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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을 Oct 22. 2020

총기번호 증발 사건의 전말

앗 총기번호가? ~~~~ 뭐였더라~~~???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총기번호가 기억이 안 난다, 그것도 전혀 아예

남자 둘 이상 모이면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로 시작해서 끝난다는 말처럼 나에게 군번과 총기번호는 결코 잊혀지지 않는 그런 것이었다. 뭐랄까? 각인되었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제대 후에도 몇 년 만에 한 번씩 불쑥 나도 모르게 군번과 총기번호가 슬며시 머릿속에 떠오르곤 했다. 하지만 군 시절을 잊지 못해 일부러 기억을 떠올리려고 하거나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제대하고 20년 넘게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러한 현상이 지속된 듯하다. 그렇다고 내가 절대 잊지 못할 무슨 혹독한 훈련을 받는 특수 부대 출신도 아니다.

그런데 정말 오늘 아침 출근길에 딱 그런 일이 정말 오랜만에 또 발생했다.

군번 13912537

갑자기 운전 중에 군번이 떠오른 것이다.
아직도 아주 매우 분명히 단호하게 뚜렷하다.
군번 13912537

이건 마치 어제 논산 훈련소 입소해서 새롭게 군번을 받고 읽어 본 그런 느낌이다. 제대한 지 30년이 훌쩍 넘었는데 말이다.

마치 인두에 덴 듯 각인된 이 현상은 어떤 원인 때문일까? 무슨 생존이라도 걸린 것처럼 군대에서 매일매일 암기라도 했던 것일까? 아니면 군번을 외우지 못해 심한 얼차레라도 받았던 것일까?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군번으로 인해 기억할만한 사건들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잊혀진 총기번호이다. 이 총기번호의 증발은 그야말로 싹쓰리 증발이다. 전혀 기억이 없다. 전혀 기억이 없다 함은 도대체 자릿수조차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이다. 군번은 여덟 자리였는데, 총기번호도 여덟 자리 같기도 하고, 좀 더 짧았던 것 같기도 하고 도대체 기억이 없다.

사실 기억력 강도 측면에서는 총기번호가 오래 기억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총기에 관한 군기가 가장 강도가 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총기번호 숙지 여부는 가끔 점호시간에 점검되었던 것이기 때문에 총기번호는 잊히려야 잊힐 수 없는 것이지 않은가? 그런데 언제인지 모르게 전혀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걸 오늘 아침 출근길에 다시금 인지하게 된 것이 오늘 사건의 개요. 아침 출근길에...

그런데 이게 무슨 난리인지? 회사 일도 바빠 죽겠는데, 이 내용이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거다. 왜 총기번호가 증발한 거지?  내가 잊은 것일까? 총기번호가 날아간 것일까? 어디로 사라졌을까? 별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러면서도 혼자 피식 웃는다. 이건 뭔 시추에이션?

퇴근하고서도 이 총번 사라짐에 대한 의문은 지속되었고 슬슬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게 뭐라고 이거야 말로 내 생사가 걸린 것도 아니고, 마누리 생일을 잊은 것도 아니고, 당첨된 로또를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이게 정말 뭐라고 하루 종일 생각질이란 말인가? 아~~~

그래서 어떻게든 결론을 내야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다가는 향후 몇 년간 또 이 기억이 지속될지도 모르기에...

하지만 별다른 결론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깟 총번

저녁 식사하고, 오늘 프로 야구 진행 중인 경기 잠시 살펴보고 안도하고, 국감 뉴스 보다가 갑자기 결말이 떠올랐다. 정말 갑자기

그래 총기번호의 주인은 소총이고, 군번의 주인은 바로 나구나!  그래 맞아 내가 주인인 군번이라서 아직도 뚜렷이 기억되는 것이고, 총의 번호인 총기번호는 그래서 점차 기억에서 사라진 것이었구나? 햐~~ 이거 정리 완전 깔끔한데!!!

됐다. 됐어 이제 쓸데없는 고민에서 해방되겠구나, 그렇게 총기번호 증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심지어 안도감마저 들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게 뭐라고? 혹시 퇴직하고 회사 사번이 날 괴롭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회사가 군대 같은 것인가?


이미지  http://bemi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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