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습작*)
자, 이제 여기에 자기 죄를 써서 돌멩이로 싸서 집어넣는 거야!
해가 저문 지 오래지만 전도사님 목소리엔 의욕이 가득했다. 젊은 전도사님은 하루종일 설교도 모자라 저녁 찬양 집회와 캠프파이어까지 열정적으로 이끌고 사회까지 보신 탓에 목소리가 갈라졌다. 자꾸만 쇳소리 같은 목소리는 웅웅 거리는 하울링과 겹쳐 마이크로들을 때 마다 귀가 따가웠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길이 점점 더 커다랗게 앉아있는 아이들 키를 넘어 전도사님 키만큼 커졌다. 가운데 놓인 모닥불을 활활 잘 타고 있었다. 여기저기 다니며 얼른 죄를 고백하라는 전도사님의 벌게진 얼굴은 마치 술이라도 한 잔 하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선생님, 돌멩이가 없어요.
-여기 볼펜이 안 나와요. 이거 그지 같다.
-이거 모나미 아니에요? 모나미 짝퉁 이에요, 짝퉁. ㅋㅋㅋ
여기저기 불평이 터지며 시끌시끌 다들 '자기 죄'를 쓰기보단 써야 하는데 엉뚱한 이야기를 하거나 안 되는 것만 탓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교회 수련회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다시 찾아오는 웅성거리는 수다시간, 소란스러운 아이들 틈에서 흙 위에 뭔가를 적고 다시 지우고를 반복했던 아이, 은아였다.
은아는 조용히 생각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지. 나는 그러면 뭘 고백해서 적어야 하는 걸까.'
은아는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피고 난 뒤 손바닥 보다 작은 종이 한 귀퉁이에 아주 작은 글씨를 써 내려갔다. 마치 개미가 남긴 발자국처럼 자세히 확대해서 봐도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글씨였다. 전도사님 말씀처럼 발 앞에 놓인 뭉툭한 돌멩이 하나도 발견했다. 은아가 자기 죄를 꼼꼼하게 예쁜 글씨로 적어 내려 가는 동안 천사가 마치 은아의 발 앞에 가지런히 그 돌을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울퉁불퉁한 모양도 묵직한 무게도 적당한 것 같았다. 너무 예쁘고 가녀린 돌은 처음부터 죄로 감싸서 모닥불에 넣기에 미안한 마음이 들 것 같았기에. 방금 쓴 쪽지를 아무도 못 보게 꽉꽉 눌러가며 힘을 줘서 구겼다. 돌과 함께 처참하게 찌그러진 종이를 모닥불을 향해 던졌다.
-에잇!
툭 …. 툭.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 근처에 간 것 같으나 은아돌의 도로 튕겨져 나갔다. 모닥불 안에서 누가 마치 배드민턴 채로 가볍게 받아넘긴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쪽지를 나눠주는 세훈 선생님께서 그 종이 돌 뭉치를 발견하고 다시 은아의 발 앞에 가져다 놨다.
-잉차!
휘이익 탁! 포물선으로 제대로 날아간 돌덩이는 이번에도 모닥불에서 튕겨져 나왔다. 던지는 힘이 모자랐을 수도 있지만 이번엔 제법 멀리까지 날아간 돌덩이를 모닥불이 한 번 삼켰다가 다시 은아에게 뱉어놓는 것 같았다.
퉤, 하고 침을 뱉듯, 뜨거운 지옥불 속에서도 용서받지 못한 은아의 죄가 고스란히 아이에게 떨어졌다.
하나님은 내 죄를 용서해 주시지 않는 걸까? 이건 용서받지 못하는 죄일까.
다들 웃고 떠드는 잔칫집 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전도사님의 갈라지는 음성은 끊이지 않고 '죄! 죄! 죄!'를 외쳤고 진짜 죄를 고백해서 써 내려간 유일한 아이, 은아의 죄는 결국 모닥불 안으로 골인하지 못했다. 타오르는 불과 함께 죄도 용서받고 회개를 하고 싶었던 은아는 눈앞이 뿌옇게 흐릿해지는 걸 느꼈다. 캠프 파이어다, 불꽃놀이다, 하면서 신나게 춤추는 아이들이 지옥 불 앞에서도 천진하게 춤추는 인디언 무리처럼 보였다. 은아는 눈물을 글썽였다.
수련회 마지막날 밤은 길었다. 기타도 치고 서로 짝을 맞춰 포크 댄스를 추기도 하고 삼삼오오 둥그렇게 모인 아이들은 밤이 새도록 '아이엠 그라운드'나 '삼 · 육 · 구 · 박수!'치기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자자, 오늘 밤은 집에 돌아가기 전 마지막 밤이다. 우리가 삼 일 동안 회개하고 예수님 말씀 안에 새롭게 변화되기로 약속했지? 이제 조용조용! 자자, 소란 피우지 말고 이제 안으로 들어오세요.
편안한 운동복으로 옷을 갈아입으신 전도사님께서 다시 마이크를 들고 가장 큰 방으로 아이들을 집합시켰다.
-아우, 씨 모야.
-차라리 이럴 거면 촛불의식을 하지, 아까 모닥불 앞에서도 자꾸 돌멩이나 던지라고 하고.
-내일 가잖아요. 이제 그만해요!
아이들의 볼멘소리가 여기저기 터져 나왔다.
은아는 염소라고 불리는 은정이와 단짝이었다. 말할 때마다 목소리가 염소처럼 떨리는 은정이는 이름보다는 염소로 불리고 있었다. 교회 안에서도 떨리는 음성을 가진 은정이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는데 그런 부분이 은아랑은 잘 통하는 아이기도 했다. 은아는 늘 시끄러운 게 질색인 아이 었기에. 둘이 함께 다니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은방울 자매' 더 짓궂게는 '쌍방울 자매'라며 놀리기도 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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