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로 하는 욕은 괜찮다?
얼마 전 신랑이랑 "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든 생각이다.
일도 잘 처리하지 못하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우왕좌왕하는 직원이 있었는데 그저 답답하게만 여겼는데 이게 자신의 편견이었구나, 깨달은 순간이 있다고 했다. 점심시간에 가까운 거리를 이동해서 직원 전체가 점심을 먹을 일이 있었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내리는데 카드를 대는 단말기에서 자기 앞에 있는 여자와 뒤에서 대기 중인 여자가 동시에 카드 단말기에 카드를 삑 하고 가져다 댔다고 한다. (졸지에 그 직원과 우리 신랑은 가운데 끼인 모양이다) 뒤에 있는 여자가 엉뚱하게 새치기 한 상황은 맞는데, 뭐지? 하고 있는데 이 여자 둘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또 동시에 카드를 대서 두 번이나 신경 싸움이 되고 묘한 기류가 생겼단다. 신랑은 카드 대는 곳이 어차피 두 군데니까 손을 모으고 지켜보다가 그냥 반대쪽, 왼쪽에 있는 단말기에 카드를 찍고 내려왔단다. 어차피 내리는 쪽에 있는 단말기는 두 대니까. 내려서 다른 직원들을 기다리는데 그 직원은 한참 후에야 얼굴이 벌게진 채 내려왔다고 한다. 그리고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다 들리게 단 두 마디를 외쳤단다.
우리가 화가 날 때 흔히 튀어나오고 바로 생각나는, 알파벳 세 번째로 시작하는 그 욕이 맞다.
나는 여기까지 듣고 일단 웃음이 터졌다. 평소에는 말도 조리 있게 못 하고 답답하고 느린 사람인 줄 알았는데 감각적인 욕의 속도와 반응만큼은 우사인볼트급이라는 생각에.
신랑은 뒤에서 들려오는 욕에 몹시 기분이 나빠졌고 한 번 더 돌아보고 쳐다봤지만 여전히 씩씩 거리며 DD도 EE도 아닌, CC거리고 있는 얼굴을 마주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한다. 단말기를 서로 차지하려는 두 여인의 묘한 기싸움도 웃겼지만 (물론 신랑 뒤에 선 여자가 엉뚱하게 잘못한 게 맞지만, 앞에 카드를 먼저 댈 차례의 여자입장에선 양보할 일도 아니고 충분히 화가 났을 것도 같다. 이것 때문에 내리는 자리는 아수라장이 됐을 생각을 하니;;;) 그것 때문에 자기가 내리는 시간이 지체돼서 직원들, 상사가 있어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욕을 해버린 그 직원도 어이없고 웃겼다.
원래가 비호감에 안 좋은 이미지였는데 이젠 그 마저 편견이고 일 못하는 직원에서 일도 못하면서 입은 거칠고 말버릇마저 나쁜 사람이란 생각이 가득해졌다는 이야기였다.
지금은 신랑이 직장을 옮겼지만 나도 몇 번 마주친 직원이라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늘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구나 생각했는데 사회성이 없는 게 아니라 사실은 헐크처럼 분노를 참아내는 중이었나 싶기도 하다. 신랑에게 이 직원에 대한 재밌는(?)-상사나 동료 입장에서는 부글부글 열이 받을만하고 제삼자인 나에게는 코미디 같은- 에피소드를 하도 많이 들어서 이 직원에 대한 '욕'이야기는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보통은 이미지 관리를 하기에 거칠게 욕을 하던 사람이라도 직장이나 교회, 학교 같은 곳에서는 욕을 하고 싶어도 스스로 절제하기 마련이다. 좀 더 나이가 어린 경우야 만났을 때 반갑게 놀고 하하 호호 어울리는, 깔깔깔 장난치는 친구 사이에 욕이 자연스레 나올 수도 있지만(그렇다고 이런 대화 습관이 옳다고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모르게 내 의지와 상관없이 튀어나오는 욕이라면 현재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긴 해야 한다.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욕이 아니라 너무 기분이 좋거나 친근감의 표현으로 습관적으로 욕이 흘러나오는 경우도 생각보다 꽤 많다. 물론 신랑 회사의 그 직원처럼 반대로 분노가 차다 차다 못해 짜증으로 튀어나오는 경우도.
