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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우구데 Oct 21. 2024

우리 모두는 수원삼성이야

2024년 7월, 무너져버린 폐허에서 다시 시작되는 '원팀' 만들기

2023년, 처음으로 만 17세 이하 (U-17) 청소년 국가대표팀의 경기를 중계로 보았다. 작은 체구의 선수들이 넓은 그라운드에서 뛰어다니며 이해도 높은 모습으로 보여준 유기적인 움직임들이 제법이었다. 경기 중간중간 나오는 창의적인 패스와 거침없는 드리블 속에 숨은 가능성들이 흥미로웠다. 그 팀을 이끌었던 감독은 2024년 1월에 U-17 월드컵 대회에 대한 리뷰를 했다. 젊고 단정한 모습의 그는 기존 프로 감독들에게서 보지 못했던 PPT 자료를 직접 준비해서 매끄럽게 발표를 진행했다. 그는 비록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실패'를 통해서 무엇을 얻고 배웠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대회에서의 실패는 본인에게 돌리면서 이후 프로 계약에 성공한 어린 선수들을 이야기하며 공은 선수들에게 돌리는 겸손함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축구는 틀리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그 당당함이 인상 깊었다. 그랬던 변성환 감독은 불과 몇 달 후에 내가 응원하는 팀인 수원삼성의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그를 미리 인상 깊게 보았던 나 스스로를 매우 칭찬했다!)


변성환 감독은 청소년 국가대표팀을 맡을 때부터 분명히 했던 원칙들 중 한 가지였던 '원팀'에 대해서 "내가 아닌 우리가 되자는 뜻"이라고 수원 감독 취임 기자회견에서 설명했다. 세 경기만에 거둔 승리를 통해 두 달간의 무승의 고리를 끊고 숨통이 튼 그의 다음 임무는 하부 리그로의 강등과 레전드였던 감독의 부진으로 인한 사임으로 인해 폐허가 된 팀의 선수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는 '리빌딩'이었다.


성남을 상대로 한 홈에서의 첫 승리의 기쁨도 잠시, 수원은 바로 사흘 뒤 전남과의 원정 경기에서 다시 어려움에 부딪혔다. 주전 골키퍼 양형모 선수의 부상으로 인한 교체 아웃과 수비수 황인택의 경고로 인해 일찌감치 수비 조직이 흔들렸고, 리그 우승을 노리는 팀답게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전남은 에이스인 발디비아 선수를 앞세워 선제골을 성공시켰다. 수원이 시도한 무려 16번의 슈팅과 그 이상의 공격들은 번번이 빗나가거나 골키퍼에게 막히며 득점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 사이에 전남에서는 무려 세 명의 선수가 동시에 그라운드에 드러누으며 승리로 경기를 마무리 짓기 위해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나기 직전, '소년가장'으로 불리던 작년보다 부진하여 아쉬움을 안겨주던 김주찬 선수가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며 승부를 다시 원점으로 돌렸다.


무려 광양까지의 원정을 함께할 수 없었던 나는 '직관'이 아닌 '집관'으로 경기를 지켜보았다. 중계를 보는 내내 다리를 뻗고 앉아있지 못할 정도로 초조했다. 그리고 김주찬 선수의 극장골과 함께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마지막까지 골대를 맞고 빗나간 슈팅이 보여준 것처럼 여러모로 운이 따라주지 않는 경기였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수원의 모습을 보며 변화의 시작을 직감했다.




