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줄행랑 선수예요. 아마 전문가일 걸요.
사실은 몰랐어요. 줄행랑치는 줄이요.
지금 무슨 이야기하느냐고요?
나는 내가 아픈 줄 몰랐어요.
나는 내가 안 괜찮은지 몰랐어요.
겉으로 웃고 다녔으니까요. 어떨 때는 전문가의 미간을 찌푸리며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그때 했던 말은 꽤 진지하기도 했어요. 다만, 그 장면을 떠나고 나면, 기억조차도 없고 마음에 어떤 향기가 나는지 새겨둘 의지도 없었으니까요.
나는 나로부터 줄행랑쳤어요.
내가 어떤 마음인지, 꺼내놔도 되는지 의심도 않고.. 그냥 도망쳤어요.
어쩐지 때때로 불안감과 수치심이 밀려드는 것 있죠.
단서가 있었는데도. 나는 철저하게 줄행랑쳤던 거예요.
내 목소리를 내야 할 때도 도망가고
내 마음이 아플 때도 모른 척 아픈 척 말라며, 자신을 윽박지르며 도망가고
다른 사람이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도 마음에 품지 않고 도망갔단 말이죠.
지금 나는 어렴풋하게 알아요.
그것도 경험하면서 알게 된 거예요.
따뜻한 관계 속에서 나는 나를 좀 꺼내놔도 된다고 말이죠.
틀리면 좀 어때요. 다시 고치면 되는데..
그리고 틀린 게 아닐 수도 있어요. 생각을 짚어봐야 해요.
틀리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무조건 도망치면 이런 기회조차 누리지 못해요.
영원히 도망자가 될 건가요?
아니면, 두 눈에 힘이 들어찬 지킴이가 될 건가요?
나는 나를 지켜요.
나를 챙기지요.
나의 모든 것을요. 감정, 생각, 경험, 관계..
이 모든 것이 나를 지켜줍니다.
내가 나를 지킵니다.
흐릿한 세상을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