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살롱] Be my B : 라이프브랜드컨퍼런스2018 (3)
우리나라에서 좋아하는 잡지라면 딱 두 가지가 있다. 보그와 지큐.
보그는 패션과 뷰티 등의 트렌드를 발 빠르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왜인지 '보그'라는 브랜드가 좋아서 찾게 되는 잡지이다.
'GQ'는, 패션이나 뷰티 트렌드보다는, 지금 살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세련된 방식으로 보여주는 잡지라 좋아한다. 카테고리로 보자면 '남성 잡지'이지만, 나에게는 그 어떤 책 보다 훨씬 더 많은 인사이트를 안겨주는 잡지이다.
GQ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이충걸' 편집장님(이제는 전 편집장님이지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잡지의 시작을 알리는 'Editor's Letter'는 어떤 잡지를 읽든 꼭 읽어보는데, GQ는 이충걸 편집장님 글빨(!) 때문에 더더욱 꼼꼼하게 읽어본다.
GQ에게 반했던 사건이 하나 있다. GQ는 왜 외래어를 쓰지 않는다는 편집장님의 말이었는데, 우리나라 잡지니깐 한글로 표현하는 게 맞고, 굳이 영어로 쓸 필요도 없다. 그것이 쿨해 보이지도 않는다 라는... 이런 내용의 말이었다. 잡지는 대부분 '세련, 트렌디, 정보 제공자'라는 입장에서 트렌드 팔로워들을 이끌어내고, 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기 위해 다소 복잡해 보이고, 어렵고, 신조어를 쓰기 마련이다. 게다 외국에서 흘러온 것들이 많으니 한국어로 치환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하지만 GQ는 특정 단어 (대체 불가능한 고유명사 같은)를 제외하고서는 꼭 맞는 한글로 표현을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잡지지만 글들이 참 유려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는 분 중 한 분이라고 생각하는 이충걸 편집장님. 그분이 이번 라이프브랜드 컨퍼런스의 연사로 올려져 있는 것을 보고, 지체 없이 티켓을 끊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번 컨퍼런스의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충걸 편집장님의 섹션은 이번 라브컨의 운영을 이끈 우승우 대표님과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GQ와 이충걸이라는 브랜드에 대해 한 시간가량 섹션이 진행되었다.
질문과 답변은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요점만 정리하였으니 참고하길. 편의상 '전편집장님' 이란 호칭은 '편집장님'으로 진행이 되었다.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GQ'로 인해 달라진 우리나라의 남자들에 대해.
(초반에는 마이크의 혼선으로 대답이 잘 들리지 않아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편집장님은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다. '옷 잘 입는 남자들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잘 나가는 곳, 소위 말하는 '힙'한 곳에 가면 온통 여자뿐이라며,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이는 이충걸 편집장님의 '눈높이'가 상당한 것도 있겠지만, 남자들의 '유행'에 대한 일침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비싼 옷을 걸친 사람들은 많지만, 그것을 '자기답게' 잘 입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는 의미였을 거라고 생각된다. 순간 멍- 해지는 느낌이었다.
Q. 편집장님은 자존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했나요.
- 광고주와 연예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회사에 밀리면 안 된다.
- 브랜드와 관계 맺지 않았다. 않으려 했다. 그들과 식사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를 나오니 친구가 없다. (일동 웃음)
- 잡지는 한 달의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것
- '자존'은 결국 높은 기준이다.
- 세 가지를 하지 않는 것으로 기준을 잡았다. 인터뷰, 거래, 영업을 '안 하겠다'라는 것.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에디터에게 해당된다. 그들을 거래하러, 영업하러 절대 보내지 않았다.
- 해외 'GQ'와 비교했을 때, 같은 조건이라면 잘 만들 자신이 있었다.
GQ를 보다 보면 굉장히 '정제' 되어 있고, 고고함마저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는 아마 편집장님의 '높은 기준'에서 나오는 것들이 아니었을까. 당장 외국의 GQ와 비교만 해봐도 알 수 있는데, 나는 외국의 그 어떤 잡지보다도 우리나라 GQ가 훨씬 퀄리티 있다고 생각한다. 유명한 셀럽이나 모델, 포토그래퍼 섭외는 해외 매거진이 더 쉬울진 몰라도, 우리나라만큼 깔끔하게 잘 만든 매거진은 없는 것 같다.
이어서 GQ 매거진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라카미와의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해 정말 수도 없이 요청하고, 수많은 시간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런 기다림 끝에 실릴 수 있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인터뷰'. 가히 '마스터피스'가 될만하다.
비주얼의 첫 번째 목표는 '충격'이라고 한다. 저런 산속에서, 그것도 물 안에 들어가 '비싼 슈트'를 입고 탁구를 치는 것 자체가 충격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다음은, 역사에 길이 남을 GQ 블랙 에디션. 이 기획은 편집장님이 '하고 싶어서' 하게 되었다고 한다. 미디어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선택한 것이, 오히려 눈에 띄는 컬러를 다 뺀 것이었다.
GQ의 블랙 에디션은 너무 유명해서, 게다 '모나미'와 한정판으로 출시까지 했었기에 더더욱 기억에 남는다. 패션과 뷰티 등 '컬러'를 빼고 이야기하기가 어려웠을 텐데, GQ는 이 어려운 걸 벌써 4년째 해내고 있다.
