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쯤으로 기억한다. 고등학교 2학년 독서 과목 수업을 하던 중이었다. 연구부장님이 교실 문을 열고 다급히 나를 찾았다. ‘김샘, 잠시 나올 수 있어요?’ 수업 중인 교사를 급히 호출하는 일이 드물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황급히 나갔다. 연구부장님은 복도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혹시 ‘남성에게는 삽입이지만, 여성에게는 흡입이다.’라는 문장이 있는 글을 시험문제로 출제한 적 있어요?’
당시 수업에 사용했던 글은 여성학자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이라는 책의 일부였다. ‘말과 성차별’이라는 챕터 속 내용을 학생들과 같이 읽은 뒤, 생략된 정보와 관련된 질문을 직접 만들면서 글을 이해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제주도 사람 입장에서 남해(南海)는 틀린 말이다. 그들에게는 ‘북해(北海)’다. 왜 박완서는 ‘제3세계’ 문학이고, 괴테는 ‘세계’ 문학인가? ‘유색 인종’은, 흰색은 하나의 색이 아니라 색의 기준이 된다는 백인 우월주의의 표현이다. 왜 한국의 프로야구 최종 결선은 ‘코리안 시리즈’인데, 미국은 아메리칸 시리즈가 아니라 ‘월드 시리즈’인가? 남성에게 성교는 삽입이지만 여성에게는 흡입이다.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중략)
‘성매매’는 윤락(淪落)→매춘(賣春)→매매춘(賣買春)→성매매(性賣買)로 변화해 왔다. 이 용어들은 지금도 말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혼용되고 있는데, 그만큼 언어의 생산과 사용은 정치적이며 말의 변화 자체가 인권의 역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폐경보다는 완경, 처녀막이 아니라 질주름, 삽입 성교보다는 성기 결합, 미혼(未婚)보다는 비혼(非婚)이 듣기에도 좋고 상호적이지 않은가.
이 책은 무려(?) 2005년도에 발간되었다. 1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언어에 덧씌워진 의미를 벗겨내고 그 안에 입혀진 편견을 지우려는 문제의식이 탁월한 글이었다. 주류의 언어로 세상을 구획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가혹한 차별이자, 폭력임을 명쾌하게 논증하는 글이기도 했다. 학생들에게는 글에서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은 것을 면밀하게 골라내 글의 의미와 필자의 의도를 추론하는 연습을 시켰다. ‘왜 미혼이 아니라 비혼이라는 단어를 써야 할까? 성매매라는 단어는 왜 여성 인권의 변화와 관련이 있을까?’처럼 글쓴이가 애써 설명하지 않은 빈틈을 본인의 사유로 차곡차곡 채워나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다. ‘삽입과 흡입’의 차이처럼 굳이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그려질 문장에는 눈이 가지 않았다.
연구부장님은 잠시 교장실에 내려가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사정을 들어보니, 학생인지, 학부모인지, 학원 선생인지 모를 누군가가 내가 출제한 시험문제의 지문에 ‘남성에게는 삽입이지만, 여성에게는 흡입이다.’라는 부분을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 ‘학교 시험에 이 같은 문장이 포함된 글을 출제하는 것이 과연 교육적인가?’라며 JTBC에 제보했다는 것이 아닌가. JTBC 기자는 사실을 확인하고자 학교에 인터뷰를 요청했고, 그 전화를 교장 선생님이 받게 되신 거였다. 교장 선생님은 나에게 기자와 직접 통화를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나는 흔쾌히 응했다.
기자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어떤 질문인지 상세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행동을 문제 삼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이 글을 다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이 글을 수업 시간에 다룬 교육적 의도를 찬찬히 설명했다. 전화를 끊으니 교장 선생님도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셨다. 이 글을 어디서 발췌했으며, 수업 시간에 어떤 방식으로 다루었는지 등을. 긴장되고 떨렸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기자는 전화 인터뷰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지 당일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교장 선생님을 인터뷰하기까지 했다. 다행히 보도되지는 않았다. 데스크에서 뉴스감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후일담을 그 이후에 우연히 듣게 됐다.