놀이터에만 나가봐도 어린아이들과 특히 중학생들의 욕하는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기에 조금 큰 소리로 시끌시끌 욕을 심하게 하고 있으면 다가가서 꼭 한 두 마디씩 인사와 함께 내 생각을 말해줬다. 너네끼리 있을 때는 얼마든지 해도 되는데 이렇게 어린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욕을 하는 건 뜻도 모르면서 아이들이 욕을 배울 수 있고 듣기에도 기분이 몹~시 나쁘다고. 즐겁게 놀기 위해 나온 놀이터에서 듣고 싶지 않은 온갖 욕을 듣고 있는 건 불쾌한 일이라고 전달하면 죄송합니다, 꾸벅 인사하고 욕을 멈추는 무리의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대부분 아이들이 이렇게 사과를 한다), 침을 뱉고 중얼중얼 (들리지 않게) 욕을 하고 다른 곳으로 피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 아직 대놓고 나에게 욕하는 무리는 못 만났으니 그래도 착한 청소년들인가.
이 말을 하고 돌아서면 늘 내가 한 말이지만 어딘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되뇌기도 했다. 그럼 친한 사이에 친한 친구끼린 욕을 자연스럽게 남발해도 되는 걸까?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됐던 '흑백요리사'에서 요리하는 돌아이가 요리 도중 오버스러운 행동과 자기 뜻 대로 되지 않았을 때 튀어나온 욕에 대해서 내 주변에서도 저마다 의견이 갈렸다. 엄마를 위해서 출연했는데 엄마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에서 욕이라니, 하는 태도와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시간에 쫓기고 다급해서 하는 욕인데 뭐 어때, 이렇게 갈린 것 같다.
나는 사실 어느 쪽이냐 하면 방송이긴 해도 후자에 가까웠다. 오픈된 공간이고 방송이긴 하지만 그전에 욕을 하는 특정 대상이 있었던 게 아니고 습관적으로 놀라서 튀어나온 욕이라고 느껴졌기에. 누군가에게 욕을 할 의도는 없어 보였고 다들 바삐 움직이는 중에 욕을 하는지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흑역사처럼 방송에 그 모습은 박제가 됐겠지만 그것 역시 본인 스스로 욕을 먹는 거니 그 정도면 또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겠거니 하고 사실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에 가까웠다. 별 감흥도 심각함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냥 그 장면 자체였던 것 같다.
놀이터에서 아이들도 있는 상황에서 내가 직접 듣는 욕과 방송에 녹화된 상태에서 삐처리된 욕은 분명 차이가 있다고 느꼈고 나에겐 그게 심각한 상황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언어습관도 바르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중학교 때 너도 나도 쓰는 습관처럼 쓰는 유행어 같은 말에 추임새를 넣다가 집에서 부모님과 언니에게도 여러 번 혼났다.
언어 정화! 언어 순화! 말끝마다 예쁜 말을 쓰라는 잔소리를 하도 들어서 나중에는 그냥 그 말을 쓰지 말라는 말 조차도 열받아서 어떻게라도 쓰기 위해 X나 ⇒ 졸X ⇒ 겁X ⇒ 열X 로 차차 바꾸고 악착같이 쓰려고 한 이상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 한 살 터울 언니에게까지 언어습관을 여러 번지적 받은 이후엔 친한 친구들끼리 수다 떨 때만 그런 말을 종종 썼고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만 해도 그런 말을 쓰는 자체가 이상하고 왠지 유치해져서 관둔 기억도 난다.
