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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적글적샘 Mar 03. 2023

부산시교육청 학습연구년 합격 후기

“샘처럼 젊은 사람은 잘 안될 텐데? 부장 경력도 없지 않아?”


2021년 말, 교감 선생님에게 학습연구년을 준비하겠다고 했을 때 돌아온 대답이었다. 젊은 선생님들은 보직 교사 경력 등의 정량 점수가 부족해서 쉽게 될 수 없을 거라고. 자기가 아는 젊은 선생님은 3번이나 떨어졌고, 학습연구년에서 1점이라도 더 받기 위해 부장을 하고 있다고.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괜한 오기가 생겼다. 연공서열제 조직인 공무원 사회에서 경력에 비례한 보상이 주어지는 게 당연한 일이다 싶으면서도, 괜스레 인정하기 싫었다. 그때 ‘젊은 사람들이 힘든 일 해야지.’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던 몇몇 선배 교사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쳐 갔다. ‘힘든 일은 우리가 하는데, 왜 선배 교사들은 내 월급의 두 배를 받는 걸까?’와 같은 미운 의문들이 솟구쳤다. 경쟁과 공정, 합리적인 보상을 추구하는 MZ 세대의 영혼이 나에게도 있었나 보다.


2012년에 발령을 받았지만, 대학원 파견을 2년 다녀온 터라 당시 실교육경력은 겨우 8년. 지원 자격은 갖추었지만, 학습연구년에 지원하는 선생님 대부분이 15년 이상의 교육경력을 가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사실상 매우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부족한 정량 점수를 채우려면 계획서에서 최대한 만회해야 했기에, 열심히 썼다. 그런데 서류 심사에서 떨어졌다. 억울한 마음에 교육청에 정보 공개 청구를 했다. 생각보다 계획서 점수가 처참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계획서를 다시 읽어 보니, 엉망이었다. 나름 석사, 박사 과정을 밟으며 보고서 쓰기 실력이 있다고 자만했다. 그 자만심이 문장에서부터 느껴졌다. ‘나 이렇게 대단해, 그러니까 뽑아 줘.’와 같은 치기 어린 자랑이 가득했다. 그래, ‘내년에는 정말 겸손하게, 성실하게 써보자.’라고 다짐한 뒤 1년이라는 시간을 보냈고, 드디어 2022년 11월이 되었다.


사실 주변 선생님들은 내가 왜 그렇게 학습연구년을 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훗날 교직이 정말 힘들고 지칠 때 해도 되지 않냐고 말씀들 하셨다.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나에겐 1년이라는 시간이 절박하게 필요했다. 박사 과정을 빨리 졸업하고 싶었다. 교직에서의 경험을 밑거름으로 더 넓은 세계로, 더 깊게 나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도저히 일을 하면서 박사 논문을 쓸 자신이 없었다. 모든 여유 시간을 박사 논문에 쏟으며 몸과 정신이 피폐해진 상태로 1년을 보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학습연구년이 절박했다. 적절한 단계에서 인생을 마무리하고,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그 1년이 반드시 필요했다.



작년의 실패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계획서가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지원 경쟁률이 높은 영역을 선택한 이유도 있겠다 싶었다. 작년에는 ‘학습 지도’ 영역에 지원했는데, 해당 영역은 교육청에 출근하지 않아도 돼 훨씬 더 경쟁률이 높다. 대신 ‘교육 정책 연구’ 영역의 경우는 교육청에 주 1회~3회 출근해야 했기에 ‘학습 지도’보다 경쟁률이 낮으리라 생각했다. 출근해도 그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남은 건 ‘교육 정책 연구’의 세부 지원 영역. 총 3가지 영역 중에서 나는 ‘부산미래교육’을 선택했다.