한동안 ‘누구일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왜’라는 질문이 뒤이어 나왔다. 경험하지 못한 삶, 경험하지 않을 삶을 경험하게 하는 것, 숨겨지고 가려진 자리에도 누군가의 생이 자라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은 내 수업의 작은 목표였다. 도구교과로써 국어라는 과목이 지닌 태생적 한계를, 논란거리라고는 없게끔 깔끔하게 재단되고 정돈된 교과서를 조금이나마 뛰어넘고 싶었다.
그래서 좋은 글을 찾아 헤맸다. 차별과 혐오에 고통받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담은 글을 가려 뽑았다. 세련되게 말하고 글을 쓰는 것만이 국어교육의 목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가치와 지향점을 알려주는 것이 내가 담당한 소박한 역할이라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신념이 좌초될 수 있음을 처음 알았다. 누군가를 향한 원망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발언하는 소수의 목소리만 쉽게 울려 퍼지는 교실에서 침묵하는 다수의 마음을 살펴보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후회가 몰려왔다. ‘나에게 좋은 것이 모두에게 좋은 것은 아니구나. 서로 다른 방향으로 쌓아온 삶의 결을 존중하지 못했구나. 굳어 딱딱해진 신념이 누군가를 향한 폭력이 될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다친 마음을 애써 다스렸다.
그 사건 이후로 수업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사라졌다. 좋은 수업에 대한 갈망과 욕심으로 이리저리 연수를 찾아다니는 횟수도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2020년, 코로나의 유행으로 교육계는 블렌디드 러닝과 같은 화려한 수업 기술과 번지르르한 겉치레에 치중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 2021년, 학교를 옮기면서 <화법과 작문> 과목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2년 동안 가르치고 있다. 처음엔 말하고 쓰는 과목을 어떤 내용으로 채워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교과서에는 검열을 통과한 교육적인 제재가 수두룩했다. 잠시나마 드론 규제 완화, 의무 투표제와 같은 안전하고 무난한 소재에 내 존재를 가려볼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차별과 혐오의 시대에 너와 나를, 우리를 지키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숨기고 숨겨 뒀던 소수자성을 다시 꺼내 들었다. 당시 나에게 큰 용기를 준 작가는 홍승은이었다. 수업 자료를 준비하며 우연히 읽게 된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의 한 챕터가 나에게 새로운 수업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어떤 글은 존재를 입체적으로 증명하지만, 어떤 글은 존재를 납작하게 만든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그렇다. 글쓰기에서 가치판단이 적용되는 기준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글, 고유한 개개인을 하나의 덩어리로 뭉개는 글은 위험하다. 내 세계를 타인에게 보이는 일, 타인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일, 타인과 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에 고개 돌리지 않는 일. 나에게 읽고 쓰는 과정은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이었다. 아직 나에게도 깨지 못한 편견이 많고, 사회에도 깨지지 않은 침묵이 많다. 강요된 평화가 아닌 정직한 불화를 위해, 나는 앞으로도 계속 쓰는 사람이고 싶다.
매끄러운 평탄면과도 같아 보이는 세상에 수많은 굴곡이 존재함을 알리는 일, 그 굴곡을 발견하고 누군가가 다치지 않게 다듬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글이었다. 용기를 가지고 단원을 재구성했다. 토론과 설득하는 글쓰기를 연계해 4주 동안의 긴 수업을 준비했다. 시작은 교과서 학습활동에 실린 ‘노키즈 존에 반대하는 글’이었다. 해당 글을 읽기 전 학생들에게 노키즈 존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아이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과반수가 노키즈 존에 찬성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에게는 나이라는 기준으로 행해지는 불합리한 차별보다, 쾌적한 공간을 소비할 권리가 우선인 듯했다. 그런 아이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바꿔 보고자, 노키즈 존에 반대하는 기사를 비롯해 감동적인 글 몇 편을 함께 읽었다.
