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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띵워킹 Mar 14. 2024

같이 일하는 사람이 무엇을 싫어하는 지를 안다는 것

약속 그 자체보다 중요한 건 '함께 정하는 합의의 경험'

회사 로비에서 킥보드 타는 어린이들이 불편합니다

회사 익명 게시판에 일층 로비에서 킥보드 타는 사내 어린이집 아이들을 향한 컴플레인 글이 올라왔다. 그냥 시끄러운 게 문제가 아니라 안전 문제가 있어서 조심해야 할 것 같다는 글이었다. 그 글 아래로는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부모가 문제다, 아이들에게는 넓은 공간이니 당연히 누비고 싶을 것이다 등등 갑론을박성 댓글들이 불어나고 있었다.


그 이후 어느 날, 원래 로비 한편에 마련돼 있던 이동장치 주차 공간에 이 안내문이 등장했다.

<킥보드 안전규칙 - 우리 함께 지켜요>
1. 킥보드는 실외에서 타요
2. 부딪히지 않게 주위를 잘 살펴요
3. 킥보드는 내려서 끌고 가요

안내문의 내용은 엄중한데 포맷이 너무 귀여워 한참을 미소 지으며 세심히 봤던 기억이다.

킥보드 안전규칙!!!!! d

그냥 인쇄물이었다면 눈길이 안 갔을 텐데,

고사리 손으로 그렸을 그림과 삐뚤빼뚤 글자가 귀여워 한참을 쳐다봤다.

그리고 안내문 아래에 칼 각으로 주차된 킥보드들이 귀여워서 기분이 절로 좋아졌었다.

어차피 다 작은데 와중에 손잡이 높이 다 다른 것도 킬.포.

누군가 익명으로 표현한 불편함을 그냥 넘기지 않고 전면으로 센스 있게 대응한 어린이집 운영진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같이 지내는 공간,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배려하는 공동의 규칙을 만들어보는 '합의의 경험'


내가 이 안내문이 더 사랑스럽고 고맙다 느낀 이유는 맨 위에 붙어있는 이 문장 때문이었다.

"웃는땅콩 친구들이 함께 정한 규칙이에요"

아이들끼리 진지하게 세 가지 약속을 정했을 모습을 그리니 흐뭇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세상을 또 한 번 배워가고 있겠구나 싶은 마음과 함께.


어린이집에서 <나의 재미보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 자기들끼리의 '규칙'>을 만든 것을 보니 느껴지는 바가 많았다. 어느 누군가에겐 당연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이해해 준 선생님들이 특히 고맙게 느껴졌달까. 어찌 보면 일종의 '공격'을 받은 것인데 이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단순하게 '자숙'할 것을 요구했다기보단

어째서 우리의 재미보다 안전이 중요한 문제일 수 있는지

우리의 특정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어떤 식으로 불편함을 줄 수도 있는지

어우러져 생활한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차근차근히 설명하면서

규칙을 '함께' 정하는 기회를 아이들에게 주고자 한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다.

단순히 규칙을 정해서 '통보'하지 않고, 아이들의 역량을 믿고 아이들 스스로를 규칙을 만드는 주체로 참여시켜 '함께' 만들어갔을 과정의 수고로움이 느껴져서 감사했다.


나는 좋아도 상대는 싫을 수 있음을 깨닫는 것.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지 않음을 알고, 그 사람의 기준에 나의 행동을 맞춰보려 노력하는 것.

늘 쉽게 말해져 말의 무게가 가벼워진 '배려'. 아이들에겐 이 사건이 배려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삐뚤빼뚤 손글씨와 아기자기한 그림이 뿌듯하고 귀엽고 고마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함께!'

타인을 위한 규칙이지만 정작 지켜야 하는 것은 당사자. 그런데 우리는 꽤 자주 약속을 지켜야 할 당사자를 제외하고 무언가를 정해서 통보하곤 한다. 그런데 약속을 정하는 과정 자체에 발 담그지 못한 당사자들에게 이 약속들은 의미가 없다. 의견을 내지 않았기에 지켜야 할 책임에서도 멀어질 뿐.



한 회사의 CEO가 면접 때 꼭 하는 질문

유퀴즈에 OTT 회사 '왓챠'의 CEO 티팍 님이 나온 적이 있다.

면접 때 꼭 하는 질문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꼭 '싫어하는 게 뭔지'를 묻는다는 것이었다.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알면 가치관을 알 수 있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잘하는 것도 아니고, 잘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싫어하는 것을 묻다니...!


질문을 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얼마간 당혹스러울 수 있겠지만 잘 생각해 보면

같이 어우러져 생활하는 데는 '무엇을 좋아하느냐'보다 '무엇을 싫어하느냐, 무엇을 용인할 수 없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 이긴 하다.


내 동료, 후배, 선배, 혹은 나의 회사가 내가 곧 죽어도 받아들이기 힘든 '손절 포인트'를 여러 번 시전 할 때 마음이 뜨게 된다. 그런 점을 잘 간파한 질문이 아닐까.