GQ의 이런 의미에 동의한 광고주들은 그들의 광고까지도 '흑백'으로 처리하는 것을 흔쾌히 수락했다고.
GQ의 부록으로 출시되었던 단편 소설집 'A MAN WITH A SUIT'. 요 소설집이 또 은근 재밌었다. 단숨에 읽어버렸던 책.
박완규 작가님이 하지 않는다고 해서, 편집장님이 협박 아닌 협박(?!!)으로 기고하게 했다고. 그렇게 해서 박완규 님의 소설도 이 책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시계는 편집장님이 좋아하는 것 중 하나라고 한다. 시계는 유한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불멸이 되기도 하는 기준으로, 정신적인 삶을 의미한다고.
이때, 흥미로웠던 건 '가격 미정'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이는 너무 비싸서 독자가 부담을 느낄 수 있어서 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하. 대체 얼마길래. 난 늘 궁금했는데.
배우 김용림 님의 화보. 그녀에게서 기존 배역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나도 기억에 남는 화보. 엇, 이분에게서 이런 마초 & 퇴폐미가 있었다니, 하며 놀라면서 봤었다.
정보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잡지에서 무언가 쉬어 가는 페이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획된 화보라고 한다. '사색' 할 수 있게끔 빈칸을 많이 노출했다고 하는데, 사실 이런 비주얼은 잡지에서는 금기와도 같다고 한다.
내가 만약 잡지를 보다 이 화보를 보았다면, 정말 마음 느긋하게 차 한잔 마시며 뚫어져라 봤을 듯싶다. 마치 갤러리에서 커다랗고, 여백이 많은 그림을 보듯.
지금 이 시대에서 돈으로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은 '젊음'과 '맛집'이라고.
진짜 맛집에 대한 가치를 전달하고자 맛집 아닌 맛집을 찾아 인터뷰하고, 글로 적어 내려 간 기사.
몇 가지 마스터피스가 있었지만, 시간상 설명을 다 듣지는 못했다. 너무너무 아쉬운..
GQ의 마스터피스를 보며, 내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던 것들도 있어서 역시 마스터피스다운 기사, 화보였구나 싶었다. 독자가 아직도 기억하게 한다는 건, 정말 잡지에서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었을 테니.
Q.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가 있다면.
-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정말 좋은 옷, 스타일 좋은 옷을 만든 디자이너지만, 그 자신은 옷을 잘 입지 않는다. 그에 대한 아르마니의 답변은 '나는 바쁘다'이다.
- 인정하기 전까진 늙은 게 아니다.
- 세상에 새로운 디자인은 없다. 상황을 받아들이는 유연함이 있다.
(무언가 더 말이 있었지만, 잘 들리지 않아 메모에 실패했다. 아아.. ㅜㅜ )
Q. 존경하는 인물이 있나요.
- 김연아. 그는 허튼 말을 하지 않으며, 약속을 지킨다. 해내겠다 하면, 해내고 만다.
- 아사다 마오의 점프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김연아는 이렇게 대답했다. '잘못된 점프가 쉬운 것이 아니다.'
Q. 편집장을 그만두니 어떤가요.
- '무(無)'의 상태다. 다 퍼준 연애가 끝난 상태와 같다.
- 아쉬움이나 미련 같은 건 없다. 그들의 삶을 살아야 한다.
Q. 좋은 질문은 어떤 게 좋은 질문일까요.
- 물음표가 있다고 질문이 아니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관찰'을 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나서, 그제야 하는 것이 '질문'이다.
Q.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 너무 즐거워서 폭발할 것 같다. 이대로 관에 들어가도 좋을 만큼 좋다.
Q.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나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좋은 자리에 가면 다들 좋은 브랜드 옷을 입고 있다. 근데 다들 못생겼다. 너무 슬프다. 나는 그냥 동네에서 산, 평소에 입던 옷을 입고 간다.
- 본성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이충걸 편집장님과의 대화는 이렇게 끝이 났다. 마지막엔 시간의 압박으로 이전보다 빠르게 말씀하셨다. 편집장님의 원래 호흡대로 말하였다면, 느낌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GQ의 마스터피스를 하나하나 다 보지 못한 것 또한 아쉬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떻게 GQ를 만들어 왔는지, 무엇을 하고 하지 않으려 애써왔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매거진'이라고 하는 본질을 지키려 하였고, 에디터로서 해야 할 일을 하고, 불필요한 일들은 만들지 않았다.
그는 GQ의 일을 끝내고 나서 '무'의 상태가 된 것만 같다고 하였다. 후회도 없다고 하였다. 아마, 편집장님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해야만 하는 일을 다 했기에 더 이상 미련도 후회도 남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한 시간 정도면 꽤나 길거라고 생각했는데, 두세 시간이어도 모자랐을 이충걸 편집장님, 그리고 GQ의 이야기. 세 개의 책을 집필 중이라고 하니, 그 책들이 어서 나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다.
그런데, 편집장님께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GQ가 생각하는 GQ의 '여성 독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혹은 누구여야 할까요.
한 시간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질문이었다.
라이프 브랜드 컨퍼런스 2018 후기 1편은 요기
라이프 브랜드 컨퍼런스 2018 후기 2편은 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