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테 트리콜로, 수원을 지키는 이들이자 수원의 상징인 그 이름
'Fanatic(열광자)'라는 어원처럼 팬들은 감정적으로 팀에 매료되어 경기와 승리의 순간을 통해 즐거움을 추구한다. 그들에게 축구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서 그때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경기장에서 열렬히 응원하거나 SNS에 좋아하는 선수의 게시물에 댓글을 남기며 애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축구팀의 팬의 수는 성적과 비례한다. 리그에서의 순위가 높을수록 더 많은 팬들이 모여 열광하지만, 반대로 순위가 낮다면 경기장을 찾는 팬들의 수는 급격히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축구장에는 다른 스포츠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팬들이 아닌 집단이 존재한다. Support라는 단어처럼, 감정의 응원을 넘어 지속적인 지지와 헌신으로 팀을 떠받치는 그들은 '서포터(Supporter)'라고 불린다. 서포터는 팀이 승리의 영광을 누릴 때뿐만 아니라 패배 속에서 방황할 때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다. 성적과 상관없이 일관된 지지를 보내지만 필요하다면 구단의 운영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변화를 요구한다. 서포터들은 조직으로 움직여 응원의 중심이 되어 경기장 분위기를 주도하고 선수들과 열기를 공유한다. 그라운드 위에서 직접 뛰지만 않을 뿐, 서포터들은 스스로를 단순히 '응원하는 사람들'이 아닌 팀의 일부로서 정의한다.
축구장에서 팬은 팀을 사랑하는 관객으로서 그라운드 위에서 펼쳐지는 환희와 슬픔을 만끽하며 마음껏 열광한다.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추구하기에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팀과의 거리가 멀어지곤 한다. 그러나 서포터는 팀을 함께 만들어가는 동반자다. 팀의 모든 순간을 받아들이고 함께 짊어지며 자신만의 축구를 완성한다. 감정의 추구가 아닌 책임의 완수를 위해 경기장 안팎에서 팀과 같은 무게를 짊어지고 팀의 일원이 되어 살아가는 존재들인 것이다.
수원을 응원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단어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수원의 팬 전체를 일컫는 '그랑블루', 다른 하나는 서포터를 일컫는 '프렌테 트리콜로'이다. 프렌테 트리콜로는 여러 개의 소모임들뿐만 아니라 그러한 소모임에 속하지 않은 개인 서포터들도 포함한다. 트리콜로는 스스로를 팬이 아닌 서포터로 생각하고, 서로는 '동료'나 '지지자'라고 부른다. '응원'이 아닌 '서포팅'을 책임이자 존재의 이유라고 생각하기에 그에 대한 자부심도 높다.
프렌테 트리콜로는 K리그를 통틀어서 가장 강렬한 서포터들이라고 생각한다. 경기 시작 전부터 경기가 끝날 때까지 두 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응원가를 부르고 콜을 외친다. 골을 터졌을 때 트리콜로가 내지르는 함성은 경기장을 뒤흔들며 모두에게 전율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들의 진짜 힘은 팀이 어려울 때에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선수들이 워밍업을 위해 경기 한 시간 전에 그라운드로 들어설 때부터 심판의 마지막 휘슬이 울릴 때 결정되는 결과를 가지고 퇴장할 때까지, 그 어떤 순간에도 서포팅은 멈추지 않는다. 특히나 상대팀에게 실점하였을 때 오히려 우리 선수들의 귀에 상대의 환호소리가 들어가지 않게 하겠다는 각오로 이를 악물고 더 크게 하는 서포팅은 그 모습의 정점이라고 느꼈다.
수원의 서포터로서 향했던 빅버드의 N석이나 다른 구장의 원정석에서, 그리고 그곳으로 향하는 길과 그곳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서포팅을 이끌어가는 라 반다 데 우만은 아르헨티나의 드럼인 봄보와 탐, 헤삐끼를 연주하며 때로는 트럼펫이 합류하기도 한다. 남미의 쪼개지는 박자를 기반으로 다양하게 연주하는 반다지만 사실 그중에 처음부터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오로지 서포팅만을 위해 읽을 수 없는 악보 대신 운지법을 숫자로 변환하여 외운 트럼펫 연주자들과 더운 날의 땀과 손을 얼리는 추위에도 스틱을 놓지 않는 드럼 연주자들은 경기가 없을 때도 모여서 연습을 하며 경기장을 가득 채운 서포터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다. 오랜시간 악기 연주를 하며 전공하기를 원했던 적이 있었던 나로서는 그들의 노력이 얼마나 처절하고 대단했을지가 짐작이 가서, 그들이 경기장 한 편에 내려놓은 악기 사진만 보고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228 엘리트는 경기 당일의 서포팅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현장팀이다. 특별한 퍼포먼스를 기획한 경기 날에는 새벽같이 경기장에 도착해 준비를 시작한다. 2023년 '강등 오적'에 대항하는 검은 비닐봉지 퍼포먼스, 슈퍼매치가 열린 상암의 원정석에서 8000명이 펼쳤던 청백적 카드섹션, 2023년 강등 이후에 더욱 모두의 기억에 남았던 하트 카드섹션과 2024년의 카드섹션과 동시에 진행한 통천 퍼포먼스까지 모두 이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현장팀은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고 어디든 캐리어에 청백적의 깃발과 배너를 가득 담아 나타났다. 몇 번의 경기에서 내 자리가 현장팀의 바로 옆이었던 적이 있었다. 한창 서포팅을 하는 서포터석은 가까이서 보면 '프렌테 트리콜로'의 번역인 '청백적 전선'이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3m의 긴 깃대에 묶은 대형기를 들고 있는 '깃돌이'들은 목장갑과 아대에만 의지해서 90분 이상을 함께 뛴다. 깃발을 놓지 않는 와중에도 박수로 하는 서포팅까지 왼쪽 가슴 위의 엠블럼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함께 한다. 긴 시간동안 끝가지 깃발이 춤출 수 있도록, 필요한 경우에는 사전에 깃돌이들끼리 교체 순번을 정해 운영하기도 했다. 비가 오던 날에 물을 머금어 무거워진 깃발에 깃대가 꺾이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현장팀은 푸른 깃발이 계속해서 휘날릴 수 있도록 재빠르게 테이프와 커터칼을 들고 깃대를 고쳤다. 멀리서도 청백적의 반데라가 보일 수 있도록 가장 앞자리에서 반데라를 잡고 아예 뒤돌아서 뛰며 뒷자리의 서포터들을 격려하며 서포팅을 주도했다. ‘228 엘리트’이름에 걸맞는 수원월드컵경기장이 위치한 '우만동 228번지'의 엘리트들이었다.