안도의 순간은 잠시뿐이었고, 며칠 후에 바로 안산과의 대결이 있었다. 우승 후보인 전남과의 무승부는 받아들일 만했지만, 최하위 안산을 상대로는 승리가 절실했다. 그날 경기장에서는 밴드 노브레인이 함께 했다. 노브레인의 보컬 이성우 씨는 수원의 오랜 팬으로, 그들의 곡을 개사해서 만든 헌정곡이자 공식 클럽송인 '나의 사랑, 나의 수원'을 불렀다. 가수이기 전에 팬으로서도 함께 수원을 응원하는 그들이기에 ‘노브레인이 오면 패배한다’는 공식이 올해는 깨지기를 바랐다. 경기 시작 전에 으레 나오던 영상이 아닌 라이브로 함께 부른 '나사나수'는 승리를 예감하게 할 만큼 강렬했다. 뭉클하면서도 비장한 표정으로 서포터석을 바라보다가 정중하게 박수를 치는 벤치의 감독님과 코치진들의 모습을 보며, 서포터석에 있던 나 역시도 오늘은 정말 큰 소리로 끝까지 승리를 위해 응원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하지만 경기는 모두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경기 극초반의 득점 찬스는 우리 선수들이 허둥대며 제대로 공을 처리하지 못하는 사이에 허망하게 날아가버렸다. 경기 내내 상대 선수들은 '비기기만 하자'라는 결심을 한 것처럼 작은 충돌에도 쉽게 넘어지며 시간을 끌었다. 주심은 우리 선수들의 경합에만 즉각 휘슬을 불어대며 경기의 흐름을 여러 차례 끊었다. 상대에게는 만족스러웠던 무승부라는 경기 결과는 승리를 갈망했던 우리에겐 너무나도 아쉬웠다. 아직 고등학교 2학년인 박승수 선수의 수원 빅버드에서의 첫 골과 1승 4무로 6월을 무패로 마무리했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이후 공개된 비하인드 영상에서는 카메라가 전반전이 끝난 하프타임의 락커룸 대신 아닌 바깥에 붙어있는 수원삼성블루윙즈라는 팀 이름을 비추고 있었다. 그 너머로 감독님의 매서운 호통이 선수들을 향하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야 너희는 수원삼성이야 인마! 모든 상황에서 너네가 다 월등해야 하고!"라고 일갈하는 감독님의 목소리에 선수가 아닌 서포터인 나마저도 정신이 번쩍 들 정도였다. 경기 후의 락커룸 장면은 아예 사라진 것을 보면서, 하프타임 이상으로 선수들이 혼이 났을 락커룸의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었다. "그라운드 안에서는 이름, 연봉은 중요하지 않다. 상대보다 한 발 더 뛰면 우리가 질 이유는 하나도 없다"는 경기 전의 기자회견과 "우리 선수들이 수원이란 거대한 구단 안에서 중요한 요소들을 까먹고 있던 부분을 다시 일깨우려고 하는데 여전히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경기 후의 기자회견이  같은 맥락이라고 느꼈다. 아무리 감독의 전술과 훈련과 지시가 치밀하고 명확해도 경기 당일의 그라운드 위에서 그 모든 것을 구현해 내는 것은 온전히 선수들의 몫일뿐이다. 그런 그들에게 '수원'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가 되는 것의 의미를 각인시키기 위한 감독님의 노력이 보였다.




돌아가면서 한 팀이 휴식기를 가져야 하는 K리그2의 일정상의 다음 휴식팀은 다행히도 우리였다. 그 사이에 선수단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팀에 제법 오래 있었던 다섯 명의 선수가 떠나고 20대 초반의 젊은 네 명의 선수가 들어왔다. 그 덕분에 전혀 라인업을 예상하지 못한 채 다음 상대인 천안과의 경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천안역에서의 택시 승차 거부와 비지정석인 원정석 운영 방침으로 인해 역대급 폭염이라는 7월의 햇빛을 우산으로 피하면서 맨바닥에서 서서 기다려야만 했던 몇 시간까지, 모든 것이 쉽지 않은 원정길이었다. 천안 맛집으로 추천받은 식당에서의 뼈해장국의 맛이 잘 느껴지지 않고, 얼음컵에 옮겨 담은 파워에이드를 무한정 들이킬 정도로 경기 시작 전에 이미 더위를 먹었다.


