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은 심정으로 달래주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폭풍의 언덕
180쪽
제가 화가 나기보다 슬펐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울고 싶은 심정으로 주머니에서 오렌지를 한 개 꺼내 도련님을 달래려고 주었어요.
나의 질문과 대답
울고 싶은 심정으로 달래주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쓰고 싶은 글이 도저히 나타나지 않습니다. 막막합니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컴퓨터 화면과 두 손, 나의 얼굴 공간에는 묵직함과 주저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텅 빈 이 공간을 두려움으로 마주할수록 두 손은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울고 싶은 심정으로 나를 달래주고 싶습니다.
아버지 이야기를 써볼까?
아이 이야기를 써볼까?
낮에 신경을 꽤 썼던 일을 써볼까?
몇 번을 고민해도 하얀 여백은 짧은 깜빡임으로만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막막함이 속도를 더해서 달려듭니다.
나는 이렇게 울고 싶은 마음으로 나의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를 천천히 달래 봅니다.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누구에게나 울고 싶은 때는 있고, 그때 나를 어떻게 달래주는가 궁금했습니다.
글의 처음부터 몇 줄 되지 않는 글의 끝부분까지 몇 번이나 돌려 읽으면서 찾은 돌파구는 "궁금함"입니다.
나는 무엇을 궁금해하는가?
오늘따라 글도 써지지 않고, 아이도 아프고, 낮에 직장에서 2시간 넘게 통화를 하며 신경을 썼습니다.
이 경험들이 나를 울고 싶게 만들지만, 나는 이 경험 가운데서 돌파구를 찾고자 합니다.
내가 겪은 슬픔의 의미는 무엇인가?
글을 읽는 사람들과 따뜻하게 연결되길 바랍니다.
아이가 건강해서 자신의 생활을 힘차게 해 나가길 바랍니다.
자신을 암묵적인 능력주의로 몰아세우지 않길 바랍니다.
언제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자신을 작은 사람으로 판단하지 않길 바랍니다.
예전에 스스로를 비난하고, 채찍질하던 시간으로 돌아가지 않길 바랍니다.
분명 오늘 느낀 막막함과 묵직함은 소리 내어 울고 싶은 슬픔으로 다가왔지만, 지금은 사유를 이어나가며 내 마음에 머물러봅니다.
조금씩 가벼워지길 바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