이어 다양한 글쓰기 주제를 던져 주며 수업을 확장해 나갔다. 촉법소년 연령 인하, 여성가족부 폐지, 차별금지법 제정,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제도 폐지, 장애인 이동권 보장 등등. 마음에 드는 주제를 골라 자신들의 생각을 펼쳐 보라고 말했다. 그런데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고 싶다는 마음과 동시에, 내 신념과 다른 글들이 솟구쳐 나올까 봐 걱정됐다. 우려는 현실이었다. 학생들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쉽게 부정하는 글들을 쉽게 써 내려 갔다. 자신들과 다르다고 생각되는 아이들에 대한 증오 또한 과감하게 내뱉었다. 자신의 유년 시절과 달리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을, 자신과 다르게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을 특정 공간에서 배제하고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마주할 미래도 싫어했다.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제도는 몇천억의 적자를 내는 불필요한 복지제도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담긴 글을 읽으며,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 1위, 노인 자살률 1위와 같은 암울한 통계 수치가 수천 억 원이라는 적자에 가려지는 어두운 현실을 마주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논란도 마찬가지다. 여성 가족부가 18개의 행정 부처 중 가장 적은 예산을 쓰며, 부서로서의 고유 권한이 적은 것은 역설적으로 성차별의 결과이자 극복해야 할 현실이지만, 학생들에게는 여성가족부의 쓸모없음과 예산 낭비를 증명하는 근거가 돼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 문제를 글쓰기 주제에 포함한 건 올해 초 논란이 되었던 이준석 대표의 발언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약자에 대한 혐오와 분노, 그 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흔히 말하는 갈리치기를 하는 엘리트 정치인의 모습을 보며 두려움을 느꼈다. 장애인들의 외침을 타인의 고통쯤으로 여기는, 너와 나는 다르다는 식의 구별짓기로 접근하는 사람들의 댓글을 읽으며,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사실상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된 주제는 찬반을 생각하고 제시한 것이 아니었다. 그 논제를 선택한 학생 대다수가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정치 쟁점화한 한 정치인의 오만과 독선을 날카롭게 비판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학생들은 장애인의 보편적 이동권과 출근을 하는 시민의 불편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접근했다. 하루에 몇십만 명이나 타는 지하철이 단 2-30대의 휠체어 때문에 몇 시간 지연된다면, 그것은 시민과 장애인을 대립 구도로 만든 시스템의 잘못일 텐데도 몇몇 학생은 출근길에 고통받는 시민의 편에 섰다.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는 이른바 정상 직장인의 삶이 본인들이 다가갈 확률적인 근사치에 가까운 삶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평균을 향해 가는 우리의 삶이 타인을, 약자를 배척하는 세상을 학생의 글을 통해 마주했다.
“할머니 임종 지키러 가야 된다고 xx놈아!”
퇴근길 어수선한 지하철 속에서, 한 청년이 울부짖는다.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1분, 아니 1초라도 더 담기 위해서는 빨리 병원으로 가야 하지만…애석하게도 열차는 움직이지 않는다. 옆에 앉아있는 회사원은 손에 든 기차표와 손목시계를 번갈아 본다. 옆에서는 한 여인이 통화를 하고 있다. 스피커 사이로 “엄마 언제 와?”하는 앳된 아이의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할머니의 심장은 멈춰 버리고 말았다.
시위 주최단체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른바 ‘전장연’ 이다. 이들은 엘리베이터 100% 설치, 저상버스 100% 보급 등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출퇴근 시간 수많은 인파 속에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얼핏 봐서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 해 줘야 되는 거 아니야? 저 사람들도 오죽하면 저랬을까.’ 같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약자’라는 가면 속에는 과연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중략)
장애인은 배려받아야 하며, 그들은 이동권을 정당하게 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약자라고 해서 봐주라는 법은 없다.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모두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지, 현재의 시위는 오히려 갈등과 혐오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할머니 임종 때문에 울부짖는 청년에게 돌아온 시위 참여자의 대답은, “버스 타고 가세요.” 였다.
