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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적글적샘 Sep 29. 2021

시간에 녹스는 마음들

  학교 근처에 커피숍이 생겼다. 출근하는 길에 커피숍이 없어 늘 아쉬운 마음이었는데, 단골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개점만을 기다렸다. 개점 첫날, 손님을 맞이하는 카페 주인의 밝은 목소리가 도드라지게 울려 퍼진다. 살짝 흥분된 표정과 목소리에 친절함이 가득 담겼다. 몇 주가 지났을까. 문득 귀 기울여 듣게 된 카페 주인의 목소리가 차분하다. 기계적인 친절함이 오고 간다. 여유가 묻어나는 표정과 목소리, 자연스러운 손님 응대가 그동안 쌓인 시간을 짐작게 한다.

  카페 주인의 변한 모습이 아쉽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 모두 서서히 녹스는 마음에 적응하며 산다. 설레고 떨리던 마음도 시간이라는 바다에 차분히 가라앉기 마련이다. 하얗게 반짝이던 마음도 자연스레 빛을 잃어가기 마련이다. 어렸을 때는  순간을 마주하는 내가 서글펐다. 열정과 사랑이 사그라들어 재로 남게 되는 시간들이 애처로웠다. 누군가의 녹슨 마음이 다가오는 것도 힘겨웠다. 그러나 언제나 빛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순간 반짝이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대할 수도 없다. 그러니  마음이 근사하게 녹슬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어느 날 모둠 수업을 끝내고 난 뒤 복도를 걸으며 생각했다. 다들 힘들다는 모둠 수업이 왜 이렇게 쉬운 걸까?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할지, 어떤 질문을 던질지, 어떻게 행동할지가 눈에 훤히 그려진다. 아이들의 질문에 기계처럼 대답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 순간 아이들 앞에서 말하며 떨던 과거의 내가,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심이 담긴 무거운 말을 쏟아내던 내가 아련해진다. 떨림과 설렘으로 가득했던 순간들이 그리우면서도, 애써 근사하게 녹슬어가는 나를 마주해 본다. 당황하지 않고 모든 상황을 차분하게 대하는 나를 보며, 노련하게 능숙해진 지금의 나를 긍정해 본다. 그렇게 내 마음을 쓰다듬는다.

  교사로서 지닌 사명감과 책임감의 무게는 여전하다. 그러나 나 하나로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 놓겠다는 거대한 포부는 내려놓은 지 오래다. 누군가를 변화시킬 만큼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필요할 때 조언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저 좋은 사람이 되어 내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면 그만이라 생각하며 살아갈 뿐이다. 존재 자체만으로 든든하게 힘이 되는, 근사하게 녹슬어가는 삶 자체만으로 누군가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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