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도 밤에도 아이들을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마음을 견디는 일이기도 해요. 아이가 보여주는 순수한 마음에 머물러 있다가도, 때로는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부정적인 마음에 놀라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학교 아이들, 집 아이들과 생활하며, 나는 괜찮은 선생님, 멋진 엄마인 줄 알았어요. 운명 같은 질문을 만나기 전까지 말이죠.
100점 선생님을 꿈꾸며, 수업연구대회에 5회 연속 출전했어요. 처음 대회에 나가서는 경험이 없어서였을까요? 100점 눈빛과 에너지를 쏟았음에도 꼴찌를 하게 되었어요. 100점 선생님이 꼴찌를 하다니요! 그날 이후, 수업연구는 핵폭탄 급 에너지로 몇 년간 계속되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놀라워요. 그 이후로 4년 연속 1등을 하게 되었어요. 수업대회, 연속 4회 1등급 수상을 디딤으로 교육부 장관을 모시고, 공개수업도 했습니다. 하나도 떨리지 않는 척하느라, 5월 초임에도 땀이 뻘뻘 났던 기억이 있어요. 교육부 장관님에게,
"어떻게 해서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도교육청 부교육감님에게
"비슷한 일이 있으셨나요?"
여러 질문을 골고루 쏟아내며, 당당한 눈빛과 자연스러운 제스처를 연신 해내며 그 공간을 100점 선생님으로 서있었어요. 다리가 굉장히 휘청거렸고요.
수업연구 역량은 그림책 연구로 이어져, 4년간 그림책 연구회 회장으로, 모임을 이끌었어요. 시간이 더해갈수록 그림책을 보는 눈과 아이들에게 풀어내는 질문의 힘은 더욱 강력해졌어요. 100점 선생님에게 그림책과 질문은 다른 선생님 앞에 설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주었답니다. 남들은 놀라지요. 영재원 강사, 발명센터 강사, 그림책 작가, 1정 강사, 수업혁신 네트워크 강사, 학교 연구부장, 미덕 교실 선생님, 아이 둘 엄마.. 그 많은 역할을 어떻게 해내냐고 말이죠. 100점 선생님은 당연히 시간을 쪼개어, 에너지를 잘 분배시켜 잘 해내는 줄 알았지요. 괜찮은 줄 알았다니까요. 정말 이 질문을 만나기 전까지 말이죠.
"지금 기분이 어때요?"
교수님과 공부를 하게 되면서, 지금 나의 기분에 대해 대답을 해야 했어요. 대화에서 10분마다 기분과 그 말의 의미를 묻는 질문은 나에게 파고들었습니다. 질문 수업을 15년간 해왔던 나였기에, 상상 속에서 자신 있었습니다. 실제 장면에서 나는 그 질문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100점 선생님은 한 가지 질문에 순식간에 머리가 하얘지는 5점 사람으로 그 공간에 있더라고요. 당혹스러움은 계속 이어졌어요.
"자신의 필요를 중심에 놓고 살았나요?"
100점 선생님은 깊은 잠을 자는 날도 얼마 없었고, 아이 생일날에도, 크리스마스날에도 학교에 가서 최선을 다해 일했는데, 자신의 필요를 묻는 질문은 모든 것을 흔들어놓고 말았어요. 전혀 대답을 할 수 없었어요. 왜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을까요?
나는, 나의 필요를 중심에 놓고 살지 않았던 거예요. 쉽게 흔들리는 눈빛과 감정의 파도는 그냥 온 것이 아니었어요. 질문에 멈추는 나를 만날 때마다, 처음 공부를 하는 학생처럼 "아하"를 외칩니다.
"지금 기분이 어때요?"
잊을만하면, 그 질문이 떠오릅니다. 대답합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경험을 생생하게 느끼고, 머물고, 해석하며 샅샅이 헤아리는 과정을 거칩니다. 100점 선생님으로 살 때보다 5점 복쓰로 지내는 내가, 눈빛에 힘이 더 실리고, 좋은 기운이 넘실 넘실 흘러나갑니다.
어쩐 일일까요? 낮과 밤에 만나는 아이들에게 사랑편지를 더 많이 받고 있어요.
"선생님이 이 세상에 없는 걸 상상해본 적이 없어요. 선생님 세상에 태어나줘서 고마워요."
3학년 아이가 4월 초에 나에게 보낸 편지 속 한 문장이에요.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이 선명해집니다. 나는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삶에 질문을 내보내고, 생생한 관찰로 채워보려 합니다. 나의 필요는 나와 아이들, 주변 사람들의 안녕감이기 때문이거든요.
질문으로 자신에게 머물러 보는 여행! 어떠세요? 함께 해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