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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적글적샘 Aug 19. 2021

살짝만 건드려도 확 달라지는 자소서 첨삭법

2024년부터 대입 자소서가 사라진다. 고교학점제와 반대로 가는 입시정책으로 학생부 종합 전형이 서서히 간소화되기 때문이다. 또한 10년 넘게 비슷한 내용과 주제로 제출된 자소서의 평가 변별력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같은 변화가 아쉽다. 학생들에게 학창 시절의 경험을 정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사라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올해를 포함해 내년까지는 자소서가 남아 있을 예정이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소서 첨삭과 관련된 기록을 남겨 둔다.

국어 교사로 근무하면서, 그리고 고3 담임을 하면서 수많은 학생의 자소서를 지도했다. 개인적으로 자소서 지도를 좋아하는 편이고, 또 잘하는 편이라 생각하는 터라 나름의 유용한 첨삭 팁이 있다. 그런데 국어 교사가 아닌 선생님들에게 자소서 첨삭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학생이 들고 온 글에 조언을 해 줘야 하지만 자소서를 어떻게 읽고, 어떤 도움을 줘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을 많이 봐 왔다.

이 글은 학생이 어느 정도 완성된 자소서 초안을 들고 왔을 때, 아주 쉽고 간단한 방법으로도 학생의 자소서를 확 바꿀 수 있는 몇 가지 팁이다. 국어교사들에게는 자소서 첨삭의 난도로 따지자면 '하'가 되겠지만, 학생이 느끼는 체감효과는 '상'이 될 것이다. 그만큼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용한 팁이다. 자소서 첨삭을 해 주긴 해야 되는데,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할지 감이 안 오는 선생님들에게 유용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자소서를 전체적으로 지도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학교, 학과의 인재상 분석  생기부 활동 분석 및 1번과의 짝짓기  대략적인 틀 잡기  초안 작성  반복 첨삭 및 수정]의 여러 과정을 거친다. 이 글은 자소서 지도 단계의 끝, 첨삭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1. 서술어를 최대한 다양하게 사용하자.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나온다.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때 대통령을 수행해 평양에 갔다. 전날까지도 걱정이 앞섰다. 그곳에서는 인터넷 접속이 어렵기 때문이다. 연설문 쓸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미리 '말하다'의 유의어 30여 개를 준비해 갔다. 연설문에 가장 많이 쓰일 것 같은 단어가 '말하다'이기 때문이다.

  대화를 나눴다. 얘기했다, 언급했다, 표명했다, 피력했다, 강조했다, 희망했다, 설명했다, 밝혔다, 반박했다, 토론했다, 합의했다, 호소했다, 권유했다 등등 연설문을 작성하면서 '말하다'가 들어가야 할 자리마다 준비해 간 유의어를 봤다. 가장 어울리는 단어를 찾아 써넣었다. 그 덕분에 큰 문제없이 대통령 연설문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단어 30여 개로 위기를 모면했다.’


윗글은 연설에서 다양한 어휘를 사용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 있다. 연설뿐만이 아니다. 모든 글에서 어휘의 다양성은 글 수준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글이 사고의 표현이라 전제할 때, 결과적으로 어휘의 수준, 다양성은 필자의 사고 수준을 측정하는 중요한 기준이기도 하다. 글 수준을 판단하는 통계화된 수치 중 ’ 어휘 다양성 지수'가 있다. 제한된 분량 안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어휘가 적을수록, 다양한 종류의 어휘가 사용될수록 높게 산출된다. 물론 이 같은 통계치를 자소서 첨삭 상황에서 활용할 수는 없다.

우선 학생의 자소서에서 반복되는 어휘가 없는지 찾아보자. 특히 학생들이 사용하는 서술어가 5가지로 고정되는 경우가 많다. 활동은 했습니다, 지식과 능력은 알았습니다, 배웠습니다, 감정과 가치는 느꼈습니다, 깨달았습니다가 대부분이다. 이때 각 서술어의 의미를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유의어 목록을 미리 찾아보자. 문장의 의미를 유지하되 적확하게 대체할 수 있는 유의어를 중심으로 첨삭해 주면 글의 수준이 확 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학생에게 자신의 자소서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어휘를 찾도록 지도할 수도 있다. 네이버 사전에 해당 단어를 검색해, 아래에 제시되는 다양한 유의어 목록을 확인하게 한다. 그리고 바꾸도록 한다.


아래는 관습적인 5가지의 서술어를 대체할 수 있는 서술어 목록이다.


2. 문장은 최대한 압축적으로.


자소서는 분량이 정해진 글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겠니만, 핵심만 간추려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게 핵심이다. 학생들이 가져온 초안은 대부분 만연체의 장문(길게 늘어뜨린 문장)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부드럽게 읽힌다는 장점은 있지만, 필요한 내용을 다 담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학생의 자소서에서 길이가 긴 문장, 불필요한 의미가 담긴 문장을 최대한 생략해 보라고 이야기하면 학생의 자소서가 확 달라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다른 과목과는 다르게 문제를 풀면 명확한 답이 나와서”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수학 문제를 풀면서 나오는 답은 하나지만 한 문제를 여러 방법으로 풀 수 있다는 점에서 수학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수학을 좋아하는 이유 : 대다수 사람 = 명확함 VS 나 = 다양함


하지만 이 내용을 너무 길게 썼다는 느낌이 든다. 뒤에 수학의 어떤 다양함이 나에게 흥미를 줬는지 상세하게 적으려면 서두는 최대한 간단하게 쓰는 것이 좋다. 아래와 같이 바꾸면 내용은 압축되지만, 의미는 명확해지고 구조는 깔끔해진다.


사람들은 대부분 수학을 좋아하는 이유로 ‘명확함’을 꼽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양함’이 수학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확률과 통계는 이 매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과목이었습니다.


