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문수 Mar 13. 2021

47세, 첫공인 영어시험을 보다

65점 받기가 쉬울 거라는 착각

대학 졸업 직후, 적은 보수라도 좋아하는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 프리랜서 생활을 했다. 그럴싸한 경력은 아니라도 그럭저럭 먹고살 수는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는 달랐다. 위기였다. 밥벌이는 막혔고 앞날은 막막했다.


20년여 찬찬히 내 경력을 돌아보니 보편적으로 한국 사회가 원하는 포맷에 써넣을 무언가가 하나도 없었다. 동종업계가 아니라면 이력서 자격증란에 "운전면허증"(그것도 장롱면허)을 쓰면 끝이다.10년 전이라면 특기란에 달리기라도 써 볼텐데, 이젠 무릎이ㅜ. 그 흔한 영어성적 하나없었다.  


보자 보자, 영어시험? 딱히 영어 실력이 필요한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영문사이트를 뒤져 찾아내고, 꼭 번역기를 동원하지 않아도 큰 의미를 간략하게 파악하고 분류할 정도는 되었다. 대학 때 원서를 뒤적거리면서 공부했고, 해외 나가도 "파든?" 하며 할 말 다할 수 있다고 여겼는데. 그래서 영어 실력은? 그까이꺼. 한번 보지 뭐... 착각의 시작이었다.

 

일단 싼 거.

첫 응시료 50%할인 3만 원. 지텔프? 접수 후 2주 만에 시험을 보는 데다, 성적도 그 주말에 나온다고? 심지어 시험 시간이 일요일 오후 3시! 이거네! 당장 접수하고 가장 얇은 기출문제집 한 권을 주문했다. 65점 정도 나오면 공인 실력으로 쓸 수 있구나. 100점 만점에 65점? 그 정도는 되겠지.


그리고 시험을 보러 갔다. 한겨울 시험장은 추웠고, 제일 뒷자리에서 바라보는 칠판은 노안으로 어룽어룽 흔들렸다. 수험번호 바코드 쓰는 란에 주민등록번호를 써넣고 화이트로 지우느라 낑낑 댔다. 코드번호를 세 가지나 써야 하는데 당최 무슨. 결국은 앳된 감독관 선생님께 손을 들고 도움 요청. 쪽팔려.  


듣기 평가가 압권이었다. 질문이 읍다.

기출문제집에 듣기 평가 부분은 MP3 파일을 받아서 들으라는데, 정작 사이트에 들어가니 다운로드되지 않아서 스킵해버렸던 게 화근이었다. 시험형식이라도 파악하고 왔어야 했는데. 당황해버렸다. 가뜩이나 한겨울의 수험장, 코로나 때문에 열어놓은 창문 밖에선 차 소리가 요란한데, 심장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렸다. 겨우 보기의 예문을 더듬거리고 있는데, 다음 문제 시작. 망했구나. 멘털이 깨지니 까만색은 글씨, 흰색은 종이구나 싶었다. 듣기는 포기하고 독해만 풀자. 만회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독해 역시, 예상문제집보다 훨씬 문제 수준이 높았다. 시간은 턱없이 모자랐다.


허탈한 마음으로 중구의 한 고등학교 교실을 나오면서, 아들 딸 뻘의 동료 수험생들 사이에서 너무너무 창피했다. 시험의 기본정보도 챙기지 못한 불성실함...


돌아온 날 바로 2주 후 다음 시험을 접수하고, 단어장도 하나 더 구입했다. 개뿔. 내가 생각한 나의 실력은 허상이었다. 돌이켜보니 전심으로 영어공부를 한 게... 중학교 2학년. 아.... 1989, 90년. 그해 여름방학에 학교 도서관에 앉아 단어장을 끄적거리면서 씩씩댔던 게 전부. 그러니까... 용케도 대학까지 갔던 건가. 시험은 시험. 시험 점수를 따려면 시험 공부를 해야지.


2주 동안은 기출문제집에 담긴 열 번의 모의고사를 시간을 재서 풀었고, 단어장도 끝까지 펼쳐 보려고 노력했다. 두 번째 시험. 추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번엔 꼭 65점을 받아야겠다는 욕심이 너무 강렬해서였을까. 긴장한 손은 오그라든 채, 시험시간 100분내내 덜덜 떨렸고, 없던 두통이 몰려와 인상은 펴지지 않았다. 그래도 지난번처럼 아예 듣기 평가를 포기하지 않았으니, 65점은 나오겠지. 문제는 다 풀었잖아.


결과는 63점.

다 풀었다고 생각했던 독해 점수는 미미하게 상승했고, 지난번처럼 듣다가 포기하지 않았음에도 청취 점수 역시 50점대. 심지어 문법 점수는 하락했다. 아. 이게 내 실력인가.


나의 영어 실력은 무엇인가?

해외에 나가면 단어 나열해도 알아서 들어주는 친절한 외국인이 많다. 외국 영화도 영상을 보며 상황을 파악하고 대화의 일부를 유추해 알아들었던 거지, 자막이 없었다면 미세한 정보는 전혀 몰랐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영어로 쓴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었다. 대학 2학년 여름방학에 배낭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란 페이퍼북을 사서 비행기에서 스무 장쯤 펼쳐본 게 다였다.


나, 영어 못하는구나.

작은 성취감이라도 얻어보려고 시작한 도전이었는데. 두 번의 시험 후 남는 건, 지난날에 대한 화끈거림 뿐이었다. 그냥 시험 보지 말자. 65점 넘는다고 대단한 실력도 아니고. 이거 한 줄 더 쓴다고 뭐가 달라질까... 성적을 확인한 날, 창피한 마음에 문제집과 단어장을 접어서 안 보이는 곳에 처박아 버렸다.