‘부산미래교육’에도 세부적인 연구 주제가 있었다. ‘학습 지도, 인성 교육, SW•AI’ 영역의 경우 연구자가 세부 주제를 만들어야 했지만, ‘교육정책 연구’는 교육청이 선정한 주제 중 한 가지만을 선택하면 되는 편리함이 있었다. 내가 고른 주제는 바로 ‘학생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 운영을 통한 효과적인 학력 신장 방안’. 새 교육감의 제1호 교육 공약인 학력 향상에 초점이 맞춰진 연구 주제였다. 일부 배경지식은 있었으나, 연구 계획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자료가 필요했다. 그래서 부산교육정책 연구소 홈페이지를 뒤적거렸다. 실제 2022년에 교육정책 연구소의 객원 연구원으로 참여해 보고서를 한 편 발간한 상태였기에, 교육정책 연구소라는 이름이 익숙했다. 생각 외로 다양한 연구진들과 협업하여 부산미래교육과 관련된 상당한 분야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부산미래교육과 관련된 보고서를 훑어 읽으며 ‘학생 맞춤형 교육’과 관련된 내용을 발췌했다. 또한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인지 진단 평가, 학습 분석학 등 연구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 분야의 논문의 핵심 내용을 요약했다. 그리고 학교 현장에서의 경험을 복기했다. 그리고 이론과 경험의 연결 지점을 한 땀씩 꿰매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체화해 나갔다. 계획서는 총 10쪽 이내로 작성해야 했기에 군더더기 없는 핵심 내용을 위주로 서술했다. (합격 후에 한 장학사님에게 들으니 계획서 심사가 정말 엄격하게 이루어진다고 한다. 휴대폰을 제출하고 3~4시간 동안 정말 많은 보고서를 읽고 급간을 고려해 채점한다고. 시중에 경력 높은 사람을 선발하는 게 아니냐라는 말도 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합격 발표날인 12월 16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서 등록대장을 들락거렸다. 공문을 먼저 접수한 교육 실무원 선생님께서 환하게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드셨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면접은 21일. 남은 시간은 5일 남짓이었기에 바로 면접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런데 다른 ‘교육 정책 연구’ 영역은 1배수만 뽑힌 반면, 부산미래교육만 2배수였다. 결국 한 명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 듣기로 나와 경쟁하게 될 선생님은 나보다 정량 점수가 훨씬 높았다. 면접에서 무조건 압도적으로 잘해야 하는 상황. 면접 준비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다.



면접은 위 그림에 나와 있는 대로 크게 3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졌다. 각각의 영역에서 1문제씩 출제가 되기에, 각 영역에서 나올 수 있는 최대한의 예상 질문들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주변 선생님들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기존에 학습연구년을 하신 동교 선생님들과 알고 지내던 교감 선생님 등등. 조언 뒤에 덧붙은 따듯한 한마디가 어찌나 힘이 되던지. 그 말들 덕분에 조금씩 힘을 낼 수 있었다. 내가 준비했던 예상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부산교육의 방향 이해


-효과적인 블렌디드 수업을 위한 요건을 물리 환경적 측면과 교수학습자적 측면에서 설명하시오.

-서논술형 평가의 안착을 위해 필요한 개인적, 제도적 요건을 3가지씩 말해 보시오.

-부산미래교육의 핵심 가치와 방향성에 대해 설명하시오.

-코로나19 기간 동안 생긴 학습 격차, 학력 저하의 발생 원인과 해결 방안을 제시하시오.

-부산 미래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요건을 교사, 학교, 교육청, 지역사회 차원에서 설명하시오.

-1인 1학습용 스마트 기기의 활용 방안을 설명하시오.

-현장과 연계되는 학력 개발원의 효율적인 운영 방안을 4가지 설명하시오.

기타 등등등


학습연구년 특별연수 수행 능력 및 의지


-연구 결과를 교육 현장에 효율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방안을 4가지 이상 제시하시오.

-연구년제 동안의 계획을 설명하시오.

-연구 주제를 구체화할 수 있는 계획과 기대 성과를 설명하시오.

-연구 주제 추진에 있어 예상되는 어려움과 극복 방안을 설명하시오.

-연구 주제를 교육청 차원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설명하시오.


교직 적성, 교직관, 소명의식, 태도


-학교나 학생들에게 봉사하거나 나눔을 실천했던 경험을 얘기하시오.

-동아리 지도 우수 사례를 설명하시오.

-학교의 특색 사업 운영 경험을 설명하시오.

-무기력한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할 수 있는지 방안을 설명하시오.

-학생의 학교생활 적응력 제고 경험을 설명하시오. (탈학교, 비행, 학교 폭력, 자살 위험)

-학교 현장에서 동료 교사와의 협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사례를 설명하시오.

-학생의 진로 지도 사례를 설명하시오.