3. 문제 해결 과정은 최대한 극적으로!


학생들의 자소서는 대부분 문제-해결 구조이다. 공부를 하다가, 활동을 하다가 어떤 어려움에 부딪혔고 이를 특정 해결 방법으로 극복해 냈다는 것이다. 문제는 학생들이 문제 해결 과정을 지루하게 서술한다는 데 있다. 자소서가 자소설로 불리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 같은 문제 해결 과정을 너무 과장해서 작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을 읽는 사람 입장에서 재미있게 구성하는 건 별개의 일이다. 따라서 학생들이 가져온 자소서가 너무 재미없거나, 흥미진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최대한 표현을 극적으로 바꾸라고 조언해 줄 수 있다. 실제 예를 살펴보면


2학년 때 친구들과 독서동아리를 운영했습니다. 지원자격을 두지 않아 선호하는 계열에 상관없이 모둠을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모여서 책을 읽는 동아리다 보니, 몇몇 친구들은 무엇을 읽을지 몰랐고 모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참석률이 저조하였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던 중…..


있는 그대로의 일을 솔직하게 서술하기는 했지만, 매우 평이하고 심심하다. 아래 글과 비교해서 읽어보자.


2학년 때 운영한 독서동아리는 점점 학생들의 놀이터가 되어 갔습니다. 정해진 책을 읽는 따분한 동아리였기에 장난을 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용하길 원하는 친구들의 참석률이 낮았습니다. 동아리 부장과 상의하여 주의를 줬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채찍질로 동아리를 이끌지, 다른 수단을 찾을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을 접했습니다.


놀이터라는 비유적인 상황이 학생이 봉착한 문제를 비유적으로 잘 드러낸다. 이후 문제 상황은 크게 4가지다. '장난치고, 참석률 낮고, 역부족이고, 고민이 된다' 이후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을 통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이 4가지 문제를 다 해결해 놀이터의 상황이 개선되었다는 진행 된다. 이처럼 같은 내용도 표현과 구조만 바꿔도 훨씬 드라마틱한 자소서가 완성된다.


4. 과정과 결과를 일치시키자


학생들이 자소서에서 드러내야 할 핵심은 ‘과정’을 통해 '배우고 느낀 점'(결과)이다. 그런데 학생들의 자소서를 보다 보면 과정은 매우 구체적인데, 결론이 관습적일 때가 있다. 고민하지 않고 쉬운 방법으로 글을 마무리 짓기 때문이다. 이때 과정과 결과가 정말 일치되는지를 살펴보면, 자소서에서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다음의 사례를 보자.


화학평형 현상을 배우면서 암모니아 생성반응이 가역 반응임을 알았습니다. 문득 하버-보슈법에 대한 동영상을 봤던 기억이 났습니다. 온도와 압력이라는 변수에 따라 생성률이 바뀌는 관계가 흥미로웠습니다. 두 이론이 관련 있는지 여쭈었고, 선생님께서는 화학 II에 나오는 개념이라며 스스로 탐구해보기를 권장하셨습니다. 화학II 교과서를 학습하면서 화학 평형 법칙과 르샤틀리에 원리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수득률을 공부하며 왜 선생님께서 독학을 권하셨는지 깨달았습니다. 마침 화학II 교과서에도 수득률의 예시로 암모니아 합성반응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이론적으로 낮은 온도, 높은 압력이 수득률을 증가시키는 전제조건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비용과 시간문제로 이론의 완벽한 적용은 불가능하다는 점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탐구 활동의 재미와 화학에 대한 깊은 흥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때 배운 내용이 화학평형을 이해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수업을 듣고, 자신의 배경지식을 떠올려 교사에게 질문하고, 조언을 바탕으로 자기 주도적 학습을 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실제 현상과도 연결 지어 생각해 봤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결론이 식상하다. '재미와 흥미', '이해와 성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는 활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부분을 잘 발견해서 조언해 주면 학생의 자소서가 매우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식과 지식, 이론과 실제의 연결고리를 탐색한 결과를 정리해 보고서로 제출했습니다.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는 과정 자체가, 지식을 키우는 비료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소서에 드러난 핵심적인 내용을 압축적으로 포괄하는 결론이 된다.


5. 군더더기는 과감하게 생략!


자소서 첨삭의 제일 마지막 단계에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특히 이때 김정선의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라는 책을 참고하면 좋다. 내용이 쉽고 분량도 얇아서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최근 10만 부 판매 돌파 기념으로 리에디션 버전이 출간됐다.

학생에게 몇 페이지 정도를 읽게 하고 자신의 자소서를 고쳐 오라고 하면 매우 잘 수정해 온다. 책 안에 많은 사례가 있지만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다음과 같은 문장에 사용된 군더더기 표현만 삭제해도 훨씬 더 깔끔한 문장이 완성된다.


1. 적, 의, 것, 들 빼기

  ex) ‘문제의 해결은 그다음의 일이다’  문제 해결은 그다음 일이다.

         ‘모든 아이들이 손에 꽃들을 들고 자신들의 부모들을 향해 뛰어갔다’  모든 아이가 손에 꽃을 들고 자신의 부모를 향해 뛰어갔다.


2. 있다 빼기

  ex) ‘그에게 있어 가족은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그에게 가족은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3. 대한 빼거나 정확한 표현으로 바꾸기

  ex) ‘성공에 대한 열망이 워낙 커서 오히려 불안할 지경이다’  성공을 향한 열망이 워낙 커서 오히려 불안할 지경이다.

     '해당 주제에 대해 살펴보자'  해당 주제를 살펴보자.

      

4. 로부터 빼기

  ex) 친구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친구에게 선물을 받았다.


5. 시키다 빼기

  ex) 자식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했다  자식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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