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 뭔데?’ ‘곤드레 나물밥’ ‘아, 맛없겠다... 짱깨나 먹으러 갈래?’
며칠 전 3학년 1반 논술 수업 시간. 비문학을 가르치는 시간이지만, 시험 범위까지 진도를 다 나갔기에 자습을 하라고 말했다. 휴대폰을 걷지 않는 터라 많은 학생이 휴대폰을 꺼내 들어 각자의 세계에 빠져든다. 남학생 몇 명이 게임을 하다가, 점심 급식 메뉴를 불평하기 시작한다.
‘오늘 점심 뭔데?’
‘곤드레 나물밥’
‘아, 맛없겠다... 짱깨나 먹으러 갈래?’
밀린 행정 업무를 하다가 유독 그 짱깨라는 단어가 귀에 거칠게 밀려왔다. 부산 남자 특유의 억센 억양과 센 발음이 그 단어만을 도드라지게 뱉어냈는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그 남학생들 근처에 있던 한 학생이 조용한 목소리로 옆에 있던 학생에게 넌지시 묻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 엄마가 중국인인데, 저 짱깨라는 단어가 중국인을 비하하는 단어 맞제?’
‘음.. 그냥 중국집을 다 짱깨라 하니까... 쟤들도 별생각 없이, 뜻도 모르고 사용하는 거다. 신경 쓰지 마라’
‘맞나.. 그냥 그렇게 이해하면 되나...’
그 학생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 남학생들은 계속해서 ‘짱깨’를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개입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그런 말을 써서는 안 된다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너희들의 말에 누군가의 마음이 다친다고’ 그런데 그러질 못했다. 아무렇지 않은 교실의 분위기를, 학생과의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기 싫었기 때문이다. 1,2분이 지났을까. 중국인 어머니를 둔 학생이 책상 위에 휴대폰을 조용히 내려놓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그 아이들을 향해 이야기했다.
‘사실 우리 엄마가 중국인인데, 계속 짱깨 짱깨 하는 게 좀 듣기 거슬려서... 그 말 좀 안 하면 안 되겠나?’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이 약간 당황한 듯했다. 그런 뜻으로 사용한 게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곧이어 쓰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아주 작게 퍼졌다. 그 아이가 다시 옆 친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앞으로도 저런 말을 많이 듣게 될 거 같은데,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모르겠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개입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너의 행동이 옳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ㅇㅇ아, 네 마음이 불편하면,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된다. 지금처럼.’
김지혜의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는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 언어가 어떻게 타자를 배제하고, 소수자를 혐오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무엇보다 무서운 건 언어를 둘러싼 차별과 배제, 혐오의 냄새가 탈취되어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는 현실이다. 그 누구도 아무를 밀어내지 않지만, 누군가에게 끝없이 밀려나는 존재들. 그러나 그 존재들은 밀려나는 마음을 내뱉기를 망설인다. 예민한 사람으로 보이기 싫기 때문이다. 날을 세우지 않는 둥글둥글한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다수에 속한 척 자신의 존재를 포장한다.
그러나 상처 받지 않은 척, 괜찮은 척해서 좋아지는 관계란 없다. 무엇보다 불편한 마음을 짓누르는 건 나에게도 해로운 일이다. 부정적인 감정도 타인을 배려하며 뱉을 수 있다. 날카로운 언어에 베이지 않게 조심스레, 진솔하게 진심을 건넨다면 상대방과의 관계가 틀어질 리 없다. 만약 틀어진다 해도 상심할 필요는 없다. 내 존재의 마음 다침에 무심한 사람에게 매달릴 필요는 없으니. 그러니 굳게 결심하자. 이 순간, 여기의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자고. 그리고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자고,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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