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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천군작가 Jun 19. 2016

그리운 이름에게...

나는 오늘도 딸기를 산다.

"할매요"

"와"

"이따 점심 같이 묵으모 안될까예?"

"와 머 묵고싶은거 있나?"

"아니예 혼자 묵기 머 해서 그라는데 이따 자장면 묵을까예?"

"아이고 미스터 한 자장면 묵고 싶은가베. 그래 이따 온나 할매가 사 주꾸마"


매일 아침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하다 친하게 지내게 된 과일가게 할머니와의 짧은 대화였다.

점심시간에 그 앞을 지나다 보면 할머니는 식은 밥을 물에 말아서 김치와 드시는 모습이 안스러워 가끔 이렇게 점심을 같이 하는 아주 좋은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치 친 할머니께 응석을 부리는 손자처럼 가끔 그런다.


"와 하필이모 자장면이고? 면 잘 안묵는다면서..."

"오늘은 국수 종류를 묵어야 하는 날이라예"

"국수?"

"예"

"니 생일이가?"

"하하하 할매 귀신이시네예"

"아이고 이거 그만 묵고 저게 고기라도 묵으러 가자 이놈아가 참말로"

생일이라는 말에 할머니는 펄쩍 뛰신다. 정말 친손자처럼 생각을 하시는지 고기라도 먹고 힘을 내야 한해를 잘 넘긴다며 내 손을 잡아 끄신다.

"할매 자장면이 묵고싶어서 그라는데 뭔 고깁니꺼"

"어허 그래도 그라는거 아이다. 니 미역국은 묵었나?"

"..."

자장면을 입안에 넣고 눈만 말똥거리는 나를 보며 할머니는 긴 한숨을 쉬신다.

"야아야~~ 그 나이이 묵도록 미역국도 한 그릇 몬 얻어 묵고 다니모 우짜노. 미리서 말을 했으모 이 할매가 끓이가 왔을거 아이가"

"할매"

"와"

"내는 할매하고 마주 앉아서 자장면 묵는기 더 좋다. 그라고 생일날에는 이리 긴거 묵어야 오래 산다 않하나"

"아이고 고만 묵고 가자니까"

그렇게 신간하는 사이 내 앞에 놓여있는 자장면은 바닥을 보였고 나는 배를 툭툭 치면서 할머니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할매 내 진짜 오래 살고 싶은갑다. 안 묵는 면을 이리 마이 묵는거 보모"

"우짤 수 없네 이따 퇴근하모 꼭 할매한테 온나 할매 저녁 안묵고 기달릴거니까 알았나"

"할매 자장면 잘 묵었십니더. 그라고 퇴근이 마이 늦을거니까 일찍 들어가서 쉬이소 알았지예"

라고 말을하며 뛰어서 시장의 많은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할머니 딸기 주세요"

나와 할머니의 첫 대화였다. 다른집과는 달리 참 크고 탐스러운 딸기에 이끌려서 마트보다 싱싱하니 뭐 라는 식으로 웃돈을 주고 딸기를 사서는 집으로 돌아왔다. 핑크색 볼에다 딸기를 열 몇알을 담고 수돗물을 틀어두고는 옷을 갈아 입고 씻으려는데 물기를 머금은 딸기가 너무 탐스러워 양치 하기전에 한입만 먹을까 하며 입에 넣었는데 너무 달고 부드러웠다. 시장인데 왜 이리 비싸 하던 마음이 녹아 버리고 씽크대에 기대어 서서는 물을 툭툭 털어서는 한입 또 툭툭 털어서는 한입 그러다 보니 열 몇알의 딸기를 모두 먹어치운 후 였다. 이제 과일은 할머니가게에서 사야겠어 믿을 수 있겠는걸 하며 휘파람 불며 샤워를 하고 나왔다.

"안녕하세요"

"아이고 총각 어제 딸기 억수로 달제"

"네 그렇게 단거 첨 먹어봤습니다"

그렇게 할머니와 아침 인사를 나누고 냉장고에 과일이 떨어지는 날이면 할머니께서 추천하는 과일로 사다가 먹었다. 가끔 필요한 것이 있어 마트를 가더라도 과일은 잘 보질 않고 지나쳤고 과일은 언제나 할머니 가게에서만 사게 되어버렸다.

"할머니 사과"

"이거는 마이 신데 개안겠나?"

"너무 신건 별로..."

"그라모 이거 묵어라"

할머니께서 건낸건 딸기였다. 몇일전에도 딸기를 샀었는데 또 라는 생각을 가질 즈음 할머니는 다시 말을 이어나가셨다.

"이거는 고마 주는기다. 니 딸기 좋아하니까"

"그라모 안됍니더 돈을 와 안 받아예"

순간 사투리가 나왔고 이만원을 과일 위에다 던지고는 딸기를 들고 뛰었고 뒤 돌아 보며 빙그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할매요 잘 묵으께예"

"야야~~ 돈이 너무 많다 주리 받아가꼬 가라"

"아입니더 남는거는 집에갈 때 꼭 택시 타고 가이소"


늦은 퇴근 시간.

분명 집에는 불이 꺼져 있을거야. 하긴 혼자 사는데 전기세 아깝게 불을 켜 두고 나온다는게 그리 쉽지는 않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혼자 사는구나를 느낄 때가 바로 퇴근후 집으로 돌아갈 때일 것이다. 다른 집들은 불이 켜져 있을 시간에 유일하게 내 집만 불이 꺼져 있으니...

