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포스트 / 2022년 04월 11일
*본 칼럼은 패션 전문 비즈니스 미디어 '패션포스트'에 기고한 글로 출처를 밝힌 후 공유 부탁 드립니다.
*출처 : 패션포스트 http://fpost.co.kr/board/bbs/board.php?bo_table=fsp43&wr_id=16
2021년 11월,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가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의 게시물을 모두 밀어내고 단 6개의 게시물만을 남겼다. 내용은 더 이상의 소셜 미디어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러쉬는 홈페이지를 통해 소셜 미디어를 중단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디지털 세대인 젊은 층이 소셜 미디어로 인해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 괴롭힘, 가짜 뉴스, 극단주의, 고립공포감(FOMO, Fear Of Missing Out), 유령진동증후군(phantom vibration, 휴대전화 중독과 의존도가 심해지면서, 실제로는 전화나 문자가 오지 않았는데 휴대전화 벨 소리가 들리거나 진동을 느낀 것 같이 착각하는 현상), 조작된 알고리즘까지 끝도 없이 많은 유해성 요소는 청소년들의 자살, 우울증과 불안을 증가시키고 있다.”
러쉬 제품 개발자이자 글로벌 디지털 수장인 ‘잭 콘스탄틴’은 소셜 미디어는 러쉬의 활동과 정반대의 목적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휴식과 웰빙에 집중할 수 있게 배쓰 밤과 같은 제품을 만들지만, 소셜 미디어는 오히려 진정한 휴식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
소셜 미디어가 일상에 피해가 될 정도로 방해가 되고 불안감을 조장하여 긴장감을 주는 것은 결코 러쉬가 지향하는 삶이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러쉬는 일부 소셜 미디어 활동을 중단했다. (트위터, 유튜브, 뉴스레터, 국내에서는 카카오 플러스친구 등은 계속해서 운영한다.)
러쉬가 소셜 미디어를 중단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9년에도 소셜 미디어의 중단을 선언했었다. 그러다 팬데믹으로 오프라인 활동이 어려워지자 고객과의 소통을 위해 소셜 미디어를 재개하였다. 러쉬는 소셜 미디어를 지속하면서도 ‘디지털 디톡스 데이’를 통해 SNS와 거리두기 캠페인을 실행해왔다. 그리고 러쉬는 심각해지는 소셜 미디어의 중독과 알고리즘의 폐해를 막기 위해 소셜 미디어 운영을 다시 중단했다.
러쉬가 소셜 미디어를 중단한 최초의 기업은 아니다. 보테가 베네타, 발렌시아와 같은 패션 기업들도 인스타그램 활동을 멈추었다. 자사 사이트의 트래픽을 확보하고, 브랜드와 고객과의 관계를 더 견고히 하기 위해서였다. 이 과정에서 소셜 미디어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
다만 뉴스레터나 유튜브, 트위터는 계속 유지하는 것을 보아 기업과 팬의 관계를 고려하여 선택적으로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만으로 중단한 것은 아니다. 러쉬가 이렇게 행동한 이유에는 ‘브랜드 철학’이 있다.
러쉬의 슬로건은 ‘프레쉬 핸드메이드 코스메틱’이다. 이에 맞게 과일이나 채소를 윤리적인 공정으로 재배하고 직접 손으로 제품을 만든다. 모든 제품은 베지테리언을 원칙으로 하며,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다. 제품 포장과 보존제는 최소화한다. 제품에 대한 신뢰를 주기 위해 제조자의 얼굴 스티커를 라벨에 붙이기도 한다. 이 외에도 소수와 약자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며, 올바른 사회적 이념에 대해 적극 지지한다. 러쉬의 미션은 제품이 가진 올바른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목소리를 기꺼이 높인다.
러쉬는 행동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캠페인으로 ‘naked’가 있다. 이는 제품의 포장지 없는 방식에서 착안한 캠페인이다. 포장지가 없는 바디 솝처럼, 러쉬 직원들이 탈의한 상태로 거리 시위를 한다. 포장지를 최소화하자는 메시지를 행동으로 보여준다.
때로는 매장 직원의 유니폼을 활용하기도 한다. ‘동물 실험 반대’와 같은 메시지를 유니폼에 새긴다. 러쉬의 직원 개개인이 미디어이자 메시지가 되어 사람들에게 기업의 생각을 공유한다. 소셜 미디어 역시 그들의 목소리를 내는 창구 역할을 해 왔다. 팬데믹으로 네이키드 캠페인을 할 수 없게 되자 온라인으로 무대를 옮겨 ‘디지털 마라톤’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에서는 오히려 주객전도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러쉬의 인스타그램만 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많은 시간을 소셜 미디어에 할애하며 일상에 휴식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러쉬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했던 것이다.
