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한 번 들어주오 〔자화상 두 번째〕
그런 글이 있다. 단숨에 숨도 참으면서 읽어 내려갈 만큼 몰입해서 읽는데 읽을수록 끝나지 않길 자꾸만 바라게 되는 이야기. 내겐 최은영 작가의 소설이 그렇다. 최은영의 소설 내게 무해한 사람을 빌렸다. 은행잎같이 노란 표지에 어떤 사람의 뒷모습인지조차 모르는 그 표지에 절로 손이 갔다.
금요일, 국립중앙 박물관 인도관과 한국관에서 수많은 불상, 불두를 보고 오면서 전철 안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조마조마 끌리는 마음을 끊어내기 힘들었다. 최은영의 소설은 언제나 그렇다. 조마조마 끝나지 말았으면 하는 이야기, 언제나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결말로 치닫는 이야기가 끝날 즘에 또 끝이 아니라고 말한다.
책을 덮으면서 예전에 내가 썼던 글쓰는 오늘 Season10 우리들의 글루스 II에서 썼던 '나의 자화상 쓰기'가 떠올랐다.
그 글의 마지막은 이렇다. 두서없이, 시간 순서나 맥락도 무시한 채 쭈우욱 내 이야기를 쓰고 이렇게 마무리 짓는다.
이랬다, 저랬다.
넘어졌다, 일어났다.
슬펐다, 울었다, 아무렇지 않았다, 그냥 웃었다..
이상하고 신비로운 이 세계가 아직 궁금하고
내가 살아온 조각을 기록하고 싶은
이것이 나의 자화상.
그때도 이렇게 글을 맺었다.
내 소개 말고 내 이야기 한 번 자화상 글을 읽고 싶다면 여기
내가 사랑하는 최은영 작가가 이 글을 봐준다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도 덧붙이며.
시작해 본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기혜진이라는 키 큰 아이 무리와 함께 도시락을 먹었는데 어느 날 도시락 가방을 들고 그 애 자리에 가니 '오늘부터 너랑은 안 먹어, 다른 애랑 먹어.'라는 일방적 통보를 들었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거울이 있다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가, 화가 나기도, 민망하기도 눈물이 터질 것도 같았는데 그날도 혼자 밥을 먹진 않았다. 누군가 다른 아이들이 내 이름을 불러 주었던가, 곧장 그리로 달려가 그날 하루를 그냥 무사히 보냈던 생각이 든다. 그 이후부터도 당황스럽고 민망한 순간에도 나를 불러주고 찾아주는 사람들 곁으로 아무렇지 않게 갔고 누군가 무리에서 거절당한 아이가 있을 때는 내가 먼저 그 이름을 불러주기도 했었다. 혜미야, 나랑 같이 먹자, 고등학교 시절 날라리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혜미가 혼자 밥을 먹는 걸 보고 내가 먼저 같이 먹자고 했는데 그때 나는 도시락을 먹었던 다른 친구들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그냥 혜미 이름을 불러줬던 것 같다. 정확한 그때의 분위기, 얼어붙고 어색한 순간들, 따돌렸던 아이들의 이름만큼은 빠짐없이 기억한다. 나도 당한적 있었던 아픔, 연민의 순간, 예민하리만큼 주변의 측은하고 안쓰러운 순간에 빠진 친구가 아닌 타인의 괴로움을 볼 때 마다도 외면하기 싫었다. 생각하기도 전에 누군가의 옆으로 갔고 이름을 불러주고 있었다. 정작 나는 초등학교 시절 이후부터는 누구랑 놀지 누구랑 밥을 먹지, 이런 고민과 걱정을 지운 채 살았던 것 같다. 아, 그게 상처받기 싫어서 일부러 더 그렇게 했던 거구나. 단짝을, 무리를 만들기 싫어 했지만 결국 나에게도 여기저기 무리가 생겼다.
박물관에서 돌아오는 날 **씨가 자기와 같이 하하 웃고 좋게 떠들었던 무리의 사람들도 길에서 보면 못 본 척 자기에게 인사조차 안 한다는 말에 가슴 한편이 찌르르 아렸다. 조금 전까지 하하 호호 어울리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무표정의 사람이 된다는 건 슬프고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언니도 중학교 시절 반에선 살갑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예쁜 친구를 전철역에서 마주쳤는데 그 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돌려버린 채 그냥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간 적이 있기에. 여린 마음의 언니는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친구가 아닌데 이름을 불러준 게 창피해서였는지 저런 모범생스러운 애(당시에 언니는 얌전하고 인기가 많은 모범생 스타일이었다)친구라는 게 쪽팔려서인지 언니를 보고도 지나친 그 언니를 보며 그런 생각을 잠시 했었던 것 같다. 그 언니는 모델처럼 지나치게 예쁜 얼굴을 가졌던 것도 기억난다.
