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문수 Nov 20. 2019

응답하시오, 건달님...

... 문자를 받았다. 난데없는... 칼바람같은 문자. 어울리지도 않는 이름이 적혀있다. 문자 잘못왔어, 불안한 마음을 잠근다.

모르는 이름말고, 내가 아는 그를 회고하려면 20년을 건너야한다. 누군가 낡아진 풍경을 말할지 몰라도 자신의 젊은 시절은 잘 닳아지지도 않는다. 그럴리가. 이 지구가 찬란한 21세기를 막시작했을 때이다. 당시 나의 20대도 휘청거리면서 찬란했다.

정동길 어귀, 경향신문사가 있던 낡은 건물복도 어둑어둑한 끝에서 그를 처음 봤다. 냉방이 시원찮은 낡은 건물에서 발까락이 훤히 보이는 쓰레빠를 끌고나오던 그가, 쑥스러운지 한쪽 이마를 슥 닦으면서 내쪽으로 왔다. 덩치가 크고 눈빛이 선한, 전형적인 이쪽업계 사람 얼굴, 그러니까 대책없는 낭만고양...호랑이상이다.  

건달, 짬이라는 잡지였다. 당시는 바야흐로 잡지 전성시대. 그 유명한 시네21을 필두, 스크린 같은 영화지로부터 말 같은 비평지 그 중에도 소위 문화잡지, 라는 이름의 다종다양한 형태의 종이잡지가 성행하던 시기. 홍대의 인디 문화와 태동과 함께. 별재주도없이, 피씨통신 일기쓰기 실력으로 어찌어찌 한쪽 발을 끼워넣었던 20대의 보잘것없는 내가 외부필자로 섭외되는 순간이었다.


그를 만나던 첫날, 별다른 약속이 없던 나는 한가한 이유로, 당시 몰랐던 뮤지션 '못'(이이언)의 인터뷰 자리에 끼게 되었다. 자기도취가 너무 심한 것이 아닐까 싶은 몽환적인 선문답 한 가운데(못님 미안합니다T) 피식피식 박자 안맞는 웃음을 보탠것이 그날 눈치없는 나의 역할. 바람잡이가 통했는지 인터뷰고 나발이고 결국은 술자리가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후에 나는...훌륭한 뮤지션,못의 팬이 되었다)


두번째 장면은 요즘처럼 추운 겨울날, 종로로 가는 버스에서 였다. 좋아하는 버스 맨끝 제일 뒤 창가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물론 그가 먼저 앉아있었고, 나는 우연히 그를 만난 참이었다. 어디사세요? 수유리? 정릉 어디라는 답. 지금 막 버스를 탄 미아리 태생의 내가, 강북사람 정서를 공유하면서 활짝 웃었다. 그러니까 우리 강북사람들에게는 특히 정릉 창동 수유리 미아리 돈암동을 위시한 1학군출신만의 뭔가가 있다.
새로나온 따끈한 책이 토스 되었다. "님도 맨뒷장부터 보는군. 역시 강북스웩" 이라고 정확하게 말하지는 않았는데. 아무튼 그가 나도 모르던 나의 버릇을 콕 짚었다.


... 그 잡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상근 기자로 일하던 하영이와 친구가 되었고, 우연히 홍대에서 만날 때면 맥주 한잔과 쉼없는 농담을 나눴다. 삶의 궤적은 서로의 반경으로부터 멀어졌지만, 몇번쯤 사람좋은 그가 나타나 우리를 멕였던 것 같다. 아니 사주세요, 라고 떼쓰는 하영이를 구경했던 것 같다. 그는 맛좋고 저렴한 괜찮은 곳을 많이 안다고 하영이 말해주었다.


그는 하늘과 구름 사진을 좋아했다. 그래서 아주 오랜 후에 페이스북에서 재회하고 가끔 좋아요를 눌러주었다.


생각해보면 별로 많은 추억을 가진 것도 아니면서, 함부로 그를 친구라고 여기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놀던 그 물결 위에서 만나면, 그러니까 강북을 가로지르는 버스 제일 뒷자리에 큰 덩치를 구겨넣고 마냥 사람좋게 웃고있는 그 부자연스러운 모습은 언제 봐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다. '에잇... 지겹도록 좁은 요동네. 버스노선도 안바껴' 라고 속으로 웃었을 텐데. 뭡니까. 건달. 휴대폰 해킹당한 거 아니요? 빨리 응답바랍니다.




만나자 하고 못만난 친구...



이상윤 편집장님 ... 또 만납시다. 그땐 빼지않고, 군소리 없이 달려갈게요. 술한잔 합시다.

RIP





https://www.youtube.com/watch?v=DwrHwZyFN7M

매거진의 이전글 마흔, 불혹은 오지 않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