오랫동안 이동권 보장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못했기에 그들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만, 자신들의 이동권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이동권을 빼앗고, 자신들의 어려움에는 공감을 요구하면서 타인의 슬픔에는 무관심하게 대응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당혹스러웠다. 수업 시간에 설득하는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강조했던 모든 전략이 적절히 활용된 글이었다. 수치와 통계, 전문가의 견해로 무장해 상대방을 이성적으로만 설득하려 하지 말고, 독자의 정서와 감정을 적절히 자극하며 감성적으로 접근하라는 것, 주장은 반드시 논증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상대방의 반론을 정확히 예측해 이를 적절하게 반박해야만 글의 설득력이 높아진다는 것, 비유법, 설의법, 이중부정과 같은 다양한 표현법을 사용하라는 것. 문제해결 구조를 사용해 원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으라는 것 등등. 이 글은 내가 만든 채점 기준표에서 단 1점도 감점이 되지 않을 만큼의 기술적으로 완벽하고 훌륭한 글이었다. 그래서 고민했다. ‘내가 이 학생의 글에 100점이라는 점수를 부여한다면, 과연 난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혹은 가르치는 것이 가능이나 할까?’
곧이어 박경석 전장연 대표와 당시 여당 대표였던 이준석의 100분 토론이 생각났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토론 내용은 좋았다. 장애인 이동권과 더불어 장애인과 관련된 다양한 복지 문제를 공론화시켰기 때문이다. 혐오로 촉발된 토론이라는 점이 아쉬웠지만, 이렇게라도 비장애인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이준석이 유려한 말솜씨로 휠체어를 탄 전장연 대표를 내려다보며 토론하는 모습은 나에게 여전히 불편함을 안겨 주었다. 토론이라는 수평적인 담화 상황에서조차 공간과 시선의 불평등이 해소되지 못한 것이다. 그 장면이 상징적으로 느껴진 건 우연이었을까. 정상성이 권력으로 작동하며 비정상으로 구획되는 누군가를 내려다보는 모습에서 깨지기 힘든 상하의 위계질서를 엿보았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이 같은 고민을 안고 매달 한 번씩 만나 공부하는 국어 선생님들의 모임에서 해당 글을 같이 읽었다. 선생님들의 생각도 나와 비슷했다. 다들 기술적으로 훌륭한 글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찝찝함이 남는 글이라고도 했다. 집에 와서 학생이 쓴 글에 인용된 근거 자료들을 하나하나씩 점검해 보았다. 그중에서 전장연 시위에 대한 공분을 불러일으킨 ‘버스 타고 가세요’와 같은 발언은 전후 맥락을 생략한 채 악의적으로 편집된 영상을 보고 적은 내용이었다. 평가 기준표에 따라 학생에게 100점이라는 점수를 준 뒤, 소심하게 구글 클래스룸 댓글에 이런 저런 언론 기사를 첨부해 조용히 내 생각을 전했다. 혹시라도 해당 자료를 참고삼아 더 발전된 글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혹시나 이 조언이 강요로 들리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다행히 학생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학생이 다시 제출한 글의 전체적인 논조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학생이 표현한 감사함은 자신의 글을 꼼꼼하게 읽어준 교사에 대한 감사함에 불과했던 것이다.
소수자는 배려받아야 할 존재이지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외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없다는 학생의 목소리를 읽으며 좌절감과 분노를 느꼈다. 그러면서도 소수자의 권리가 정치 쟁점화될 때 교사는 난처한 위치에 서게 된다. 그 자리에서 자연스레 움츠러들고 만다. 내 발언이 학생에게 정치적 메시지로 수용되는 순간, 바람직한 삶과 가치를 위한 논의는 거세되고 그 빈자리엔 공허하고 허무한 논란만이 남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난 경험이 그랬고, 그런 상황을 수도 없이 접했다. 그래서 소수자의 삶을 이야기하는 건 늘 조심스럽다.
