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도래할 환대의 세계를 상상하며
“다행히 그 학생이 게이는 아니라네요”
선생님이 말한 다행의 세계는 과연 어디쯤일까?
한 달에 한 번 선생님들과 공부 모임을 꾸려 나간다. 매달 주제를 정해 관련된 문학, 비문학, 영화, 드라마 등을 수집해 공유하는 모임이다. 선생님들의 모임이다 보니 학교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테이블 위에 쌓인 숱한 자료를 밑거름 삼아 결국 학생과 수업, 삶의 이야기로 나아간다.
6월의 테마는 사랑이었다. 이야기는 각자의 삶만큼이나 다양했다. 나는 에로스가 종말된 시대에 대중 매체의 판타지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아 헤매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살펴보며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를 은유하는 영화를 소개했다. 한 선생님은 사랑의 범위를 확장해 인류와 자연, 세계와 우주에 대한 사랑을 설명했다. 자연스레 이야기는 사랑의 다양한 형태로, 그리고 동성애로 연결되었다.
그때 한 선생님이 자연스레 자기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놓으셨다. 본인 학교에서 한 남학생이 다른 남학생의 바지를 벗긴 뒤 성행위를 하는 듯한 행동을 취해 선도위원회에 회부되었다는 것이다. 모임에 참석하신 선생님이 선도위원회 관련 업무를 담당했기에 자연스레 해당 사안을 살펴보셨다고 한다. 듣기만 해도 과도한 폭력의 수준과 피해 학생이 느낀 성적 수치심이 심각했다. 학교에서도 해당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꽤 깊은 논의를 했다고 한다. 문제는 대화를 나누던 도중 한 선생님의 발언에서 비롯됐다. 피해 학생의 담임 선생님, 선도 업무를 담당한 선생님, 학년 부장 선생님이 모인 자리였다.
논의 도중 피해 학생의 담임 선생님이 “다행히 그 학생이 게이는 아니라네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우리 모임에 참석 중인 선생님께서 “왜 그게 다행한 일이죠?”라고 되물으니, 피해 학생의 담임 선생님은 가해 학생이 성적인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뜻으로 발언의 의미를 설명했다고 한다. 우리 모임의 선생님은 그 행위가 잘못된 이유는 상대가 동성이든 이성이든 타인에게 가한 과도한 폭력에 있는 것이지, 가해자 학생의 성 정체성을 문제 삼을 건 아니라고 반박하셨다. 게이라고 해서 심각한 처벌을 받아야 할 것도, 아니라고 해서 가벼운 처벌을 받아야 할 것도 아니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자신의 견해를 굽히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끝으로 ‘전 앞으로 동성애자 학생을 만나면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 모임은 어색하게 끝을 맺었다.
알고 보니 피해 학생의 담임 선생님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 순간 잠시나마 그 선생님이 속한 세계를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다수와 소수가 정상과 비정상으로, 정상과 비정상이 선과 악으로 치환되는 세계의 풍경을. 그 세계에서 다수에 포섭되지 않은 삶은 불행이며, 저 언덕 너머의 삶은 어떻게든 구원받아야 하는 삶이겠지. 하느님이 창조한 선의 세계에서 한 인간이 게이가 아닌 것은 다행한 일이며, 악의 세계에 빠진 한 인간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는 그 선생님의 삶에서 진지한 고민일지도 모르겠다며 애써 이해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확고한 신념으로 가득 찬 그들만의 세계에서 누군가의 자리가 가려지고 지워지는 모습을 떠올리며 씁쓸함을 느끼는 건 왜일까.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특정 공간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를 따지는 퀴어 축제의 풍경이다. 퀴어 축제는 매해 7월 서울 시청 광장에서 열린다. 관련 기사에는 모든 시민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공간이 특정 집단의 권리를 주장하는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댓글이 달린다. 모든 시민을 위한 그들의 목소리에서 특정 시민의 존재가 배제되는 건 아이러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이 속한 세계를 상상하며 이해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퀴어 축제를 진행하는 서울 시청 광장의 파릇파릇한 잔디 위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려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삶을 응원한다. 그리고 그 삶의 풍경을 둘러싸고 수많은 기독교인이 회개하라는 문구를 몸에 두른 채 잔디 광장 속 퀴어를 향해 때로는 증오를, 때로는 구원을 소리친다. 연대와 차별, 포용과 혐오가 뒤섞여 어지럽게 아름다운 공간에서 두 세계는 나란히 평행한다. 이어지는 퍼레이드에서 신나는 걸그룹 노래와 찬송가의 불협화음이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며 묘하게 어우러진다. 죄인들을 향해 회개하라고 외치는 확성기를 바라보며 누군가는 욕설을 상징하는 손가락을 힘껏 쳐들고, 누군가는 손하트를 보낸다. 그리고 그 사이를 수많은 경찰이 에워싸며 경호한다. 수많은 경찰이 엄호하는 공권력의 질서에서 너희의 세계는 저들의 세계와 결코 화합할 수 없다는 준엄한 메시지를 읽는다. 우리와 그들의 만남이 충돌과 갈등으로 이어져 결국 각자가 자리 잡은 세계에 큰 상처를 남길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를 확인한다.
이 세계와 저 세계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것일까. 공권력의 보호와 경계가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에게 남는 것은 사랑일까 혐오일까. 가끔 그 거대한 장벽을 걷어치우고, 두 존재가, 두 세계가 만나는 세상을 상상한다. 상상의 세계에서 그들은 서로 싸우며 생채기를 남기지만, 상상의 마지막은 늘 사랑이 혐오를 껴안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그렇게 언젠가 우리에게 도래할 환대의 세계를 기다린다. 그 간절한 기다림으로 서로의 세계가 평행선을 탈주해 끝끝내 마주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