유행처럼 번지는 습관 같은 욕도 십 대 후반이 되고 20대만 돼도 쓰면 오히려 자기 얼굴이 화끈거리고 내 얼굴에 먹칠인 걸 알아서 대부분은 안 쓰게 되는 게 정상이라고 여겼다. 신랑의 전 회사 직원 이야기도 충격인 게 이제 곧 마흔을 앞둔 나이에도 그냥 아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 자연스레 그런 욕을 할 수 있구나 하는 놀라움, 얼마 전에 아기 아빠가 됐다고 들었는데 그럼 가정에선 그런 욕을 더 안 쓸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요리하는 돌아이 이야기로 넘어와서 욕을 쓰건 안 쓰건 자유지만 방송에 나온 이상 자기 말의 무게에는 책임을 져야 할 것 같다. 언어에 좀 더 민감하고 평소 언어 습관에서 정직하고 바르게 사용한 사람들이라면 거부감을 느끼는 게 또 당연하고 그럴 수 있다. 나처럼 누군가에게 친한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지칭하기 위한 게 아닌 혼자만의 공간에서 쓰는 욕은 뭐 그럴 수도 있지 넘기는 사람도 있을 거고.
하지만 분명한 건 혼자 공간이 아닌 사방이 뚫린 누군가 다른 상대방이 한 명이라도 있는 공간에서 혼잣말로 하는
같은 욕은 더 이상 혼잣말이 아니기도 하다. 기다리지 못해 화가 난 심경을 그대로 말에 투영했다면 그걸 기다리고 아무렇지 않게 다른 단말기에 카드를 찍고 내려온 신랑을 비롯한 다른 승객들은 또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기분을 망친 것도 맞을 거다.
신랑이나 우리 큰 아이도 평소 언어 습관이 지나치게 바르고 욕을 아예 사용하지 않기에 누군가 혼잣말로 하는 욕을 들어도 움찔 몸이 들썩이고 기분이 나빠지고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편이다.
짧은 순간이지만 나에게 대한 평가를 야박하게 하는 듯한 욕. 혼자 있을 때 설거지를 하거나 샤워를 하거나 안 들리는 공간에서 아무도 없을 때 시원하게 무슨 욕을 하든 그거야 상관없지만 그걸 듣는 내 귀도 과연 편하기만 할까? 내지를 땐 편하지만 결국 내 두 귀로 고스란히 들려서 받게 되는 그 욕이 편안하고 즐거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설령 나 밖에 없다고 해도.
나도 무의식적으로 뭔가가 잘 안 될 때 나오는 혼잣말과 같은 아우씨, 같은 말도 아이들이 태어나고 더 고쳐야겠다고 다짐한 순간이 있다. 아가씨 시절, 아우. 씨! 까지 추임새처럼 나오는 말을 아무렇지 않고 2살 조카가 따라 하는 걸 보고 스펀지 같은 빨아들이는 아이들 앞에선 말과 행동도 더 조심해야 한다고 느꼈다. 언젠가 선주언니는 화가 나면 "포도! 바나나!"처럼 특정 과일이나 물건을 정해놓고 크게 소리 질러보는 방법도 좋다고 했으니, 이렇게 하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면 좋다. 욕을 하는 찰나의 기쁨은 없을지 몰라도 사실 제일 좋은 건 욕보다는 내 마음의 쿵쾅쿵쾅 요동치는 소리와 감정을 먼저 파악하는 일일 것이다.
두렵거나 쫄 릴 때, 쫓기는 기분이 들 때 어떡하지, 걱정된다, 무섭다, 말로 표현하는 것만으로 해소가 될 수 도 있다. 하지만 이미 아우~씨! 짜증 나 #$#$#^@라는 말이 되는 순간 그건 말이 아니라 욕으로 치환돼서 더 이상 귀를 기울이기 조차 싫어진다. 얼마나 손해인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만 외쳐도 충분히 시원해지고 속이 뻥 뚫릴 수 있다. 모자를 맞추는 재단사가 참 지혜롭다. 말 못 하게 한 임금을 욕하거나 세상을 향해 욕한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사실 하나만을 말했다.
대나무 숲에 외친 그 말 하나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속은 정화되고 편히 눈 감을 수 있었다.
그게 쓸데없고 뭐 뜻도 모를 추잡한 욕이었다면 대나무 숲에서 들린 그런 말을 귀신같다는 이유로 그냥 흘려서 다들 캐낼 생각조차 안 했겠지.
따라 해보자,
긴장되고 무서워.
떨린다.
시간에 쫓기니 또 화가 몰려오네.
얼마든지 욕도 안 하고 말만으로도 해소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아니면, 혼자 아무 데도 없는 곳에서 장롱 속에서 욕을 해봐라. 무서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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