2달여가량이 지났을까. 연세대 학생 몇 명이 연세대 청소 노동자의 시위로 자신들의 학습권이 침해당했다며, 청소 노동자를 고발한 사건이 화제가 되었다. 학생들은 손해 배상 금액으로 청소 노동자 월급의 3배가 되는 금액을 청구하며, 자신들의 정신과 진료 확인서까지 첨부했다고 한다. 그에 비해 연세대 청소 노동자들의 요구는 너무나도 소박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맞춰 시급 440원을 올려달라는 것과 퇴근할 때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게 샤워실을 만들어 달라는 것. 그 순간 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른바 명문대로 불리는 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내 과거가 생각났다. 유려한 자기소개서와 유창한 면접 답변으로 자신의 지적 능력과 문제해결 역량을 자랑하던 수많은 학생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한 여당 정치인의 모습이, 내가 가르치는 교실 속 학생들이 겹쳐 흘렀다. 후회일까, 반성일까. 좀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여러 갈래로 교차하는 모습을 잠시나마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글쓰기 수업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교원 평가에 적힌 학생들의 수업 후기도 좋았다. 글을 쓰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알 수 있어 좋았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런데 그런 반응을 보면서도 지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짙게 남았다. 과연 내 수업이 약자를 보듬고, 타자를 수용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했을까? 이 질문을 던질 때마다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지 못했다는 자책과 괴리감이 나를 괴롭히곤 했다.
그래서 무력감을 느꼈다. 차별과 혐오를 극복하자고 호기롭게 외치며 시작한 수업이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고백하건대 내가 지은 수행평가의 이름은 <혐오의 시대에 정직한 불화를 위한 글쓰기>였다. 잘 쓰는 방법과 기술을 알려주는 수업을 넘어, 사람다운 감정, 따뜻한 마음을 갖도록 해 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서로 호흡하며 소통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내 수업은 완벽한 실패에 불과했다.
형식과 기술이 아닌 삶과 가치를 교육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가르치던 나였다.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학생들에게 옳은 소리만 하며 살자고 다짐하던 나였다. 그런데 학교와 교실을 바라보는 냉혹한 시선들이 나를 망설이게 한다. 교사의 발언과 행동을 감시하는 현실이 나를 멈추게 한다. 그런 시선 속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 검열이 심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가끔은 진공과도 같은 교실을 상상해 본다. 논란이라고는 없을 깔끔하게 정돈된 글을 읽으며, 그런 글을 쓰는 수업을 생각해 보곤 한다. 가치관과 주관이라고는 없는, 판단을 중지한 교실 속 나를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없이 무기력해진 나를 그려 본다. 그 안에서 배우는 세상은 무결점에 가까울지 모른다. 그런데 교실 밖 문을 열고 나가 마주하는 세계가 이토록 냉혹한데, 백지와도 같은 세상을 상상하는 교육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객관과 중립이라는 외피를 두른 채 기계적인 전달과 가르침을 반복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은 아니다. 학생들이 언젠가 마주할 교실 밖 세상을 알려주지 않는 교육도 진정한 교육은 아닐 것이다. 교실을 정치적 견해가 난무하는 혼돈의 공간으로 만들자는 주장이 아니다. 교사의 목소리만 일방적으로 울려 퍼지는 경직된 공간을 만들자는 것도 아니다. 각종 규율과 제도로 교사의 존재와 목소리를 옭아매서는 안 된다는 것, 교사와 학생의 목소리가 다양한 파형과 울림을 만들어내며 공존하는 교실을 만들자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갈등과 상처가 스스로 아물 수 있도록 지켜봐달라는 것뿐이다. 이 같은 만남과 기다림이 결국 우리를 환대의 세계로 이끌어 나가리라 굳게 믿는다. 그래서 난 오늘도 교단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