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포스트 / 2022년 0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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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패션포스트 http://fpost.co.kr/board/bbs/board.php?bo_table=fsp43&wr_id=17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내세우던 침대 브랜드는 어느 날 감각적인 광고 영상 한 편을 선보였다. 또 어느 날부터는 각종 공구를 팔기 시작했다.
광고와 매장에서 침대가 주인공은 아니었다. 매장은 ‘팝업 스토어’로 성수, 백화점, 부산에 이어 청담동에 자리 잡았다. 이천에는 대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도 열었다.
대표 침대 브랜드인 시몬스에서 이제는 시몬스 ‘침대’가 아닌 ‘시몬스’ 세 글자만 남겼다. MZ세대가 많이 찾는, 독특한 영상과 협업으로 ‘힙함’을 구현한 브랜드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모두들 시몬스를 두고 ‘침대를 팔지 않는 침대 브랜드’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시몬스는 정말 침대를 팔지 않는 걸까?
기존과 다른 문법의 영상으로 시몬스는 확실히 눈에 띄었다. 이해하긴 어려워도 ‘감각적이다’라는 인상 하나만큼은 강렬하게 남겼다. 영상에 반응한 세대 역시 기존 고객층과는 다른 MZ세대였다. 시몬스는 새로운 세대 반응을 매장으로 이어갔다.
침대 팔던 매장은 고스란히 남겨 두고, 기존 고객과는 겹치지 않는 새로운 장소에서, 기존에 없던 제품을 팔았다. 여기에 침대는 없었다.
패션 트렌드의 한 축인 워크웨어나 관련 소품들을 팔았다. 시몬스를 아는 사람들은 ‘침대회사가 대체 왜 이런 걸 팔지’라는 반응이었지만, 시몬스에 대한 이미지가 ‘0’이었던 세대들은 ‘시몬스’ 그 자체로 받아들였다. ‘침대가 아니면 어때, 힙하고 좋은걸!’. 오히려 침대 브랜드가 새로운 모습을 보이니 신선하고 재미있게 받아들였다. 무엇이든 새롭고, 재미있으면 일단 경험해보는 MZ세대에게 제대로 꽂혔다.
오히려 이미지가 없었던 브랜드가 편견 없이 새로운 이미지를 쌓기에 좋았던 것이다. 작은 공간이지만, MZ세대들은 시몬스를 경험하기 위해 기꺼이 줄을 섰다.
시몬스는 성수동의 성공 사례를 가지고 백화점과 부산에서도 MZ세대를 줄 세웠다. 백화점은 성수동과 같은 테마로, 부산에서는 좀 더 ‘지역친화적’으로 풀어냈다. 이 역시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경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MZ세대와 맞아떨어졌다. 시몬스는 부산의 명소를 소개하기도 하며, 부산의 유명한 식음료를 매장으로 끌어왔다. 시몬스에만 가도 부산의 로컬을 경험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성수에도, 백화점에도, 부산에도 침대는 없었다. 대신 시몬스는 팝업과 굿즈와 힙함의 대명사가 되었다. 핵심 제품인 침대를 없앴더니, 오히려 유명해진 것이다.
팝업 스토어를 연달아 성공하며, 시몬스는 아예 플래그십 스토어를 만들었다. ‘테라스’라는 콘셉트로 대규모 매장을 열었다. 여기에는 침대는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을 유인한 것은 침대보다도 ‘카페’였다. 팬데믹과 대규모 카페의 유행으로 사람들은 서울 근교 카페를 즐겨 찾는 추세다. 도심을 벗어나 마치 다른 곳에 온 듯, 가볍게 여행하는 느낌으로 팬데믹의 답답함을 풀었다.
시몬스 테라스 역시 이와 같은 유행의 흐름에 올라탔다. 서울 근교 카페로 ‘시몬스 테라스’가 소개되었다. 사람들은 ‘카페’를 목적으로 시몬스 테라스를 찾았다. 시몬스는 이들에게 침대보다도 ‘시몬스’라는 브랜드 자체를 보여주었다. 150년의 역사와 기술을 매장에 풀어냈다. 시몬스가 지닌 가치를 보여 준 것이다. 카페의 즐거운 경험이 기업의 가치로 이어지고, 그 마지막에 침대가 있다.
