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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문수 Mar 04. 2019

그런 페미니즘 대신 마마무

정상 연애를 공개 처형시키자는 인터뷰를 읽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3021104001&code=940100&utm_source=facebook&utm_medium=social_share]


소위 진보언론에 "페미니스트"라고 나오는 인터뷰를 보면, 한심하다 못해 창피하다. 결국 남녀 이분법의 대결론에서 한 발짝도 못 뗀 그 화풀이는 여섯 살 앞집 유치원생 "하나"의 연애론보다 못하다. (적어도 하나는 언제나 남자 친구 진수에게 공정하다. 하루 진수가 유치원 가방 들어주면, 하나도 하루는 들어준다) 논리의 유치함보다 더한 것은 하나같이 대전제로 깔고 있는 피해의식인데, 앞선 그 어느 세대보다 잘 먹이고 잘 입히고 키운 아이들이 왜 그렇게 '억울'하게 되었는지 생각하자면 속이 갑갑하다. 어쨌든 소위 진보지들이 얼른 페미니즘에 한 발짝 얹고 안희정 꼴 안 나려고 노력하는 건 알겠지만, 그래도 인터뷰 실으려면 양만큼 질도 좀 생각하자.


만약 내가 딸에게 요즘 최고의 페미니스트를 소개한다면 그건 단연코 '마마무'다. 걸그룹 마마무. 이건 순전히 화사가 이문세의 "휘파람"을 부르는 동영상을 보고 시작된 호기심의 발로였지만. 페미니즘 인터뷰를 읽느니 차라리 건전 팜므파탈, 마마무의 노래를 한번 귀 기울여 들어보라고 충고하겠다.


화사는 로꼬와의 듀엣곡 <주지마>에서, 내게 술을 주지 말라고 한다. 간신히 이성의 끈을 잡고 있는데 술을 주지 말라고 한다. "취하면 널 어떻게 해버릴지"도 모르니까. "술은 용기를 주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로꼬는 오히려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면서 "헛소리하면서 악마의 춤을 출지도 모르는, 술 마신 남자의 본성"에 대해 고백한다. "남잔 다 똑 같애. 술 마신 남잔 다 똑 같애". 마마무, 몇 곡 더 들어봤다. 이 젊은 여성 걸그룹은 "귀여운 척, 섹시한 척, 예쁜 척 그런 거 안 해도 날 알아보는 미소가 예쁜 미스터 <넌 is 뭔들>"를 찾으라고 말한다. 아무리 나밖에 모르는 남자라도 때로 "멍청이-화사"처럼 보인다고 "나를 위해서만 숨을 쉬는" 사랑의 순수함이 얼마나 "악마의 속삭임"앞에서 무력해질 수 있는지, 젊은이가 겪을 수 있는 혼란에 대해서 가감 없이 고백한다. 물론, 그 혼란의 시간이 지난 후에 진짜 멍청이가 누가 되는지까지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은 과히 건전하고.


마마무의 노래에서 주체는 항상 자기 자신이다. 패배의식이나 약자에 머물러있는 게 아니라 여자의 강점, 모순, 약점을 섹시함에 섞어 강렬하게 어필한다. 뭐 이게 처음은 아니다. 마마무 역시, 80년대를 이끌었던 마돈나 선생의 대를 잇는 여성 디바다. 그리고 그녀들이 적어도 현실세계에서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솔직하고 능동적인 변화를 이끄는 페미니스트였다.


듣도보도 못한 '정상 연애'라는 무의미한 선긋기는 무엇이며, 그걸 또 '공개처형'까지 한다니 어리둥절할 뿐이다. 이미 수년 전에 청춘의 꼭짓점을 통과해온 X세대인 나에게도 연애란 그냥 연애일 뿐 남녀, 남남, 여여 연애를 어떤 연애라고 부르지 않는다. 연애 없이도 살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연애든 끝나고 나면 그것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다른 사람과 가장 예민하고 섬세한 교감의 어떤 만남을 연애라고 할 때, 그 가장 좋고 아프고 행복하고 교훈적인 과정은 그저 인생이 주는 선물이라고 밖엔 더 말 못 하겠다. 그러니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고 했는데, 홍시가 아니라는 정성스런 말장난은 그만두자. 이런 연애, 저런 연애가 먼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각자의 난파된 인생 여정에 행운으로 다가온 한 사람이 있는 거다.


얼마 전 동네 헬스장에서 눈에 띄게 건강미 넘치는 동년배(40대) 형님을 만났다. 알고 보니 그녀는 2년째 주말마다 축구 동호회에 나가 공을 차신단다. 얘들아 요즘이 그런 시대다. 여자인 게 억울해서 광화문 한복판에서 정상 연애를 처형하는 것은 너무 중세적 발상이 아니겠니?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708608

최근 출간된 페미니즘 에세이 열 권보다 더 유익한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





PS 또래 남자들이 아무리 **같이 보여도, 그 철부지들이 꽃 시절의 허리를 통째로 꺾어 진창을 굴러가며 나라 지키는데 바친다. 약소국 남조선 땅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할만하고 서러울만하지 않니, 싸우지 말고 안아주자. 페미니즘의 기본정신은 양성평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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