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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을 Oct 31. 2020

플라타너스의 가을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코흘리개 초딩이의 눈에 비친 학교의 첫인상은 아름드리 플라타너스였습니다. 동네에서 가장 높은 나무는 가느다란 미루나무였고, 가장 많은 나무는 소나무가 전부였었는데, 엄마 손잡고 십리를 걸어 드디어 도착한 초등학교는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큰 플라타너스를 내세우고 촌뜨기 초딩이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둘레와 큰 키를 가진 플라타너스는 조그마한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 둘레를 당당하게 점유하고 그 위세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 놀란 건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면서 몰라보게 성장하는 잎이었습니다. 마치 하늘을 뒤덮을 듯 무성한 플라타너스 잎들은 어른 손바닥보다 큰 규모로 성장하여 빽빽하게 온 나무에 매달려 그야말로 진풍경을 연출하는 것을 매년 목격하였습니다.

지금에 와서 늦가을쯤의 유년의 플라타너스를 기억하는 건 바로 5학년쯤 고학년이 되면서 겪었던 추억 때문입니다. 바로 고학년의 임무였던 플라타너스 낙엽 청소입니다. 온 운동장에 빙 둘러 심어져 있던 플라타너스는 그 위용에 맞게 가을이 되면 막대한 양의 낙엽을 생산해내곤 하였고, 그 청소 임무가 5~6학년생들에게 주어졌습니다.  

늦가을이 될 무렵이면 마치 하늘에서 낙엽 눈이라도 내릴 정도로 낙엽이 끝날 줄 모르고 떨어지곤 하여 온 운동장에 융단이라도 깔아 놓은 것처럼 장관을 연출하였습니다. 형형색색의 진한 가을이 시골 학교의 운동장에 가득하였습니다. 누구라도 느껴봤겠지만 플라타너스의 넓은 낙엽은 그 촉감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바싹 마른 잎은  넓어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크고, 바닥에 붙지 않아 발에 걸리는 느낌도 있어서 낙엽이 수북한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한참을 뛰어놀곤 하였습니다. 운동장에 수북이 쌓인 플라타너스 잎을 발로 밟고 차고 하는 단순한 놀이였는데, 적당한 마찰과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이색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뛰어놀곤 하다가 청소를 하였습니다. 청소의 핵심은 빗자루로 낙엽을 쓸어 한데 모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보통 노동이 아니었습니다. 잎이 크고 무거웠기 때문에 초등생들에게는 다소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이게 즐거웠던 건 리어카를 타고 달리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쓸어 모은 낙엽을 리어카에 꾹꾹 눌러 담아 싣고서 소각장을 향해 달렸는데, 한 친구가 리어카를 끌고 두어 명은 그 좁은 리어카 낙엽 위에 놀라타고 신나게 달려가는 거였는데 이유 없이 그게 즐거웠습니다. 소각장에 낙엽을 가득 채우면 그 위로 뛰어들어 또 놀곤 했습니다. 소각장이 가득 차면 소사 선생님이 불을 놓아 소각을 했는데, 불 땐 후 소각장 벽의 따뜻한 느낌도 좋았습니다.

권성이, 선필이, 연철이, 재욱이, 재광이, 일연이, 용문이, 장규, 길성이, 진규, 영웅이 등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에 함께 뛰어놀던 내 유년의 친구들이 그리운 이 가을에 우연히 플라타너스 길을 걷다가 오래된 빛바랜 기억을 소환해 봅니다. 가을은 가을답게 여러 가지 색감으로 다가옵니다. 이 가을은 짙은 갈색 플라타너스 색감으로 깊어지는데, 내 유년의 추억을 회색에서 컬러 빛으로 꺼내어 봅니다. 지금의 삶도 소중하고 감사하지만 철없이 해맑게 뛰놀던 유년의 추억은 더없이 소중한 기억으로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중년의 가을입니다. 10월의 마지막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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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타너스

                                               김현승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오를 제
홀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 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이미지  https://fruitfulif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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