그런 생각을 하며 걷는데 오늘은 과일가게 문을 일찍 닫았구나 하며 불 꺼진 가게를 스치듯 지나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출근 길에 늘 웃으며 반겨주시던 할머니가 안 보이신다. 가게도 굳데 닫혀 있고 어디 가셨나 하며 출근을 하였지만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서 개우뚱 하는 오전이 지나고 점심시간에 옆집에다 물어 본다.

"할머니 어디 가셨나봐요?"

"아이고 그 할매 입원했십니더."

이게 무슨 말인가 몇일 전만 해도 건강하시던 분이 갑자기 병원이라니 하고는 옆집 아주머니께 물어 볼려는데.

"할매 손자 아이가?"

"네?"

"할매 요 앞에 병원에 입원했는데 퍼떡 가 보이소"

학창시절로 돌아가 체력장을 치루던 그 때 보다 더 빠르게 달려서 병원에 도착 했는데 헐덕이는 숨을 넘기며 간호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가는데 그만 더 이상 발을 땔 수 가 없었다. 할머니 성함을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이년 넘게 알고 지내온 할머니신데 이름을 모르다니... 그럴수밖에 매번 할매요 라고 불렀던 것이 다였는데. 그리고 할머니 이름에 대해서는 별 관심도 없었으니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나는 그 당연함에 발을 옮기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에서 서글픔을 느끼고 있었다.

"저기...."

"네"

"혹시 이틀쯤 전에 시장에 장사하시는 할머니 한 분 입원하지 않았나요?"

"아...이춘자 할머니요"

"이춘자..."

그랬다 할머니의 성함이 이자 춘자 자자셨던 것이다. 왜 나는 모르고 있었을까? 할머니는 내 이름을 간혹 불러 주셨는데 하며 꼭 기억을 해야지 하며 간호사가 알려준 병실로 천천히 다가갔다. 병원은 아픈 사람이 참 많다. 그 속에 나도 섞여서 3년여를 투병했던 기억이 다시 살아나며 왠지 모를 불안함에 빠르게 걷지를 못하는데 할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고 병실쪽으로 걸어갔다.

"아이고 니 머하로 왔노"

병실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하는 인사가 뭐하러 왔냐고 하신다. 나 역시 웃으며 어색함을 달랜다.

"어데가 아픈겁니꺼?"

"몰라 배가 실실 아파서 왔는데 입원하라카더마는 집에도 안보내 준다."

"배가 우찌 아픈데예?"

"인자는 개안타."

"진짭니꺼?"

"하모 바라 "

그러면서 두 팔을 만새를 부르기도 앉은체로 허리를 굽히시기도 하며 안심시키기라도 하시려는 듯 움직이시며 환하게 웃으신다. 그 모습에 가슴 조아리며 달려온 것은 잊고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할머니를 바라본다.

"병원밥은 묵을만 합니꺼? 머 먹고 싶은거 있으모 말씀을 하이소. 내 다 사다드리께예"

"밥 맛나더라. 내가 안 해 묵어도 되고 편안하네. 그라고 머할라꼬 돈을 쓸끼고 주는거 묵으모 된다."

"그래도 머 묵고 싶은거 있으모 이야기 하이소"

"알았다"


"이춘자할머니 보호자 되십니까?"

보호자...참 오랜만에 듣는 말이다. 보호자라는 말은 왜 하필 누군가 아플 때에만 툭 튀어 나오는 단어일까? 그리고 병원에 혼자 다니는 내게 간혹 처음 가는 병원에서 보호자 성함은요? 라는 말에 멈칫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특별함이 있는 단어를 오랜만에 만났다.

"네"

"할머니 연세에 비하면 건강하십니다. 검사결과 별 이상은 없고 기력이 쇠하셨으니 좋은 것 많이 드시게하세요"

"네 진짜 별 문제 없는거죠?"

"네 팔순이신데 너무 건강하십니다"

팔순....

아 할머니 연세가 그렇게 많으셨구나.

이건 뭔가에 뒷통수를 얻어 맏은 기분이었다. 병원에 들어오면서 부터 이름을 몰라서, 나이를 이제야 알아서...

과연 보호자라고 자부하는 나는 할머니에 대해 뭘 알고 있는 것일까? 과일가게 할머니. 내가 아는 것은 고작 이것 하나였다는 것이 씁쓸하다. 의사의 말을 다 듣고는 나오는데 왜 그리도 서운한지... 할머니 할머니 하며 따르는 내가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도 모르고 그냥 사람 좋은 할머니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는 것이 가슴 아파왔다. 하지만 건강하다는 말에 나는 다시 빙그레 웃으며 할머니 병실로 돌아갔다.

"할매"

"머라카더노?"

"집에 가랍니더. 할매 너무 시끄럽다꼬 퍼떡 가랍니더"

"문딩이 의사 아이가. 내가 머가 시끄럽노. 니도 그리 생각하나?"

"하하하 농담도 몬합니꺼. 어서 옷 갈아입고 가입시더 내가 고기 사 드리께예. 내 아직 점심도 못 무긋어예"

이제부터 할머니에 대해 하나씩 알아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장 트러블인데 연세가 많아서 입원을 하시라 했던 것이고 혹시 몰라 간단한 검사도 하였다는 의사 말에 안도의 숨을 쉬고 할머니의 팔장을 끼고 병원을 나선다.

"할매요"

"와"

"이춘자 할매요"

"호호호"

"이춘자 할매요"

"호호호 와 문딩아"

"하하하 이춘자 할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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