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포기하다.

그리고 마음과 생각 뱉음을 시작하다

by 성호
10대 학창 시절,


나는 다른 재주는 너무도 없었지만 글쓰기를 할 땐 즐거웠고,


내 글을 읽는 선생님들은 칭찬을 종종 해주셨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께서 학습지보단 동화와 소설책을 많이 사주셨던 터라

학업보단 책 읽는 시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결과리라,


물론 학창 시절 때, 또래에 비해서 조금 더 나을 뿐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사실 글 쓰는 것보다는 혼자 상상하는 것을 더 즐겨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글의 매력은 '자유' 그 자체라고 생각하고, 범위는 무한하다.


가치관과 생각, 느낌, 일상, 지식, 정보 등 모든 분야를 나타내는 실로 마법과도 같은 것임을,



멋지고 아름다운 글을 쓰는 것이 내 어릴 적 꿈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대학교, 직장생활을 했을 때도 직업적인 목표가 아닌, 진짜 이루고 싶은 내 꿈은 작가였다.



불과 며칠 전까지는 그러했다.


기분이 울적한 요즘이라, 뭐라도 해야 할 듯해서 "미국 드라마"를 찾아보다가 (한국 드라마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 뻔한 스토리로 무한 반복인 게 많아서 잘 안 보게 되더라...)


빨간 머리 앤이 바로 눈에 띄었다.

어릴 적에 책과 애니메이션으로 보던 그 시절 추억과 감성이 깃들어 있는 제목이었다.


애니가 영화 또는 드라마로 실사화해서 성공한 케이스가 많지 않았고, 오히려 원작의 명성을 망치는 경우가 많아서 재생 버튼에 손이 가질 않았다.


이 드라마를 볼까, 말까,

원작을 추억으로 간직하는 것이 낫겠지...

라고 생각하다가 잠이 안 오는 울적한 새벽에 이 드라마를 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영화, 애니, 드라마 등 모든 영상 매체를 볼 때 건너뛰는 기능이 있으면 거의 5초 ~ 10초 간격을 중간마다 건너서 본다.

내용 상 큰 영향이 없는 부분들이라 생각되는 구간은 건너뛰고 보는 게 습관인지라 "빨간 머리 앤 드라마도 좀 빨리 구간을 넘겨서 훑어보자" 마음속으로 외치고 재생을 눌렀다.

큰 기대를 안 하고,

아니

이미 시작 전부터 실망할 것을 생각해두고 재생을 했던 터라 무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도 색채가 아름다운 영상미에 몇 초간 멍한 표정이 지어지더라,


이 아름다운 영상미에 시선과 정신이 홀려있을 때

"앤"의 연기에 마음까지 사로잡혔다.


대략적인 초반 줄거리는

'마릴라 커스번드'가 농장 일을 도울 '남자아이'를 고아원에서 데리고 오도록 남매인 '매튜'에게 부탁한다.

매튜가 전달을 잘못해서 '여자 아이'인 앤을 데리고 오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앤이 하는 한 마디, 한 마디, 말은 어릴 적 내가 느꼈던 감정과 크게 달랐다.


앤이 하는 모든 말은 나에게 감격이란 단어로 내 마음을 두드렸다.


마릴라가 앤에게 다시 고아원으로 보낸다고 말한 다음 날 아침, 앤은 창 밖에 핀 하얀 꽃을 보고 말한다.


"눈의 여왕이시여, 하사하신 선물을 받습니다. 제게 책이 있다면 이 신성한 꽃을 거기에 넣어 이 소중한 순간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겠죠."


하얀 꽃을 보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담아 이런 표현을 하다니,

어떤 이는 저런 표현이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수 있지만,


나에겐 너무나 큰 감격이었다.

난 이 구절 하나에 내가 썼던 글이 얼마나 미약한지 깨달았다.


작가를 꿈으로 생각하는 게 자신감이 아닌 자만심이었다고 느꼈다.


앤이 하는 말은 슬픔, 기쁨, 감동, 깨달음이 함축되어 있고 철학적인 내용 또한 가득했다.

난 저런 완벽한 글을 쓸 자신이 없음에 글쓰기를 포기했다.


다만

그저 내 마음과 생각을 내뱉어 글로 표현하고 싶다.

위 두 가지 차이점이 무엇일까,

내 기준에 부족한 글을 쓰는 것은 '글'이라고 생각하기보단 표현이라 생각한다.


나에겐

"당신의 글을 보여주세요."라는 말을 아직은 들을 자격이 없기에,


"당신의 내면을 표현해주세요."가 더 어울릴 거라 생각한다.


포기함과 동시에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빨간머리 앤을 통해 삶의 큰 깨달음을 건네준 '루시 모드 몽고메리' 작가님께 큰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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