중학교 때 염색도 하지 않는데 맨날 머리를 염색했다고 나를 잡는 선도부 애들이 정말 싫었다. 죽일 듯이 살쾡이 눈으로 노려보고 미워했는데도 똑같은 애는 매번 잡았고 선배에게 개길 수 없어서 내 자연산 머리라고 하면 보내주는 경우도 있었고 따라오며 끝까지 잔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날은 학주에게 걸려 교무실까지 끌려갔는데, (선생님 이름은 전부 다 생생하게 기억하지만 여기에 실명조차 쓰기가 싫다) 그날은 머리카락 염색이 아니라 갈색 핀을 꽂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여중과 여고 비스므레 한 데를 나왔는데, ( 고교시절엔 남녀공학이었지만 남/녀 분반이었기에 여고를 나온 것과 다름없었다) 여중에선 무조건 까만색 똑딱 핀만 해야 한다는 그지 같은 규정이 있었다. 머리카락 색과 통일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머리를 기르고 싶으면 양갈래로 단정하게 땋아서 몇 센티가 규정이었고 귀밑 오 센티인가가 단발머리의 규정이었다. 야, 갈색 삔, 뻔히 명찰이 보이는데도 나를 갈색 삔이라고 부르는 선도부 앞에 다가갔더니 핀을 빼고 반이랑 이름을 적으래서 왜 나를 잡았냐고 악착같이 묻자 결국 학주가 나를 교무실에 데려갔다. 염색 머리부터 물고 늘어지고 계속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나에게 반항적이라고 가방 검사를 하겠다고 했다. 가방 안에는 만화책 몇 권이 전부였다. 내가 날라리도 아니고 그냥 평범하게 학교를 오가는 심지어 공부도 못하는 애가 아니란 걸 알자(심지어 반장이었다!) 그냥 보내주려 했지만 갑자기 울컥해진 내가 선생님에게 사과를 받고 싶어서 개기고 개기다가 결국은 가위로 앞머리가 잘리고 말았다. 핀을 뺐더니 앞머리 규정에 어긋났드는 이유로. ㅋㅋ 쓰면서도 말도 안되고 헛웃음이 나는 별나라 사건 같은 일을 나는 격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머리카락이 하나도 소중한 인간이 아니었는데 누군가 나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자기의 멋대로의 판단으로 기분이 나쁘다고 자른 머리가 너무나 폭력적으로,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길길이 날뛰고 엉엉 울고 사과를 받고 싶다고 난리 친 중학교 시절. 아빠는 그때 내 모습이 너무 안쓰럽고 열받아서 학교에 전화를 할까 몇 번 고민했다고 한다. 후에 아빠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고 왜 전화를 안해줬냐고 따지기도 했다.
*학생이 왜 가방에 체육복, 만화책만 가지고 다녀?
-교실에 사물함이 있는데 왜 책을 무겁게 다 가지고 다녀요? 전 오늘 시간표도 다 외우고 있어요, 말해볼까요?
어리고 반항적인 내 목소리가 전부 툴툴거린다는 걸 알았지만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큐빅이 달린 것도 리본이 달린 것도 아닌 왜 민 무늬에 튀지도 않은 일자 갈색삔이 교무실까지 불려 가서 학주에게 앞머리를 잘릴 일일까. 아니, 애초에 큐빅이나 리본이나 튀는 색깔 머리핀이 잘못이라는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머리 색깔에 맞춰 까만 똑딱 핀이 허용되는 거면 내 머리는 자연 갈색인데 그럼 갈색삔이 당연한 거 아니에요, 나는 눈동자도 머리카락 색깔도 유난히 튀는 갈색이긴 했지만(신기하게도 눈이 쌍꺼풀이 없어서 혼혈처럼 보이는 외모가 아니었음에도 머리가 꽤 진한 갈색에 눈동자도 흐린 갈색을 하고 있었다) 그때처럼 내 눈동자와 머리카락을 전부 까맣게 염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누군가의 타고난 자체를 바꾸고 싶게 만느는거야 말로 가장 잔인한 폭력이구나, 이유도 없이 나랑 같이 도시락을 안 먹겠다고 밀어낸 게 여왕벌 놀이인지 뭐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나는 그때 상처받고 엉엉 울고 싶었던 거구나, 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람을 읽으면서 알았다. 뒤에 적힌 작가의 말이,
이 책에 실린 일곱 편의 소설에는 내가 지나온 미성년의 시간이 스며있다. 쉽게 다루어지고, 함부로 이용될 수 있는 어린 몸과 마음에 대해 나는 이 글들을 쓰며 오래 생각했다. 어린아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고독을, 한량없는 슬픔과 외로움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른이 된 우리 모두는 그 시간을 지나왔다.
