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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abba Jun 21. 2021

파타고니아는 왜 맥주를 만들까?

패션포스트 38호 (2020.8.31) / 구아정의 브랜드 이야기

파타고니아는 왜 맥주를 만들까

*본 칼럼은 패션 전문 비즈니스 미디어 '패션포스트'에 기고한 글로 출처를 밝힌 후 공유 부탁 드립니다.
*출처 : 패션포스트 http://fpost.co.kr/board/bbs/board.php?bo_table=fsp43



소비자의 지갑을 지속적으로 열게 만드는 것은 브랜드를 단단하게 하는 힘, 내면의 철학과 가치다.


가끔 브랜드의 알 수 없는 행보에 우리는 놀라기도 하고 의문을 품기도 한다. 뷰티 브랜드가 왜? 식품 브랜드가 왜? 패션 브랜드가 왜?  


“ㅇㅇis 뭔들”이란 말이 있다. 고객 충성도가 높은 브랜드일수록, 전례 없던 엉뚱한 행동에도 박수와 함께 무한으로 응원하며, 구매와 인증샷을 통해 브랜드의 ‘찐 덕후’라는 것을 증명하고는 한다. 이것은 비단 브랜드 특유의 디자인이나 감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진짜 해야 할 일


소비자는 브랜드가 보여주는 ‘표면적 감각’에 먼저 반응하지만, 그 감각을 계속 유지하게 하는 것은 브랜드가 지닌 ‘내면의 힘’이다. 소비자가 직접 보거나 만질 수는 없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로부터 나오는 힘이다.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그리고 많은 이들이 열망하는 브랜드 중의 하나인 파타고니아. 카테고리로 구분해 보자면 패션, 아웃도어 브랜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는 완전히 생산자의 입장인 것이다. 파타고니아를 구매하는 이들은 단순히 ‘의류·잡화의 기능’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닌, 파타고니아의 철학에 공감하고 그 신념을 사는 것이다. 물론 ‘유행’도 한몫하지만, 단순히 한 번만 사는 이들을 파타고니아의 팬이라고는 하지 않으니 제외하도록 하자.  

파타고니아의 판매 카테고리를 보면 분명 패션업에 가깝다. 하지만 ‘의류산업’에 한정지어 말할 수 있을까? 판매 품목의 대부분이 의류이기는 하지만, 이들은 환경과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연어나 육포 같은 식품을 만들고 심지어 맥주까지 만들어서 판매한다. 그리고 파타고니아의 팬들은 이런 브랜드의 전개를 환영하고, 기꺼이 참여한다. 구매로 브랜드 충성도를 증명한다.  


파타고니아의 창립자인 이본 쉬나르(Yvon Chouinard)는 암벽 등반가이자 환경 운동가이다. 암벽을 등반하며 바위가 부서지는 것을 보고, 이렇게 계속 등반을 하다가는 바위가 남지 않게 되어 좋아하는 운동을 더 이상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바위가 다치지 않는 등산장비를 만드는 것이었고, 그렇게 파타고니아라는 브랜드가 만들어졌다. 태생부터 ‘환경’을 위한 브랜드였고, 이본 쉬나르의 생각은 기업과 직원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렇듯 파타고니아의 목적은 ‘의류 판매’가 아니다. 엔진이 존재하지 않는 ‘조용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자연과의 교감을 하기 위해 만든 브랜드다. 패션 그 이상을 넘어 ‘환경운동 기업’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농업과 지구의 미래를 위한 일


환경 피해의 최소화라는 사명 아래 파타고니아가 시도한 영역은 바로 ‘식품’이다. 재킷은 5년 또는 10년마다 한 번의 구매를 필요로 하지만, 식품은 하루에 3번은 먹는다. 그렇기에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진짜 해야 할 일은 바로 식품사업이라고 이본 쉬나드는 말한다(파타고니아 프로비전 홈페이지 참조).  

파타고니아의 식품 사업의 목표도 이제껏 해 온 모든 일들의 목표와 동일하다. 품질이 가장 뛰어난 제품을 만들고, 환경에 불필요한 피해를 끼치지 않으며, 아마도 가장 중요한, 환경 위기에 대한 해결 수단으로 삼을 것이라는 게 이들이 하고자 하는 먹거리 사업이다(파타고니아 코리아 홈페이지 참조). 


파타고니아가 시작한 식품 사업은 이러한 형태다.  

야생 연어를 포획할 때는 생물학자와 NGO와 같은 전문가와 함께 의논하여 개체 수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적정량만을 잡아 판매한다. 또한 원산지나 그 근처에서만 수행하는 ‘장소 기반 어업’으로 최대한 야생 연어 개체군을 보호한다. 자연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대량 포획하지 않고 꼭 필요한 양만을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다. 

버팔로 육포 제작은 동물 사육에서부터 시작한다. 자유방목으로 키우며 인위적인 사료는 먹이지 않고 최대한 스트레스 없이 키운다. 육식 식단이 존재하는 한 최대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수확할 것을 이야기하며, 지구를 위해서는 ‘곡물 기반의 식단’으로 이동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맥주를 만드는 것일까. 맥주 역시 곡물과 홉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결국 ‘농산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파타고니아의 농업은 유기 재생을 지향한다. 토양 생물의 다양성을 복원하고, 화학 비료나 살충제 없이 효율적으로 작물을 재배할 수 있어 지구를 보호할 수 있다. 이에 적합한 ‘컨자’라는 개량 품종으로 맥주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 결국 맥주 또한 파타고니아가 바라보는 농업과 지구의 미래를 위한 일이 되는 것이다.  



명확한 철학과 가치가 브랜드의 힘


식품을 대하는 파타고니아의 태도는 ‘의류’에 대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불필요한 요소는 제거하고, 지역 경제에 도움을 주는 방식을 택하고, 무엇보다 제품을 소비하는 것만으로도 환경을 보호하는 활동이 되게 한다.  


브랜드의 업(業)은 제품의 카테고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업’이란 단어 그대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정의로 브랜드의 가치나 철학에 더 맞닿아 있는 것이다. 사업 초기에는 브랜드의 가치를 가장 잘 구체화할 수 있는 상품에 집중하되, 브랜드를 하나의 카테고리로만 한정 지을 필요는 없다.  

철학과 가치를 기준으로 한다면, 브랜드는 훨씬 더 다양한 제품으로 확장할 수 있고, 더 다양한 활동을 펼쳐 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 지금의 소비자는 그런 브랜드를 원한다. 같은 제품이라면, 명확한 가치가 있는 브랜드에 더 반응한다. ‘있어빌리티(남들에게 있어 보이게 하는 능력을 뜻하는 신조어)’한 SNS 인증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합니다’라는 사명을 지닌 파타고니아가 그 다음으로 가구를 만든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패션 기업이 아닌 ‘환경보호 기업’으로써 폐목을 활용한 가구 제작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역시 파타고니아’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기꺼이 구매를 통해 브랜드와 함께 할 것이다.  


소비자는 브랜드의 감각에 끌린다. 그들이 표출하는 디자인과 질감과 향에 매혹된다. 하지만 소비자의 지갑을 지속적으로 열게 만드는 것은 브랜드를 단단하게 하는 힘, 내면의 철학과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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