모두에게 널리 알려진 수원의 파훼법은 전반전부터 빠르게 라인을 올려서 선제 득점을 한 뒤 모두가 내려앉아서 잠가버리는 것이었다. 천안 역시도 비슷한 전략을 선택한 듯 전반전에 전력 이상으로 공격을 가했고, 덕분에 우리 선수들은 전반전 내내 쉽게 공을 빼앗기는 모습들을 보였다. 그나마 나온 유효슈팅들도 하필 오늘 각성한 것 같은 상대방 골키퍼에게 번번이 막혔다.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에는 상대방의 에이스였던 파울리뇨 선수에게 실점하며 0:1로 뒤진 채 하프타임을 맞게 되었다. 락커룸으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선수들의 등 뒤로 서포터들의 간절한 콜이 쏟아졌다. "힘을 내라, 수원!" 나 역시도 제발 그들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아직까지 이 시즌에서 역전승을 거둔 적이 없던 그들이 이번에만은 힘을 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팔을 들고 함께 외쳤다.


이후에 공개된 비하인드 영상 속 하프타임의 락커룸은 참담했다. 락커룸에서는 하프타임 공연이 진행되는 그라운드에서부터 넘어온 구성진 트로트 가수의 노랫소리만이 들리고 있었다. 선발출전 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선수들과, 잔뜩 화가 나서 말을 잇지 못하는 감독님과 고민에 빠진 코치진들의 모습이 차례로 영상에 잡혔다. 그러나 후반 시작과 동시에 감독님은 세 장의 교체 카드를 꺼내 들며 전술을 바꿨고, 후반전이 절반쯤 지났을 때 다시 두 장을 연달아 사용하며 평소보다 빠르게 선수들의 교체를 진행했다. 더위와 선제 실점에 원정 응원석마저 지쳐가기 시작할 때쯤, 임대생으로서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새롭게 팀에 합류한 이규동 선수의 동점골이자 수원에서의 첫 골이 터졌다. 상대가 지치기 시작할 55분 이후를 노리고 있었다던 감독의 전술과, "빅네임은 아니지만 임팩트를 줄 거라고 분명히 말씀드렸다"며 자신 있게 말했던 감독의 선택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경기가 끝나기 직전에 터졌던 역전골도 도움을 통하여 이끌어낸 이규동 선수는 수원의 엠블럼을 잡는 세레머니를 하며 "수원의 팬들에게 예쁨 받고 싶다"는 소원을 성취했다.


서포터들은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고 걸어오는 선수단을 향해 '우리 모두는 수원삼성이야' 걸개를 들어 올렸다. 이전 영상에서 보였던 감독님의 "너희는 수원삼성이야 인마!"와 연결되는 말이었다. 그렇게 나타난 서포터들의 걸개는 6월에 새로 온 감독과 코치들, 그리고 서포터들이 먼저 감독이 그토록 강조하던 '원팀'이 되어있음을 보여주었다. 아직 남아있는 선수들의 '원팀'을 위해, 감독은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락커룸임에도 여전히 선수들에게 '수원'을 강조하였다. "축구라는 게 완벽하게 원하는 대로 축구를 할 순 없어. 하지만 우리가 완벽에 가깝게 플레이를 해야 하고 준비를 해야 된단 말이야. 그냥 하나 먹고 끝나고 어 오늘 이겼네, 비겼네... 그래가지곤 우리가 원하는데 못 가. 상대가 우릴 만나면 '얘네 진짜 빈틈이 없네?' '아 정말 수원이 단단해졌네' 이런 느낌이 있어야 한단 말이야"라고 승리 직후부터 다음 경기를 준비시키는 감독의 말을 집중해서 듣는 선수들을 보며 이제는 '원팀'으로서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할 수 있기를 바랐다.