-선생님들과의 갈등 사례와 극복 방안을 설명해 보시오. (대화와 소통)


한 문제, 한 문제씩 예상 답변을 기록해 갔다. 어차피 짧은 시간 안에 구상해야 했기에, 키워드 중심으로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고3 학생에게 면접 지도를 하며 사용했던 전략들을 주로 활용했다. 두괄식 답변, 표지어 사용, 차원 나누기 등등. 답변을 어느 정도 정리한 뒤에는, 면접 질문만 정리된 파일을 출력해 하나하나씩 잘라 세 개(세 영역을 의미하는)의 통에 각각 넣었다. 그리고 그 통에서 질문을 뽑아 3가지 질문에 대해 5분 동안 구상하고, 5분 동안 말하는 연습을 했다. 구상과 답변이 쉽지 않았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말이 엉키고 중언부언하기 일쑤였다. 가르치며 지도하기만 했지, 실제 해보지 않으니 나도 면접 낙제생이었다. 그때 알지 못했던 학생들의 불안감과 초조함을 그제야 느꼈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면접 준비를 하며 힘들어했구나. 학생들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교차하며, 조급함과 초조함이 커졌다. 그 마음을 억누르고 다스리며 매일매일 2~3시간씩 연습했다. 조금씩 나아지는 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드디어 면접 당일. 추첨으로 면접 순서를 정한다고 들었기에,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최소 2~3시간을 기다릴 수도 있겠다 싶어 편의점에 들러 초코바를 샀다. 1등으로 면접장에 도착. 자리를 잡고 앉아 면접 준비 자료를 꺼내 다시 한번 빠르게 예상 문제를 훑으며 머릿속으로 연습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나처럼 A4 뭉치를 들고 이리저리 써 가며 면접 준비를 하고 계셨다. 생각 외로 합격하기가 쉽지 않겠구나. 다들 이렇게 열심히 하시다니. 대기실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나는 기죽지 않으려 얕은 자신감을 내보이려 애썼다. 그런데 나와 경쟁할 선생님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뭔가 단단해 보였다. 저런 게 경력에서 나오는 여유일까? 꼬리를 무는 생각을 자르고, 다시 면접 준비에 몰두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구상실에 들어갔다. 앞에 계신 장학사님이 타임 워치를 누르자마자 면접지를 뒤집었다. 그런데 매우 당황했다. 내가 생각한 예상 문제는 단 한 문제였고, 생각보다 문제의 길이가 너무 길어 문제를 읽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렸다. 다음은 면접이 끝나고 난 뒤에 내가 복기한 기출문제. 핵심적으로 묻고 싶은 내용에 굵음과 밑줄 표시가 되어 있어 그 내용만 기억난다.


인성교육의 문제점 3가지와 실천 방안 3가지

연구 학교의 결과가 일반화되지 않는 이유 3가지와 내 연구 주제의 기대효과 3가지

담임, 업무 기피 현상의 원인 3가지와 해결 방안 3가지


사실상 5분이라는 시간 동안에 18가지의 답변을 구상해 5분 안에 전부 말해야만 했다. 세상에 이게 가능이나 한 걸까? 그래도 모든 답변을 대충이나마 구상한 뒤 면접장에 들어가 5명이나 되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속사포 쏟아내듯이 답을 했다. 내가 답을 할 때마다 채점 기준표에 내가 답변한 내용이 있는지를 일일이 찾아 표시하는 게 눈에 보였다. 확실히 면접으로 변별이 되겠구나 싶었다.


면접이 끝나고 불안한 마음에 며칠이나 악몽을 꿨다. 이번에는 꼭 돼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알게 모르게 큰 부담이 되었나 싶었다. 최종 합격 발표는 예정된 날짜보다 이틀 빨리 나왔다. 교육 실무원 선생님, 친한 부장 선생님과 함께 결과를 확인했다. 결과는 합격. 너무 기쁜 마음에 난생처음으로 교무실에서 큰 소리로 웃으며, 두 분을 따뜻하게 안았다. 본인의 일처럼 함께 축하해 주던 두 분의 선생님이 너무나도 고마운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학습연구년 특별연수 대상자가 되어 1년이라는 시간을 얻게 되었다. 정해진 시간의 구획과 속도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쉼, 여유, 휴식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성장을 위한 시간표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 작업에 무척이나 공을 들였다. 그 결과 만족할 만한 계획표 또한 얻게 되었다. 학습연구년으로 얻게 된 이 시간을 의미 있게 흘려보내는 과정 또한 기록할 예정이다. 많은 선생님이 학습연구년으로 성장과 휴식의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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