이와 같은 동선으로 침대를 마주했을 때, 매장에서 그냥 침대를 본 것과는 큰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특별한 이야기이자 경험으로 소비하게 되는 콘텐츠가 됐다. 그리고 시몬스는 부산과 이천을 거쳐 서울 청담으로 들어섰다. 이곳에서도 시몬스는 지역적 특성을 잃지 않는다. 이전의 청담-압구정의 활기를 되찾게 하겠다는 목표로 성수로 몰리는 MZ세대를 청담으로 끌어들였다. ‘샤퀴테리 숍’ 콘셉트로 청담동 특유의 이국적인 느낌으로 먹거리를 판매한다.
이번에는 ‘멍 때리기 영상(Oddly Satisfying Video)’ 공간까지 구성하여 캠페인 영상과 연계했다. 오프라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오감 충족의 공간이다.
시몬스는 본격적으로 침대를 선보였다. 다만, 매장이나 공식몰이 아닌 ‘29CM’에 입점을 한 것. 29CM 또한 판매가 아닌 홍보의 목적으로 선택한 채널일 수도 있다. 시몬스 역시 MZ세대를 현재보다 ‘미래 고객’에 의미를 두고 있다. 하지만 그들 중 침대를 구매하려 할 때, 그래서 시몬스를 구매하려 할 때 매장까지 찾아가기보다는 온라인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온라인으로 가구 사는 것이 익숙한 MZ세대에게 매장이나 공식몰로 안내하기보다, 그들에게 이미 익숙한 플랫폼을 선택한 것이다. 시몬스가 첫 번째 팝업 스토어로 성수동을 선택한 것처럼 말이다.
지금의 시몬스는 29CM 사용자와 어울리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취향이 확고하고 감각적인 브랜드를 좋아하는 MZ세대가 있는 29CM라는 공간을 선택한 것이다. 시몬스가 쌓아온 감각적이고 힙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팝업 스토어에 다녀온 고객들이 이용할 플랫폼을 떠올린다면 29CM가 최적의 선택지가 된다.
MZ세대가 지금 당장 침대가 필요하다면, 시몬스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익숙한 채널에서 침대를 검색했을 때 시몬스가 있다면, 장바구니에 담을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오프라인의 경험에서 온라인 구매까지, 시몬스는 MZ세대의 동선에 맞춰 설계를 한 셈이다.
결국, 시몬스는 침대를 파는 회사다. 시몬스의 최종 목표는 지금 공구를 사고, 버거를 산 MZ세대가 미래에 침대를 구매하게 만드는 것이다. 관계없는 구매는 일어나지 않는다. 가성비가 엄청나지 않은 이상, 한 가지라도 관계가 있는 브랜드를 선택하기 마련이다. 예전에는 판촉물이나 광고로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세대는 그렇게 간단하게 판단하지 않는다.
일단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요소가 있어야 하고, 이면에는 가치도 탄탄해야 한다. 친환경이든, 기술력이든 기본기가 있어야 한다. 시몬스는 오래된 기술력은 잠시 뒤로 하고, 일단 MZ세대가 끌릴 만한 이미지를 팝업 스토어에서 내세웠다. 그리고 기업의 스토리는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제대로 펼쳐냈다.
구매 포인트는 그들이 선호하는 플랫폼으로 거점을 두었다. 이 모든 경험의 끝은 침대 구매로 귀결한다. 시몬스가 대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침대만’ 팔지 않은 것이다. 역으로 다양한 굿즈를 판매한 덕에 자유로울 수 있었다.
침대는 브랜드의 흔들리지 않는 핵심 가치이되, 시몬스는 더 넓은 영역에서 소비자와의 접점을 만들었다. 트렌디한 아이템부터 로컬의 먹거리, 심지어 입을 거리까지 말이다. 덕분에 뭘 팔아도 되는 요즘 브랜드가 되었다.
이제는 ‘시몬스 침대’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다. 시몬스는 그 자체가 상품이자 가치가 되었다. 타깃-제품-채널의 확장으로 시몬스의 중심은 오히려 흔들림 없이 더 단단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