7월의 마지막 직관 경기는 충북청주와의 홈경기였다. 그날은 내 생일이기도 했고, 작년부터 열심히 축구장을 다니던 나와 직관메이트를 보며 호기심을 가지셨던 부모님을 W석에 모셨던 날이었다. 홈 경기장인 빅버드에서의 2024년 마지막 경기이기도 했다. 경기장 잔디 공사로 인해 이후로는 홈 경기들을 이곳에서 치를 수 없게 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날은 한호강 선수에게도 특별한 날이었다. 재외국민으로서의 병역 문제로 인해 올해가 끝나면 수원이라는 팀뿐만 아니라 K리그를 떠나야만 하는 그의 빅버드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경기장에 도착한 그는 예전과 달리 벤치에 나와 앉아서 오랫동안 그라운드와 서포터석을 바라보았다. 그런 모습을 서포터석에서 지켜보며, 나는 그의 빅버드 마지막 기억이 꼭 승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승리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같기에, 경기 시작 전부터 쏟아지던 비에도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더욱 큰 목소리로 응원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런 모두의 마음이 무색하도록 경기는 0:0 무승부로 끝이 났다. 이 경기에서 분명 수원은 두 골을 넣었었다. 두 골 모두를 취소시킨 것뿐만 아니라 반칙을 통한 수비를 하는 상대 팀의 선수들에게 경고를 주지 않는 주심의 판정은 불합리의 끝이었다. 안산전 때 이기제 선수가 부심에게 욕설을 했고, 그 욕설을 들은 부심이 후반전과 경기가 끝난 후에도 눈물을 흘리며 선수들의 인사를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기제 선수가 욕설을 한 것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벌금이 부과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수원의 서포터들은 몇 시간 만에 벌금의 몇 배에 달하는 금액을 모았고, 그 금액은 구단과의 논의를 통하여 기부 단체에 전달하였다. 하필 이러한 일이 있었던 직후라, 주심이 수원에게 불리한 판정을 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결국 2024년 빅버드의 마지막 경기는 서포터석을 포함한 모든 좌석에서 터져 나온 쩌렁쩌렁한 "심판 눈떠라!" 콜과 심판을 향한 야유로 끝났다.


우산도 쓰지 않고 비를 맞으며 심판을 향한 분노까지 쏟아내다 지쳐버렸던 나를 포함한 서포터들을 위로해주었던 것은 이후 공개된 락커룸 영상에서 느껴졌던 마음들이었다. 감독님은 "순간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금방 지나가. (하지만) 그 패배와 상처는 오랫동안 가져간단 말이야"라는 말로 경기를 앞둔 선수들에게 승리를 향한 갈망을 일깨웠다. 경기 후에는 경험이 많지 않은 선수들이 경기 외적인 부분에 신경 쓰는 모습에 대하여 지적하며 팀의 방향을 잡아나갔다. 팀으로서 간절함과 배고픔이 필요하고, "최선을 다하고 모든 걸 다 쏟아냈을 때 박수를 받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선수들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고참 선수들인 백동규 선수와 양형모 선수가 '진 경기는 아니다'라며 가라앉아버린 어린 선수들을 끌어올리며 팀의 분위기를 다잡았다. 여전히 승리는 절실하지만, 서서히 원팀으로서 거듭나는 중이었다.




이후 두 경기는 모두 평일 원정 경기라 현장에서 직관을 갈 수 없었다. 하지만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중계를 통해 현장에 있는 것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았다. 먼저 진행된 부천과의 경기에서는 여름에 새로 합류한 김지호 선수가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었다. 수원에서의 첫 득점 후 서포터석에 큰절을 올리는 그의 세레머니에 모두가 환호했다. 경기는 3:0의 대승으로 끝났지만, 7월 중순에 전역 후 합류한 강현묵 선수가 부상으로 쓰러졌다. 이전과는 다른 사람인데도 주심의 판정은 여전히 상대의 거친 플레이에 관대하였다. 우리 팀은 득점하는 순간들을 제외하면 상대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끝내 승리하는 모습은 이제는 역경 속에서도 이기는 법을 터득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름 국가대표 경기로 인한 리그 전체의 휴식기 전 마지막 경기는 김포와의 원정 경기였다. 상대 팀의 끈끈한 플레이 이상으로 걱정되는 것은 바로 경기장이었다. 고르지 못한 경기장 바닥 탓에 문자 그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이기 때문이었다. 7월 말의 숨도 쉬기 힘든 더위 속의 경기력은 새로운 감독의 지휘가 시작된 6월 이후로 역대 최악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이후의 비하인드 영상에서는 또다시 락커룸 장면이 삭제되었다. 얼마나 선수들이 혼났으면 그랬을까. 이날 경기는 또다시 1:1 무승부로 끝이 났다. 6월부터 이어진 무패 행진은 좋았지만, 승격을 위해 필요한 승리는 하나라도 아쉬운지라 마음이 놓이진 않았다.  