까지 읽는데 눈물 방울이 툭 하고 떨어졌다. 아, 최은영의 소설이 여태껏 전부 좋았던 이유가 내가 겪어온 유년의 어느 한 자락, 사춘기 시절이 닿아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심지어 작가가 태어나고 자란 광명이 우리 집 근처 고척동 개봉동 근처여서 친근해서만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억압, 폭력 속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고 피해 끼치지 않고 피해받지 않고 싶지 않은 내 마음과 닿았던 거구나, 그 모든 폭력으로부터 자유를 지키고 싶고 끝까지 남은 나의 뭔가 하나만을 악착같이 덤벼들고 싶어 나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단어 하나 못 외웠다고 따귀를 갈기는 선생님들을 보며 나에게 저렇게 하면 신고를 해버리거나 교실을 뛰쳐나가야지 다짐을 했던 건 내가 전혀 반항적이거나 이상해서가 아니었구나.
84년생 작가와 나는 세 살 터울 진 81년 생이지만 나의 이후로 살아온 3년 동안도 학교에서, 삶에서 억압된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날 길 없었던 약자로 살아가야만 했던 아이, 청소년, 여자, 이런 문제들이 조금 더 민감하게 다가온다.
어렸을 때 집에서 뭔가를 잘 흘리고 엎지르는 아이였는데 친구 집에서도 지연이 집에서도 초대받아 건네준 쿠키와 우유를 내가 또 다 쏟고 말았다. 찡그리고 내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욕을 했던 지연이 엄마와, 아무렇지 않게 그걸 닦고 다시 우유 한 잔을 따라주는 친구, 우리 엄마도 늘 흘리고 쏟을 때마다 불같이 화를 냈기에 나는 그게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다른 엄마에게까지 욕을 들어야 했던 상황이었던 걸까. 그 뒤로 지연이는 나에게 몇 번 더 같이 놀자고 했지만 나는 그냥 자연스럽게 그 애를 피하고 그 애 집에도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속상했던 마음을 나눌 수가 없었다. 너네 엄마가 준 상처 때문에 나는 갈 수가 없어, 가기 싫어,라고 말하지 못했다. 어색하게 웃으며 괜찮다는 얼굴로 끝까지 나를 챙겨준 지연이 얼굴이 더 안쓰러웠기에. 아이들이 흘리는 거에 유독 민감하고 화를 내는 내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나도 알 수 없었던 내 강박이 생각났고 조금 더 유하게, 할머니가 쏟았다고 생각하자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했던 내 호흡을 떠올리다가 피식 웃음이, 그러다 울음이 나왔다. 물론 다른 아이들에게 화내지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짜증 내고 버럭 했던 내 아래서 큰 아이들이 음식을 먹다 흘린 순간에도 자기 옷을 닦거나 음식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바삐 상을 닦고 흘린 걸 줍는 모습들이 떠올라서 서글퍼졌다. 상처받은 내 마음을 온전히 치유하지 못한다는 건 마음의 숙제를 물려주는 것 같아, 흘린 걸 화내지 않게 해 달라는 내 기도가 1살 아이와 99살 노인을 동등하게 생각하라는 하부르타의 주문이 내겐 이토록 어려웠던 이유가 결국은 나 자신의 허용되지 못한 문제였음을 그냥 깨달은 날, 쇼코의 미소부터 이어진 최은영의 소설들은 한결같은 그냥 내 안에 꾹 눌러놓은 뭔가를 끄집어서 올려주고 다시 마중물이 되어 솟아 나오게 하는 힘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소설을 쓴다면 나도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짐을 하고 싶을 정도로 울컥하고 애잔하고 갑갑하고 해방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그런 날이다.
띄어쓰기조차 없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나의 감상이, 자화상이 결국 소설 한 권으로 시작된 이야기라는 게 그저 놀랍고 멋지다. 이런데... 어찌 이야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랬다, 저랬다.
넘어졌다, 일어났다.
슬펐다, 울었다, 아무렇지 않았다, 그냥 웃었다, 다시 울었다.
이상하고 신비로운 이 세계가 아직 궁금하고
사실은 나의 알 수 없는 내면의 조각들이 지금도 떠오르고 알고 싶은
내가 살아온 조각을 기록하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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