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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abba Mar 07. 2018

크로와상과 커피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에서 맛본 나의 첫 크로와상


굉장히 신선한 샌드위치가 먹고 싶었다. 양상추와 햄과 치즈가 들어간 굉장히 전형적인 샌드위치. 마침, 향하던 곳이 베이커리 겸 카페였고 그곳에서 반갑게도 내가 딱 원하던 샌드위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크로와상 샌드위치. 양상추, 햄, 치즈만이 들어간 굉장히 클래식한 모습의 샌드위치였다. 맛도 내가 상상하던 딱 그 맛이었다. 그리고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한잔 쭉 들이켰다. 아, 행복하다.


크로와상을 마주하면 늘 스쳐지나가는 맛이 있다. 10년 전에 먹었던 그 맛.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쌀쌀한 공기와 함께 먹었던 바삭하고 부드러웠던 그 맛. 




왜 하필 이탈리아와 스위스를 엮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이유가 생각 나질 않는다. 그냥 친구랑 여행 루트를 짜다, 이탈리아 3개 도시를 돌고 스위스로 넘어가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기차로 여행할 수 있다는 사실에 좋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게다가 '침대'가 있는 기차를 탈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해리포터나 셜록홈즈가 탔을 법한 클래식한 증기 기관차를 떠올렸다. 지금은 21세기인데도, 18세기의 증기기관차를 떠올리고 있다니. 


이탈리아에서의 여행을 끝내고 스위스 인터라켄으로 가기 위한 기차를 탔을 때 약간은 실망 했었다. 아니, 왜이렇게 한국인들이 많은거야? 단체 여행이라도 있었는지, 영어나 유럽국가의 언어보다도 한국어를 훨씬 더 많이 들었다. 


유럽은 늘 한국인들로 차고 넘치기에 여행 중에서도 그냥 그러려니 했었는데 왜인지 이 기차에서만큼은 마주하고 싶지 않았는데, 뭐 어쩔 수 있나. 그나마 내가 탄 기차에는 한국인 승객이 아니라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침대칸 기차는 작았지만, 굉장히 편했다. 2층 침대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도 흥미로웠고, 기차 내에는 간단히 씻을 수 있는 곳도 있었다. (고 들었다. 나는 그냥 씻는걸 포기했다. 여기서 씻느니 차라리 좀 참고 말지.)



당시 탔던 기차의 내 침대. 콘센트도 있었다. (c)guabba


기차에 올라타고 자리를 잡고 나니 승무원은 승객들의 여권을 가져갔다. 아, 우리 국경을 넘어가는 거지. 비행기가 아닌데 여권을 확인 하는 것도 신기했다. 사실 당연한 건데. 그리고 여권을 가장 믿을 만한 곳에 보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돈 보다도 여권 분실이 여행자에게는 훨씬 더 위험한 일이니깐.


기차의 속도는 적당했다. 너무 빨라서 귀가 아파오거나 어지럽지도 않았고, 차창 밖의 풍경을 즐기기에 충분한 속도였다. 스위스로 넘어가는 그 어드메쯤에서 바깥 풍경을 보고 싶었지만 불빛 하나 없는 산을 통과 하는 중인지 차창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유리에 반사되는 내 모습만 보일 뿐. 


국경을 보고 싶었건만, 어차피 안 보일거란 생각에 잠자리에 들었다. 흔들리는 기차 였지만 굉장히 잘 잤다.




어떻게 일어났는지 기억 나진 않는다. 밖이 밝아져서 눈을 떠보니 새벽 6시쯤? 됐던 듯 하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 온, 나의 가장 안전한 여권 보관소였던 승무원은 다시 우리에게 여권을 주었다. 아, 이제 곧 내리는 구나.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조식. 바로 크로와상과 따뜻한 커피였다. 

볼품 없었다. 그냥 크로와상은 투명한 플라스틱 박스에 떡 하니 담겨 있었고 버터나 잼 같은 것도 없었다. 커피도 그냥 종이컵에 한잔 부어 주었다. 


보잘 것 없는 빵 하나와 커피 한잔이었지만, 나에겐 참 반가운 식사였다. 돈 없는 여행자에게 공짜 음식이라니! 숙박과 교통비를 동시에 해결한 것도 좋은데, 조식까지 해결할 수 있다니. 아 참 좋은 기차 구나.


커피와 빵을 즐길 새도 없이 목적지에 다다랐고 내친구와 나는 무거운 트렁크를 힘겹게 끌고 내렸다. 새벽 시간이라 우리 둘다 비몽사몽이었지만, 어쨌든 빨리 이동하기 위해 책과 지도를 들여다 봤다. 그리고 들고 이동할 수 없기에 잠시 짬을 내어 크로와상과 커피를 맛보았다. 


'어라?' 

정말 뭐 하나 없는데, 이거 왜이렇게 맛있어? 

정신 없는 틈에 맛본 크로와상과 커피는 정말 맛있었다. 아, 여기가 스위스구나! 하는 기쁨과 동시에 찾아온 감탄의 맛이랄까. 잠을 푹 못잤기 때문에, 새벽에 일어났기 때문에, 뜻하지 않은 먹거리였기에 그 맛은 더더욱 좋았던 거겠지만, 그래도 그 맛은 지금까지의 빵과는 다른 맛이었다. 


'아 이게 크로와상 이라는 거구나'

생에 처음 맛본 크로와상 이었다. 아니 이전에도 먹어봤었나? 하지만 기억에 없는걸 보니 그 크로와상이 나에겐 첫 크로와상이었으리라. 


주스와 곱게 포장되어 있던 크로와상. 허나 주스의 맛은 완전 잊고 있었다. ;; (c)guabba





그 이후, 나는 크로와상에 완전 매료되어 부러 찾아 먹고는 한다. 그리고 나만의 크로와상 법칙을 만들었는데 그 규칙은 다음과 같다. 


-. 크로와상은 아침에 먹는 음식이다. 낮도, 저녁도 아닌 꼭 아침에.

-. 크로와상은 '오리지널'만이 크로와상이다. 무언가 올라가 있는 것은 크로와상이 아니다.
   (샌드위치는 ok. 크로와상 본체에 무언가 얹은 건 아니니깐)

-. 크로와상은 '커피'와 먹는다. 녹차나 홍차는 안된다. 


이 세가지 규칙은 스위스의 조식에서 탄생된 것으로, 왜인지 이 규칙에서 벗어나면 크로와상이 아니라고 단정짓게 된다. 그 날의 크로와상 감동이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나 보다.





그런 음식들이 있다. 보잘 것 없는데, 진짜 별거 아니었는데 음식들을 먹었던 그 날의 분위기, 함께했던 사람, 그날의 감정들로 본래보다 더 맛있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그런 음식들. 

그리고 그날의 분위기를 계속 기억하고 싶어서, 되새기고 싶어서 찾게 된다. 나에게 크로와상이 그렇다. 스위스의 첫 공기와 함께 훅 하고 들어왔던 감동처럼, 무언가 특별한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나는 크로와상을 찾는다. 아무것도 발라져 있지 않은 클래식한 크로와상을 따듯한 커피 한잔과 함께. 


크로와상을 한입 베어물고 커피를 한모금 마시면,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설령, 그런 하루가 아니라도 괜찮다. 아침에 크로와상과 커피를 맛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이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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