하지만 그날에도 정말 소중했던 것이 있었다. 팀의 대표 스트라이커 뮬리치 선수가 드디어 두 달 만에 다시 득점에 성공했다. 하지만 내가 유심히 봤던 모습은 바로 그 직후의 모습들이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뮬리치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개인 세레머니를 하는 대신 벤치로 달려가 감독과 포옹하며 기쁨을 나눴다.


뮬리치 선수는 굉장히 특이한 선수이다. 키가 2m가 넘지만 헤더를 할 수 없고, 가늘고 긴 체형 때문인지 경합을 이겨내지 못했다. 선발 명단에 들지 못한다거나 경기 중에 교체가 되면 본인의 출전시간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감독이나 서포터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기도 했다. 심지어 슈팅 여러 개를 날린 끝에 나온 득점 장면에서 유니폼을 벗어던지며 세레머니를 하다가 경고를 받은 적도 있었다. 뮬리치 선수의 태도에 대한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보여준 것도 아니었기에 그가 여름 이적시장에서 정리되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제법 높았다.


하지만 이 경기가 있기 얼마 전, 감독님은 구단에서 공개한 영상을 통하여 뮬리치 선수와 따로 면담을 했다면서 그를 위해 비난하지 말고 응원해 달라는 메세지를 서포터들에게 전달하였다. 영상에서 보인 것 이상의 감독과 코치들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뮬리치 선수는 이날 하얀색 원정 유니폼이 피로 물들어도 끝까지 경합하며 뛰어다녔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골이 터져서 매우 기쁘지만 오늘 이기지 못해서 슬픔과 쓴 맛을 느낀다'는 말로 팀의 경기 결과에 대한 아쉬움과 본인의 결의를 드러냈다. 어느새 변성환 감독이 이끄는 이 팀에서 인간적인 결속력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경기나 훈련을 시작하기 전, 선수들과 감독, 그리고 코치진은 모두 둥글게 모여서 어깨동무를 한 채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를 외친다.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팀은 그 구호에 걸맞은 모습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폐허가 된 명가의 재건'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꼭 필요하고 모두가 기다려왔던 리빌딩은 새로운 인물의 영입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감독과 코치들, 그리고 선수들과 서포터들까지가 모두 한 마음으로 뭉치는 과정이 바로 그 본질이었다.


대학원 때 실험실에서 했던 과정 중 crystallization이라고 하는 결정화가 있다. 액체 상태의 물질을 고체 형태의 결정으로 키워내는 이 과정에서 seed라고 부르는 첫 결정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씨앗'이라고 부르는 첫 결정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가장 적절한 배합으로 조합한 용액을 담아둔 용기를 절대 건드리면 안 됐다. 누군가 실수로라도 테이블을 치고 가면 그 즉시 결정화 실험의 주인의 엄청난 원망을 들어야만 했다.


원팀이 되는 과정을 통한 리빌딩이 이와 같은 느낌이었다. 항상 우리에게만 불리한 것 같은 심판의 판정, 고르지 못한 경기장, 자꾸 나오는 무승부, 상대 팀의 거친 플레이와 같은 어려움들은 여전히 원팀이라는 결정의 첫 씨앗이 생성되기 어렵도록 팀을 흔들어댔다. 하지만 그 자리를 지키며 응원하는 서포터들과 함께 감독과 코치진들은 원팀의 씨앗을 지켜내고 있었다. 첫 씨앗이 생겼으니 남은 일은 결속력이 자라나서 승리들이라는 결실로 나타나길 바랄 뿐이었다. 그 동안 만나게 될 경기의 결말이 승리가 아닌 날에도 우리의 응원가는 여전히 드높을 것이다. "모두의 마음을 모아서, 저 높은 곳을 향해서, 다 함께 싸워 나가자!"


계속해서 골이 취소되더라도 우리의 노래는 멈추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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