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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abba Mar 30. 2018

너의 이름으로 불러줘. 나의 이름으로 부를게.

[영화리뷰] Call me by your name


언니 그거 노잼, 아니 무(無)잼 이예요.


홍대에서 같이 살때 남 들 잘 안보는 영화, 그러니깐 극장에서 언제 사라질지 모를 그런 영화를 같이 보는 친구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데, 자연스레 '콜바넴('콜미 바이 유어 네임'의 줄임말)'도 언급이 되었고, 그녀는 영화를 '무잼' 이라고 표현했다.


맞다. 이 영화는 확실히 재미가 없다. 두시간이 넘는 러닝타임동안 굴곡도 없고 큰 반전도 없는 드라마이다. 그럼에도 나는 영화가 끝난 후 눈물이 살짝 맺힌 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어딘가에 지금, 이 감정들을 토해내고 싶어, 얼른 폰에 떠오르는데로 메모를 해두었다. 1도 잃고 싶지 않았다.



영화는 80년대 초반 이탈리아의 여름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10대, 모든 것이 따분해 보이고 무료하기만 한 10대 소년 엘리오다.


그는 자신을 표현하는데 있어 서툴다. 아니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살짝 당황한 듯 하다. 그래서 일부러 더 정색하지만, 이내 솔직하게 꺼내어 본다. 스스럼없이 다가가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성숙하고, 감정 표현에 자유롭고, 'later'로 자리를 떠나는 미국인 올리버는 엘리오와 반대다. 어른 스럽게 먼저 다가갔고 먼저 표현했지만, 이내 정색하고 만다. 그에게 '철좀 들라'고 말한다.


영화는 엘리오의 감정을 어떠한 수사도 없이,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처음 느껴본 감정, 그리고 감정을 부정하고, 대신해줄 또다른 감정들을 담백하게 보여준다. 때로는 말과 글로, 때로는 피아노로, 때로는 표정과 몸짓으로. 그의 모든 것을 짚어내며 보는 사람 -영화 속 올리버와 엘리오의 부모, 영화 밖 관객-에게 그를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 하는 듯 하다.


엘리오와 올리버는 서로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다가가고, 표현한다. 뜨거운 이탈리아의 여름만큼이나, 그들의 사랑도 뜨겁게 타오른다. 그들은 함께 하지 못한 시간들을 아쉬워 하며, 앞으로 남은 시간들을 더없이 소중히 여기지만,  나는 불안하기만 했다. 어차피 헤어져야 할 사이인걸. 어쨌든, 이루어지기 어려운 사랑인 걸.

타인의 사랑인데도 행복을 빌어주기는 커녕 걱정부터 해대는 나와는 달리, 정작 둘은 그렇지 않았나보다.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준다. 서로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뜨거웠던 감정들이 금방 타버리지 않게, 적당히 따스한 온도로.


이제 막 사랑을 알고, 사랑하는 법을 안 10대 소년 엘리오는 올리버가 떠난 후 무너지고 만다. 그를 대신할 사람이 필요했다. 엄마에게 데리러 와 달라고 울며 부탁하고, 아빠에게 잠시 함께 해주길 요청한다.



엘리오는 아빠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지만, 아빠는 아들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감정을 추스리는 방법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사랑을 하며 느꼈던 모든 감정들 -기쁨, 슬픔, 괴로움-을 그냥 그대로 두라며, 억지로 떼어내거나 부정하지 말라고 엘리오에게 조심스레 조언을 건낸다. 엘리오의 감정은 아빠와 마주하며 더욱더 솔직해진다. 아마 아빠의 말들이 그에게는 치유가 되었을테다.

유난히 이 대사가 더 와닿는 이유는 내가 엄마이기 때문일까.  사실 생각해 본적 없는 건 아니다. 만약 내 아들이 라면, 난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해야 할까 아니 할수나 있을까. 엘리오의 아빠도 말하지 않던가. 보통의 부모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거라고.

진정 사랑을 해본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조언이었다. 사랑에 아파도 해보고, 화도 내보고, 마음껏 웃어도 본 그였기에 아들에게도 소중한 기억이라고, 감정을 간직하라고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 아니었을까. 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해준 엄마도 마찬가지였을 거라 생각한다.




덕분에 엘리오는 그의 첫사랑을 따스한 장작불 앞에서 태워 보낸다. 추운 눈밭이 아님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뜨거웠던 여름 햇살아래 불타오른 그의 마음을 다시, 같은 온도로 마주 할 수 있으니.


크레딧이 오르면서도 영화는 끝까지 엘리오의 감정을 놓지 않는다. 마치, 그의 슬픔이 다하지 않았다는 듯이.




오늘의 후기는 이 영화를 굉장한 감성으로 세심하게 잘 번역해주신 황석희님의 페이스북에 올린 이미지로 대신하며 끝내려 한다. 엘리오의 아빠의 조언이 원문과 함께 번역 되어 있다.

(황석희 번역가님 페이스북 페이지_ https://www.facebook.com/drugsub.net/)





+)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소소한 감상 포인트


+1) 영화는 초반 영상미와 후반 음악으로 풍성한 감각미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모든 미학을 프로파간다에서 포스터에 잘 담아내 주었다. 프로파간다가 작업한 영화라면, 역시 믿고 볼만하다.


+2) '이탈리아' 다운 브랜드들이 눈에 띄어, 영화의 잔재미가 되었다. (직업병)
이탈리아의 대표 브랜드 모카포트와 일리커피, 스파클링 워터, 그리고 교회의 종소리까지. 작은 요소들을 통해 이탈리아의 80년대 일상을 읽을 수 있었다.


+3) 이번 아카데미의 남우주연상의 후보에도 오를만큼 연기포텐 터진 엘리오 역의 '티모시 샬라메'는 영화 '인터스텔라'에도 잠시 출연했는데, 주인공 쿠퍼의 '아들'이 바로 그이다.


지금보다도 훨씬 앳되 보이는 티모시 샬라메 @영화 '인터스텔라'

 

+4) 아미 해머를 볼 수 있어 반가웠다. 그는 미국 드라마 '가십걸'의 수 많은 남자 중 한명 이었는데, 이 영화에서도 '쏘 아메리칸 맨'으로 등장하여 흥미로웠다. 영화에서 그는 주로 컨버스를 신고, 아디다스 수영복을 입는다.


+5) 반바지에 목이 긴양말+운동화는 경악에 가까운 조합이었지만 이제부턴 좋아하기로 했다. 웃옷은 이왕이면 리넨 소재의 셔츠나 라코스테 PK셔츠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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