그런데 며칠 지나자,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나 진짜 그렇게 영어 못하는 사람이야?"라는 반발심이 일렁거렸다. TED의 영상을 찾아 자막을 끄고 얼마나 알아듣는지 체크해보았다.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인터넷으로 읽고 싶던 소설책 몇 권을 주문해서 읽기 시작했다. 술술 읽히는 건 아니라도 모르는 단어에 밑줄을 쳐가며 읽으니 못 읽을 것도 아니네 싶었다. 오기로 시작된 독서였지만, 영어책을 읽는 기쁨은 어느 다른 책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의 기쁨이 있었다.



구하는 곳에 길이 있으니! <아마존의 Audible> 무료 서비스를 이용해 내가 읽은 책을 오디오로 다시 들어보니 명확한 발음과 뉘앙스까지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The Reader> 한 권을 일주일 만에 읽어치웠다.  강렬하고 담백했지만 결말의 정서가 뭔가 조금 아쉬워 원작이 궁금했던 영화였다. <베른하르트 슈링크>의 <The reader>.



아마존 책방의 <audible> 서비스에서 The Reader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레이션이 남다르기에 구글링 했더니 역시나 중년 배우 <캠벨 스캇>이었다. 1인칭 남자 시점에서 쓰인 소설을 충분히 단련된  배우의 내레이션으로 듣다니, 기대 이상이었다. 문체만큼 건조하고 담담했지만 매력적인 저음에 미묘하게 연기가 들어가 있어서, 설레고 뜨겁고 아프고 아쉬운 감정까지 표현한다.


아주 우연한 행운이었다. <The Reader>라는 제목처럼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는 "책 읽는 것"이었고 더 구체적으로는 "책을 읽어주는 것"이었다. 누군가 읽어주는 책을 듣는 사람. 책을 들어야만 알 수 있었던 한나는 문맹이었고. 그것은 주인공 한나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하고 절망적인 비밀이자 자존심이고,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적 질문이기도 했다.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를 만족시키기 위해 소리 내어 책을 읽어줬고. 그건 오직 구애의 방편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글을 읽지 못하는 그녀를 위해, 감방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한 테이프"를 보낸다. 속죄와 원망, 죄책감과 질타의 복잡한 감정은 책을 읽고 녹음하는 반복적인 일로 바뀌어 이어진다.


그리고 그런 내용의 소설을 나 역시 읽고 듣고 있었다. 글자들을 이해하는 것.  소설 속의 한나가 그가 읽은 테이프를 들으며 글자를 배우듯이, 어떤 면에서는 나도 녹음된 목소리를 들으며 글자를 배우고 있었다.  우연한 공통점으로 한나에게 더욱더 감정이입이 되었다.


문맹이라는 것은. 단지 글자를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다른 존재의 생의 방식을 이해하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 일지도 모른다. 책의 주제까지도 마음에 와 닿았다.


다른 책 <Eat, Pray, Love>를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제목의 동명 영화가 있다는데, 아직 보진 못했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보름 후, 나는 영어시험에 재도전했다.

실력이 그리 쉽게 올라갈 리가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65점은 넘지 않을까 소박한 기대를 가졌다. 시험을 치루고 나오면서 꿈깨자 싶었다.  


다만 떨리지 않은 건, 시험이건 무엇이건 익숙해지기 마련이라는 진리가 있고, 또 기대가 낮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날씨가 따듯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시험공부 같은 공부는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독해의 논리문제 같은 예문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었고. 듣기 평가의 빠른 속도를 따라잡기도 힘들었다. 여전히 답안지 체크도 못할 만큼 시간도 빡빡했다.




어제 점수를 확인했다. 68점.

목표했던 살짝 65점을 넘겼다.

5점의 성장;


여전히 듣기는 반밖에 못알아들었고(정확하게는 정답을 못맞췄고), 독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나는 어려운 말을 반정도 알아듣고, 난해한 문장은 반정도 알아들을 수 있는 실력이다. 점수라는 건, 나의 약점을 정확하게 경계지어준다.  


언어는 공부라기보다는 도구. 한 두 달의 노력으로 비약하긴 불가능. 실력이 없는데, 점수만 나올 수도 없다. 절대네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가끔은 뜬금없는 도전과 평가가 나 자신에 대한 허무맹랑한 착각과 욕심을 떨치게 한다. "안다는 건, 그저 내가 뭘 모르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는 것의 줄임 뿐.

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변한다는 건, 계획을 짤 때에 더없이 좋은 것이다.



40대 후반의 내가 그 흔한 공인영어점수 한칸을 채운다한들, 어려취업의 문1밀리도 더 넓어지지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다만 시험이 나를 더 겸손하게 만들었고, 요즘 젊은이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간접체험하게 해주었다(영어성적 하나없어도 대기업에서 모셔가던... 내 나이 이상 부장급 꼰대들은 좀 더 겸손해져야한다).


무엇보다... 한동안 잊고있던 영어라는 도구를 전보다 훨씬 써보고 싶어졌다. 영어로 된 책을 읽는 것도, TED 강연을 듣는 것도 좋다. 아마 그게 40대후반, 스무살 청년들 속에 앉아 달달떨며 공인영어시험을  소심한 경험이 가져다 준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시험이 선사한 긴장감은 루즈했던 생활에활기를 줬다.

하지만 이제 영어 시험은 더 안볼꺼다. 그 돈이면 고기 사 먹어을꺼야.


세번째 책을 읽기 시작했다



 

PS. 내가 고른 책들은 모두 영어가 아닌 언어를 영어로 또 역한 작품. 번역에 번역을 거치면, 문장이 좀 더 쉬워지는걸까? 몰라. 한국어판 전자책을 찾아서 해석을 확인하곤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깨진 믿음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