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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문수 Oct 12. 2020

서울대가 사라지는 상상

전교1등 유치 빤스


"공부 못하는 대통령" 언급을 이후로 한 소모적인 기사를 보면서 문득 깨달은 바가 있다. 1등 제일주의? 서울대(라고 불리는 명문대 No... 유명대학 입학 프리미엄?)는 우리 사회를 발목 잡는 구체제-프랑스혁명을 일으켰던!- 적폐, 암덩어리가 되었구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라떼'도 옛날 영화였는데 성적을 비관해 허무하게 목숨을 버리는 십 대가 여전하다는 뉴스는 충격을 너머 죄책감이다. 정치분야이든 공공행정이든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이 "저이는 공부 못한 얘들 같아, 아예 희망이 없어. 낙제점이야"라고 떠들면 재빨리 기사가 되는 언론사 데스크의 판단력 뒤편에도 여전히 '서울대라면 만사 오케이' 라는 구닥다리 편견. 성적비관 십 대 자살의 사회적 공범이 아닐지.



청장년 인구의 80퍼센트 이상이 대졸자인 나라. 세계 어느 국민들보다 지식 습득도 빠르고 이해력과 호기심도 높아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가 나오면 '상대성이론', '이벤트 호라이즌' 같은 물리학 용어를 찾아가며 정리하는 게 우리나라 영화광들이다. 자막 읽기 싫어서 비영어권 영화는 안 본다는 쌀나라 사람들 하곤 차원이 다르다. 한데, 오로지 서울대 출신, 십 대 시절 전교 1등에 대한 믿음만큼은 전근대적으로 공고하다. 똑똑한 나라의 지독한 언발란스.



소위 전교, 아니 전국 1등만 모았다는 집단의 뒷얘기는 가관이다. 어느 대학 출신, 고시 몇 등 출신이냐로 줄 세운다. 대학원은 안쳐준다, 학부로 어디냐, 편입은 안쳐준다, 지방 캠퍼스 안쳐준다. 학부 중에 고시라도 붙었으면 완전 진골 취급인데, 유치 빤스.


이런 얼간이 놀음에 제동이 안 걸리는 건,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대부분 사람들의 심리 때문이겠지. 몰라서가 아니라,  다들 그냥 안 하고 있는 거지. <전교 1등 만능 세상>에서 좋은 건, 마빡에 전교 1등 새긴 미숙아들 밖에 없다. (+그들로 인해 공고해지는 기득권-사학재벌들, 입시 시장, 강남 부동산?)


대학 입시용 공부가 진짜 공부인가? 암기천재, 시험 잘 보는 기술과 요령, 성실함과 재력으로 뒷바라지하면 가능하 다해서, 입시학원의 메카, 강남 아파트값이 그리 오른 거 너도 나도, 우리 강아지도 안다.  


- 딴소리하자면 1994년 대학 입학시험이 수학능력 평가로 바뀌던 첫해였는데, 그때 나 들어간 여자대학교 몇 개 과가 미달이 났다. 그 정보가 강남 몇몇 여고에만 들어가서, 얼씨구나, 신발 던지고 들어온 얘들이 적잖았는데, 학교에서도 쉬쉬했다지. 섞어놓으니 그놈이 그놈. 잘 졸업하고 다 같이 IMF백수열차에 탑승. 대학은 이미 20년 전부터 돈벌이에 눈멀었다.-



19살, 고교까지 공부는 그야말로 의무교육 (정확히 말하면 중학교까지 이긴 하지만;) 이잖소. 얼마나 대단한 교육을 받았다고 그때까지의 실력으로 평생 한 사람의 지능과 교양을 판단하는지.  