러쉬는 기업의 이념과 미션이 명확하고, 항상 그에 따라 행동한다. 이번 소셜 미디어 중단 선언도 단순한 해프닝은 아닐 것이다. 팬데믹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아니었다면,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활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의 소셜 미디어 중단 선언은 철저하게 브랜드의 가치와 이념에 따른 행동이었다.
러쉬는 팬덤이 굳건한 브랜드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행동에 오히려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러쉬가 러쉬했다’라며 긍정적인 반응과 러쉬의 행보에 지지했다. 아마 뉴스레터 구독자가 늘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제 막 시작한 브랜드였다면 어땠을까? 단순히 신념만으로 인스타그램을 중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인스타그램을 한다고 해서, 브랜드와 맞지 않는데도 굳이 해야 할까? 브랜드를 론칭하며 인스타그램의 운영을 당연하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많은 리소스 투입 대비 성과를 예측해보면 멈칫할 수도 있다.
작은 브랜드가 제품과 서비스를 알리기에 인스타그램만 한 것도 없다. 나 또한 기업 담당자에게 인스타그램을 브랜드의 소통 창구로 활용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가끔은 고민이 되는 부분도 있다. 인스타그램은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편리한 플랫폼이다. 반면, 그만큼 팔로우를 모으기 어렵기도 하다.
모두가 하기에 눈에 띄기가 어렵다. 주목받기 위해 광고를 하게 된다. ‘소액으로 큰 효과’도 옛말이다.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티 나게 써야 한다.
중요한 것은 브랜드에 있어 인스타그램의 역할과 목적이다. 브랜드를 시작했으니 인스타그램도 당연히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브랜드를 준비하는 만큼, 인스타그램의 계정에도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업로드할 사진이나 영상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만 안정적으로 콘텐츠를 수급하고, 브랜드의 이미지를 일관되게 구축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준비는 필요하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진짜 우리 브랜드에 맞는 채널인지 고려해보자. 브랜드의 타깃이 정말 인스타그램을 많이 하는지, 페이스북을 하는지, 틱톡을 하는지 살펴보자. 인스타그램 사용자이지만, 오로지 개인의 계정이 목적이라면 브랜드 계정에는 관심 없을 수도 있다. 정보 수집용으로 오히려 다른 플랫폼을 활용할 수도 있고, 재미를 위해 머무는 곳이 유튜브나 틱톡일 수도 있다.
브랜드가 할 수 있는 콘텐츠와 타깃의 미디어 사용 성향에 따라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선택해야 한다. 빠른 바이럴이 목적이라면 인스타그램이 아니라 그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 공략이 훨씬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브랜드가 주고자 하는 경험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보다 생동감 있게 제품을 보여주고자 한다면 영상 중심의 플랫폼이 적합할 것이다. 정보 공유의 확산을 목표로 한다면 검색어 노출이 잘 되는 블로그나 스레드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트위터가 더 나은 선택지가 될 수도 있다. 브랜드가 원하는 경험에 따라 이용하는 소셜 미디어도 달라져야 한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는 인스타그램의 로컬 계정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카카오 플러스 친구나 뉴스레터와 같은 개인화된 창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일관된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해서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은 글로벌 계정만 운영하되, 국가별로 최적화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지역 특화 플랫폼을 활용한다. 국가별 프로모션, 이벤트 등의 소식은 오히려 인스타그램보다는 카카오 플러스친구와 같은 메시지가 훨씬 더 빠르게 접근 가능하기 때문이다.
브랜드에 소셜 미디어 운영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소셜 미디어를 중단하겠다고 한 러쉬 역시 무조건적인 중단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스냅챗, 왓츠앱은 중단하겠다고 했지만, 트위터나 유튜브는 계속해서 운영한다. 러쉬의 시각적 감각을 보여줄 수 있는 유튜브, 상대적으로 뚝심 있는 기업의 목소리를 내고, 팬덤 형성에 유리한 트위터는 유지하는 것이다. 또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보다는 피로도가 덜한 채널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왜 하는지. 누구나 다 하는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브랜드이다. 핵심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최적의 채널인지 판단해야 한다. 고객 여정에 있어 소셜 미디어가 어떤 역할을 해줄 것인지 고려해야 한다.
유행 따라 하는 소셜 미디어라면, 또 다른 플랫폼이 등장했을 때, ‘이것도 해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쫓아가기에 급급해질 것이다. 모든 것은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에서 판단하자. 브랜드와 함께 고객이 어떤 여정을 하게 할 것인지 청사진을 그리고 그에 맞는 소셜 미디어를 선택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