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소성이 클수록 헤매는 시간은 그만큼 늘어난다. 가소성이 크다는 바뀌기 쉽다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다. 다만, 여기에 덧붙여지는 조건은 실수나 실패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집단이라도 자신들의 성과에 대해 실수나 실패 없이 쉽게 바꾸어지길 바라는 심정으로, 높은 가소성을 희망하고 있다. 심지어는 삶의 모든 측면에서 가소성을 가지는 야무진 꿈도 꾼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꿈이라고 하더라도, 실수나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현실이다. 문제는 높은 가소성에 대한 꿈이 커져갈수록 쪼그라들고, 헤매는 자신을 쉽게 만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빠르게 가면 갈수록 누구에게나 실수나 실패는 당연히 찾아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천천히 살피며 가도, 눈을 찔끔 감고 싶은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잦다. 마치 어린아이가 먹기 직전에 아이스크림을 바닥에 툭 떨어뜨렸을 때의 심정과 비슷하다.
자신의 삶에 멈춰서, 보고 듣고 느끼며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시간을 바란다. 실수나 실패를 허용하지 않으면서도 동서남북 정해지지 않는 앞을 향해 헤매는 나를 바라보기에는 마음이 꽤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