8월 초에 서포터즈 회의가 있었다. 프렌테 트리콜로 소속의 소모임을 대표하는 서포터들뿐만 아니라 소모임에 속해있지 않은 개인 지지자들도 신청 후 참여할 수 있었다. 해외 출장을 다녀온 직후에 달려간 자리에서는 운영팀인 카베자와 소모임 대표자들, 그리고 나와 같이 개인 지지자의 자격으로서 참석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서포터들은 서포팅이 본업이 아니라 각자 다른 직업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나와 같은 회사원이기도 했고, 누군가는 식당을 운영하는 개인 사업자이기도 했다. “이 이상 하려면 가게 문 닫아야 해요”라면서 웃던 모습에서 보이는, 본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붓는 헌신과 열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 유독 인상 깊었던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처음 서포터석에 온 사람들이 응원 방식에 익숙하지 않거나 불편해할 때의 대처 방식이었다. 누군가가 이 부분에 대해 안내를 요청했을 때에 돌아온 답변은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프렌테 트리콜로는 서포팅을 알려주는 곳이 아닌 주도하는 곳입니다.” 이는 서포터로서의 자부심을 담은 말이었다. 다른 하나는 앞으로 몇 달간 있을 홈 경기장의 임시 변경에 관한 논의였다. 수원월드컵경기장의 지반 공사로 인해 남은 시즌 동안 경기를 용인의 미르종합운동장에서 치르게 되었는데, 프렌테 트리콜로는 이를 홈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미르에서는 다른 곳에서 치렀던 원정 경기들과 동일하게 흰색 배너를 사용할 것이며, 오직 '빅버드' (*수원월드컵경기장의 애칭)만을 진정한 홈으로 여긴다는 결의를 다졌다. 강한 자부심과 타협하지 않는 원칙은 회의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내 마음에 여운을 남겼다.
수원의 강등이 가시권에 들어왔던 2023년 하반기부터 수원 경기의 관중수는 줄어들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오히려 늘어났다. 9월부터 원정석을 매진되기 시작한 상대의 원정석 중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매진된 서울월드컵경기장도 포함되었다. 수원의 서포터들은 11월의 슈퍼매치에서 8000명이라는 역대 최다 원정인원을 기록했다. 2부 리그로 강등되고 난 2024년에도 수원의 관중수는 여전히 늘어나는 중이고, 상대 팀들의 원정석을 매진시키다 못해 주변 시내를 푸른 물결로 뒤덮기도 한다. 그 누구라도 압도하는 서포팅은 상대 선수들을 얼어붙게 만들었고 새로운 서포터들을 불러 모았다. 모두가 인정하는 '수원의 본체'인 트리콜로는 K리그의 사람들에게 낭만과 헌신, 혹은 광기의 상징이 되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트리콜로는 마리아치 원곡의 흥겨움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비장한 태도로 '수원의 열두 번째'를 많이 부른다. ‘수원의 열두 번째 (선수로서), 언제나 우리가 널 지킨다'는 가사에서는 그날 서포팅에 임하는 서포터의 결의가 느껴진다. 다음 날은커녕 경기가 끝난 직후부터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만큼 경기장에서 모든 것을 쏟아내는 서포팅은 승패를 떠나 끝없이 이어지는 사랑과 충성의 증표였다.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깃발을 내리지 않고, 경기의 결과가 두렵더라도 경기장을 찾아 서포터석을 지키며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존재를 지키고자 하는 신념의 표출이었다. 때로는 선수들을 꾸짖고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그래놓고서 결국에는 패배의 순간에 상대로부터의 조롱마저도 대신 받아내며 선수들을 지키는 최후의 방패이자 가장 든든한 보호자였다.
이런 서포터들을 보고 수원의 레전드이자 감독이었던 서정원 전 감독은 “어찌 이런 팬들 앞에서 나태해질 수 있겠는가.“ 라고 말했고, 수원의 현 감독인 변성환 감독은 커피차부터 손편지까지 보내는 수원 서포터들의 지지에 “수원의 감독으로서 내 인생을 걸겠다”고 답했다. 수원으로 임대 이적해온 이규동 선수는 서포터들을 보고 “축구에 진심이신 것 같아요” 감탄했고, 김상준 선수는 상대 팀의 친분이 있는 선수에게 전화를 걸어 종종 자랑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누군가에게는 광기 어린 집단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 서포터들을, 같은 팀을 바라보는 동료로서 어찌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