내 기준에 좋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100번 하는 것보다 상대가 정말 싫어하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 마음이 서로에게 더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내가 싫어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스스로 밝히기가 쉽지 않다. 누가 물어오지도 않았는데 먼저 밝히는 것이 조금 이상하기도 하고, 내가 싫다고 한 행동이 상대 기준에선 좋은 행동일 수도 있기도 하니깐 말이다. 복잡한 문제다. 그럼에도 회사에서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조직 분위기를 위해서다.


조직 분위기는 본인에게는 별거 아니지만 상대에게는 은근히 신경 쓰이는 미세한 행동에 의해 망가진다.



조직 분위기를 망치는 미세한 행동을 미연에 방지하는 법

모두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질 '별거 아니지만 은근히 신경 쓰이는 미세한 행동'이 우리 팀에 넘치지 않게 방지하는 법은 매우 간단하다.


1. '각자가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일단 묻는다.

2. 그리고 모두 다 그 행동을 피하자고 합의해서 정한다.


가끔 그 행동을 불편해하는 것 자체가 팀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면, 왜 그런지 설명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합의의 과정을 거쳐야 팀의 약속에 반기를 들 법했던 '마이너'도 팀의 룰을 따르게 된다. 어쨌든 나의 생각과 성향이 공적으로 다뤄지고, 왜 그것이 받아들여지기 힘든지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관여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무턱대고 무시받는 것보다 훨씬 존중받은 격이니깐.


매일 얼굴 마주하는 동료들에게 이 질문을 해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만약 한 번이라도 이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이 있다면 그 팀은 건강한 팀일 확률이 높다. 이 주제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면 빠른 시일 내에 시간을 내서 꼭 해보길 바란다. 팀 전체가 함께 이야기하기 어렵다면 원온원을 통해서라도 꼭 이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경기장의 사정에 따라 정식 경기 규정을 적용할 수 없는 경우에 임시적으로 정하는 경기규정이 있다. 이런 류의 규정을 '그라운드룰'이라고 한다. 최근 조직에서는 이 개념을 따와 리더와 조직 구성원이 함께 지켜야 하는 기본 규칙을 정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무엇을 싫어하세요?'가 그라운드룰을 정할 때 출발점으로 삼기에 좋은 질문 중 하나이다. 그라운드룰에서는 주로 이런 내용들을 다룬다.


- 어떤 행동이 불편한 지
- 어떤 행동이 우리 팀의 업무 사기를 떨어트리는지
- 어떤 식의 일처리가 업무 효율을 낮추는지
- 강하고 알찬 팀이 되려면 어떤 행동이 반복되어야 하는지


미션 / 핵심가치 / 비전을 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함께 일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조직의 분위기를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정임을 이해하고 좋은 조직문화를 쌓아가는 기업들이 있다. 언론을 통해 알려져 유명한 기업으로는 제니퍼소프트, 우아한 형제들 등이 있다.


이런 규칙들, 그라운드룰을 함께 정하는 합의의 경험을 거쳤냐 거치지 않았느냐는 몰입에 큰 영향을 준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함께 정함으로써 나에게도 어떤 책임 의식이 생겨 더 몰두하게 된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정한 약속인 만큼 반복적으로 지키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 팀은 성장/성공에 가까워질 확률이 높다.


회사 차원의 일이니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회사에서 나서주지 않으면, 우리 팀의 것을 정하는 것만으로도 아주 유의미하다. 만약 내가 1인 프리랜서라면 나에게 스스로 위 질문들을 던져 '나의 그라운드룰'을 만들어볼 수 있다. (마치 '나 사용 설명서'처럼). 내가 '근로소득' 없이 가정을 책임지고 있다면? 우리 집안의 것을 만들어도 좋다. 실제로 내가 접한 <그라운드룰> 중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아있는 건 넷플릭스 공동창업자 마크 랜돌프가 소개한 [랜돌프 집안의 성공 규칙]이었다.


함께 어우러져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과 공동의 약속을 '합의하는 경험'을 모두 다 해보길 바란다. 어떤 멋들어진 약속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난 뭘 싫어하나 고민해 봤다.

회사에서의 나는,

    - 하대하는 말투

    - 부품처럼 굴려지는 것

    - 납득 안 가는 일방적 업무지시

    -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들

    - 내가 하는 일의 진짜 고객을 잊은 의사결정

이런 것들을 싫어한다. 스스로 무엇을 싫어하는지 정리해 보는 것도 꽤 도움이 되는 좋은 경험인 듯하다.


굿띵워킹(goodthings of working)
제가 생각하는 '회사원으로 일하는 것의 좋은 점'은 단연 '좋은 동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느 때와 같이 회의를 끝냈는데 회의가 그 자체로 너무 즐거웠던 적이 있습니다.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고 일도 재밌게 하고 서로를 위하는 동료들과 함께 해서였더라고요. 회사에서 의미도, 재미도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서로의 안위를 살피고 서로의 나아감을 돕는 좋은 동료들이 있었다면 그들의 안색이 달라지진 않았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회사가 돈벌이 수단에 그치지 않고 자아를 실현하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고, 보고, 들은 것들을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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