코로나 시대, 학교를 안 가게 되니까. 학교의 의미가 더 명확해졌다. 공부? 지식을 습득하는 일이라면 솔직히 인터넷으로 해도 된다. 학교는 사람을 만나는 곳이다. 싸우고 놀고 토론하면서 관계를 배우는 곳이다. 요즘 인터넷으로 해외 유명수강 가능하다.  ( www.edx.org  들어가면 그 좋다는 하바드 강의도 들을 수 있다. 한국에도  www.kmooc.kr 가 개설되어 있다. 다양하진 않지만 평소 듣고 싶었던 신형철 선생의 문학 강의도 공짜로 들을 수 있었다. ) 이런저런 자격증 시험용 강의는 더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학습용 무료 동영상, 유튜브에도 찾으면 많다.

 


며칠 전 티브이를 보니까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빵만 사 먹으러 돌아다니던 전직 아나운서 얘기하면서도 "서울대 출신"을 운운하던데, 그게 당대 서울대의 효용이다. 50년 넘도록 노벨상 하나 안 나온, 우리나라에서만 유명한 로컬 대학. 들어가기는 어려워도 나오기는 별로 안 어려운 것 같은(잘 몰라서) 대학. 그 대학만 입학하면 인정되는 대한민국식 '똑똑'함의 박제.


인구도 줄어드는데, 앞으로 대학도 많이 사라질 텐데. 선제적으로 서울대를 없애보면 어떨까? 왜 서울대냐고? 1등이 앞서가야지요~(서울엔 서울시립대도 있고, 대학 참 많아)



서울대 이름이 아까우면 인터넷 강의 가능한 교수들만 남겨서 전 국민에게 무료로 듣고 까짓 학위도 퍼줍시다. 그 좋은 서울대 전 국민이 다 같이 들어봅시다. 어차피 세금으로 운영되잖아요. 그리고 전국에 국립대를 더 지원해줍시다. 부산대, 경북대, 전남대, 강원대(국립인가?) 아무튼. 어디 지역은 의료에 특성화해서, 어디는 문학. 어디는 전자정보. 뭐 이렇게 지원 팍팍해줘 보자. 전국 영특한 젊은이들이 서울 고시원 살이 대신 고향에서 제일 좋은 교육받도록.  


*         *         *         *



진정으로 원하는 건, 고등학교를 즐겁게 다니는 10대가 많은 나라. 10대 시절이 행복한 나라. 10의 '고등'교육의 의미가 '진짜 고등 교육'이 되는 나라. 건강하게 살기 위한 시민의 교양을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나라.  예를 들면 '생존 수영', '화제시 응급상황 대처법', '사회생활에 필요한 노동법과 임대차 보호법 상식', '저축과 투자를 위한 금융상식',  '교양인에게 걸맞은 스무 가지 요리', '즐거운 클래식 감상', '정당정치 참여방법'... 떠들고 얘기할 건 또 얼마나 많아. "국민 개병제 이대로 좋을까?, 여자가 군대에 가는 건 어떨까, 우리나라가 핵무기를 만드는 건 전 세계 평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리 집 강아지와 양계장의 닭의 생명권은 같은 것일까. 육식과 채식은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 엄마와 아빠의 일요일은 무엇이 다른가. 모든 사람이 돈을 벌어야 할까... "등등

MBC 편애중계 꼴지고사편. 밝고 귀엽고 엉뚱하고 당당한 10대를 보는 행복함



궁극적으로 국민의 한 10퍼센트만 대학에 가는 사회. 고등학교만 나와서 직업훈련을 받거나 바로 뛰어들어도 평균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나라. 강아지 미용 배우다가 수의학 공부를 배우러 가고, 간병인 하다가 간호학 배우고. 간호과정 하다가 더 공부해 의사 되는. 나중에 언제라도 공부하고 싶으면 학위를 따고, 평생 더 공부해도 되는 나라. 9급 공무원 하는 일이 뭐 대단하다고 몇 년씩 시험공부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나라.






그나저나 옛날 생각하니까, <라떼> 친구들과 모여 "20대 대졸자(학벌이 좋으면 좋을수록)가 쓸만한 보이프랜드가 되기는, 부자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거나 낙타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라고 떠들었던 기억이 난다. 월요일은  피쓰~






열아홉살때 성적이 그렇게 중요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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