님들이 한글 공부를 한 흔적 / 혜진쌤이 보내준 자료




어둡고 길 모ㄹ니 나를 도아주쇼셔

어마니 사랑해요



아, 어린아이 같은 이 글씨체도 얼마나 뭉클했는지 모른다. 사람, 사랑, 아기를 쓴 글자들이 친숙하게 느껴졌고 엄마가 보고 싶었구나 느껴지자 감동의 마음이 밀려왔다. 선교사님들도 날마다 믿음을 다잡고 어둡고 길이 보이지 않아 몰랐지만 멈춰있기보단 걸어가는 걸 선택한 게 아닐까. 날마다 넘어지고 무너지고 그렇게 다시 일어난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와서 단련되는 거,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빛날 수밖에 없다. 믿음은 넘어질지언정 쓰러진 채로 고개를 처박고 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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