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놓친 뮤지컬 중 가장 아쉬웠던 게 바로 <레드북>이었다. 공연 시기에 여러 사정들이 겹쳐 도저히 서울까지 올라갈 시간이 나지 않아 눈물을 삼키며 포기했는데, 실황 중계 덕분에 조금이나마 그 아쉬움을 덜 수 있었다. 지방에 사는 뮤지컬 팬들은 이렇게 소소하게 코로나19의 덕 아닌 덕(?)을 보기도 한다. 이래저래 참 아이러니한 시국이 아닐 수 없다.
원래 브런치에는 온라인 실황 중계를 통해 관람한 극에 대한 글은 잘 쓰지 않는데, <레드북>은 개인적으로 여타의 극과 감회가 조금 다른 느낌이라 그냥 주절주절 써 보려 한다.
이건 그냥 업로드할 때에 쓰려고 얼레벌레 만들어본 캐스팅보드. 10월 25일 중계였으며, 캐스트는 김세정, 인성(SF9), 홍우진, 방진의 등이었다.
1. 신사의 나라에서 신사 아닌 자로 산다는 것
<레드북>에서 그리고 있는 영국은 '신사의 나라'이다. 정확히 말하면 '신사에게만 허용된 나라'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신사란 교양 있는 남성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영국에 여성은 설 자리가 없다.
그런 사회에 안나는 로렐라인 언덕 위에 반기를 꽂는다. 안나를 비롯한 로렐라인 언덕 위 그들은 펜을 반기의 깃대로 삼았다. 여자는 글을 쓰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던 시대. 그들에게 글은 단순히 상상 속에 있는 것을 펼쳐놓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글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세상에 대해 자신이 여기에 살아 있음을, 발 딛고 서 있는 존재이자 주체임을 선언한다. 소설은 내가 나라고, 나를 말하는 창구이다. 잔잔한 수면 위에 떨어진 한 방울의 잉크는, 그렇게 더 큰 파동을 더 멀리 퍼져나가게 했다.
안나가 썼던 소설의 내용이 야한 것이라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인간에게 성욕은 필수는 아닐 지언정 지극히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욕구이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가진 욕망을 어떤 식으로든 표출하고 싶어 한다. 이 사회에서 남성들은 성희롱이라는 그릇된 방식으로 그 욕망을 표출해도 그 누구도 제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들은 문학이라는 정제된 틀 안에서의 표현조차도 억압받는다.
이 작품은 단순히 "여성의 성욕도 인정해야 한다" 따위의 단순한 선전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야한 상상, 야한 이야기로 표현되는 성욕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욕구와 본능만이 인간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 또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인간다움이라는 추상적인 관념 속에서 욕망은 구체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를 건강하게 표출하는 권리조차 보전받지 못한다면 이 또한 인간다운 대접을 받을 권리로부터 박탈당하는 게 아닐까.
또 로렐라인 언덕과 레드북이 부여하는 해방의 주체는 여성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로렐라인'의 존재는 그런 점에서 돋보인다. 안나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캐릭터가 로렐라인이었다. 로렐라인은 남성이고, 자신이 사랑했던 로렐라인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스스로가 '로렐라인'이라는 존재로 살아간다. 그래서 그는 검은색 여자 옷을 입고 다닌다. 그리고 그런 그를 이해하는 사람은 로렐라인 언덕의 구성원 말고는 없는 듯하다. 그만의 애도는 그저 이상하게 옷을 입고 다니는 이상한 사람으로밖에 치부되지 않는다. 결국 레드북은 기성이라는 미명 하에 소외되는 모든 존재들의 목소리이다.
한 대상을 '문제적 존재'로 상정하는 태도는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그 어떤 인간도 그 존재 자체만으로 죄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당연히 지워져야 하는 존재는 없다. 오히려 당연히 지워져야 하는 건, 그런 식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려는 모든 시도들일 것이다. (우리는 그걸 범죄와 폭력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털어서 먼지 하나 없는 세상이라면, 우리는 오히려 그곳에서 결코 숨쉬고 살아갈 수 없다. 문제투성이 세상의 하나의 오답, 그건 곧 정답이다. 우리는 그곳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2.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레드북>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이 극이 온다면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유튜브 서핑 중 우연히 들었던 이 노래 때문이었다. 아래에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을 처음 들었던 동영상을 첨부했다. 이 글은 끝까지 읽지 않더라도 이 음악은 꼭 끝까지 들어주길 바란다. 특히 가사를 한 자 한 자 눈에 담아가며 듣는다면 이 곡이 가진 매력을 120%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창작 라이센스 뮤지컬 가릴 거 없이, 이 곡은 대한민국 뮤지컬 넘버 통틀어서도 손에 꼽힐 명곡이라고 생각한다. 노래 자체가 좋지만 가사는 수십 번 수백 번을 곱씹어봐도 벅차오르게 하는 힘이 있다. <레드북>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관통하면서도 내가 내 인생을,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나로서 충분해 괜찮아
타인의 인정과 외부의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우리에게, 안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전하는 이 노래의 마지막 가사는 얼마나 우리에게 묵직하게 다가오는지. 인간의 존재 이유,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를 하나로 단정할 수야 없겠지만, 그 복합체를 이루는 모든 것들의 토대는 '나'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우리 각각의 존재는, 존재만으로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가끔은 내 인생이 참 빌빌거리는 것 같지만, 우리는 결코 별 볼 일 없지 않다. 그러니 거리낌없이, 자랑스럽게 나를 말하는 사람, 나를 외치는 사람이 되자.
그동안 뮤지컬을 보면서 온라인 중계로 본 작품은, 현장에서 보는 것보다는 조금 빠르게 휘발된다는 느낌 때문에 아쉬움이 남았었다. 그런데 문득 <레드북>은 그 여운이 마치 직접 관극한 것처럼 유독 오래 남는다. <레드북>이 전하는 메시지가 지금 내 인생에 가장 결핍되어 있고, 그래서 내게 가장 필요했던 말,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