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르는돌 Dec 22. 2018

이직 말고 창업할게요.

준비 없이 시작했던 주먹구구 창업기


'창업', '스타트업'이라는 단어가 내 인생 계획에 들어온 건 두 번째 퇴사 이후부터다. 이전까지는, 한 분야에서 몇십 년의 경력을 쌓은 전문가들이나 자기 사업을 꾸리거나, 어렸을 때부터 프로그래밍과 코딩을 하던 천재 해커들이나 스타트업을 한다고 생각했다. 간혹 청년창업자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접하며 아련히 꿈꿔본 적은 있을지언정 가진 능력이 없는 나에게는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다. 


계기는 엉뚱한 데서 왔다. 경험을 쌓기 위해 들어갔던 작고 작았던 두 번째 회사에서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거참! 사장, 나도 하겠네 그려."


당시 사장은 내 눈에 너무나 무능하고 게으른 사람이었다. 내 아이디어를 녹인 기획서는 그에게 조금도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클라이언트에 전달되고 있었고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철저히 팀원들 힘으로만 모두 결정되고 운영되고 있었다. 최후엔 '아니, 이거 그냥 우리끼리 하는 게 낫겠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동안 회사생활에서 기획서·예산서를 보고 만들고, 협력업체와 계약하고 일을 진행하던 그 모든 평범한 (쓸모없다 생각했던)프로세스들이 내 능력의 일부로 쌓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 사업을 따내다.

 

그래서, 나왔다. 동료와 손잡고 나와 사업자를 만들었고, 문화재단 사업 공고 중 하나에 기획서를 써내 몇 백만 원짜리 작은 프로젝트를 따냈다. 처음이었다. 내가 속한 회사가 아니라 내 이름으로 기획서를 써냈고 처음으로 회사를 대변하지 않고 '내'가 뭘 하겠다는 건지 전달하는 pt 발표를 했다! 합격자 명단에 보인 우리 이름에 발을 동동 구르며 기뻐했다. 정말이지 짜릿한 첫 홀로서기였다. 


자체 서비스를 만들고, 창업지원금을 받다.


작은 성취는 겁 많은 사무직 회사원이었던 내게 과감한 실행력을 주입하며 스노우볼을 굴리기 시작했다. 자체 서비스를 좀 더 일찍 만들어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당시 우리는 개발에 '개'자도 몰랐고, 웹페이지를 만들어 본적도 운영해본 적도 없던 순수 초짜들이었다. 게다가 전문 기술이나 세상을 바꿀 혁신적 아이디어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정부로부터 창업지원을 받을 생각도 감히 하지 못했다. 그저 '창작자들은 왜 가난해야 하는가'라는 단순한 문제제기에서 시작해 우리가 좋아하는 창작자들의 제품을 인터넷에서 팔아보는 웹사이트를 만들 작정이었다. 투자금은 이전 회사생활에서 모아뒀던 돈으로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서칭을 하며 솔루션을 사고, 웹디자인을 맡기고, 창작자들을 모집해 4개월에 걸쳐 페이지를 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겁없이 용감하게 진행했고, 요상하기 짝이없는 허술한 사이트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개시를 했음에 벅차 했고, 아이디어를 실현시킨 데에 감격했다.


신기한 점은, 맨땅에 헤딩하듯 덤벼드는 과정에서 우리도 모르는 새에 스토리텔링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거다. 왜 이 일을 하려고 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이뤄나가려 하는지 등등에 대해 좀 더 살이 붙고 설득력이 생겨나갔다. 게다가 짧은 시간내에 폭발적으로 고민하고 시도하면서 우리의 능력도 성장하기 시작했다. 점점 디자인은 멋있어졌고, 영업력은 늘었으며, 기획서도 잘 작성하게 됐다. 


6개월 후에는 삼천만원 가량의 정부 창업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고 또 6개월 후에는 회계 지원 사업을, 또 6개월 후에는 공간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눈에 띄는 성과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망하다.


치열하게, 하지만 물흐르듯 진행됐다. 겉보기에 사이트는 좀 더 그럴듯하게 리뉴얼돼 나갔고, 참여하는 창작자들도 많아졌다. 지원금으로 자체 상품도 만들고, 오프라인 마켓도 열고 활동도 넓혀나갔다. 그러나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처음부터 유의미한 규모의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월세, 호스팅비, 운영비, 기타 제반 비용을 지불하고 나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중개 수수료만으로는 3의 인건비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우리는 중간부터 개인생활비를 따로 버는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했다. 


여러 번 심폐소생을 시도했으나, 기획 단계부터 고객 검증 없이 잘 못 끼워진 단추들이 끝까지 한계점이 되었다. 시장은 역시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라는 교훈을 안고 2년 반 만에 사업자를 폐지해야했다.




이 창업기는 실패담이다. 선배 창업가들이 경고한 97%의 실패 확률에 정확하고 안전하게 착지했다. 그러나 이런 얘기가 있다. 스타트업은 실패해도 구성원은 실패하지 않는다. 회사는 망할지언정 그 구성원은 그 경험을 토대로 더 성장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3%의 자기 수익을 내고 있는 여러 창업가들이 자랑할만한 실패담 몇 개즘은 가지고 있다. 


고로 내 사업은 망했지만 나는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 성장했음을 느낀다. 회사가 던져주는 일만 할 줄 알았던 내가 능동적으로 고민하고 실행하는 법을 배웠고,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어떤 걸 더 공부해야 할지도 이제는 안다. 앞으로도 내 사업을 계속 해야겠다는 확신도 얻었다. 


때로는 크게 성공한 사람의 '대단한' 이야기보다 주변에서 보게 된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은 현실성 있는 이야기가 나를 움직이게 한다. 말했듯 나는 그런 자극으로 움직이게 된 케이스다. 성취와 자유에 대한 갈망이 크다면, 혹은 자신의 길이 어디인지 몰라 방황 중이라면 너무 큰 목표를 그리고 바라기보다 '작은' 것부터 도전해보기를,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더 많이 실패해보기를 권하고 싶다그 실패들이 모여 당신과 나를 성장시키고 결국 무언가를 이뤄낼 기회를 만들어 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희망연봉을 깎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