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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적글적샘 May 29. 2023

잠긴 도어락 앞에서 비혼의 공포를 느끼다

  도어락이 잠겼다. 새벽 1시, 문밖에서. 매번 비밀번호를 누르기 귀찮던 찰나, 친구가 카드 키를 등록하라고 알려 주었다. 휴대폰에 부착할 수 있는 카드 키를 구입해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 초봄 추위가 가시지 않은 어느 날, 침대에 누워 있다 문득 서랍 속 카드 키가 떠올랐다. 잠옷 바람으로 카드 키를 등록하고 호기롭게 문을 닫는다. 그런데 카드 키가 작동하지 않는다. 원래 사용하던 비밀번호도 무용지물이다. 당황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른다.



  남은 휴대폰 배터리는 겨우 18%. 급히 1층으로 내려가 주변을 둘러본다. 담을 타고 3층으로 올라가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잠깐 119나 경찰서에 신고해 볼까도 고민한다. 그 순간 개인의 편의를 위해 119를 이용하는 사람을 비난하던 내가 떠오른다. 휴대폰 조명을 최대한 어둡게 하고 인터넷에 ‘부산 도어락 해제’를 검색한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업체가 수두룩하게 뜬다. 나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걸까. 궁금증을 길바닥에 버려둔 채 검색 상단에 있는 업체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한다. 1시간 정도 걸리니 기다리란다. 비용을 물으니 18만 원이라는 게 아닌가. 순간 멈칫했지만, 문밖에서 밤을 지새울 자신이 없다. 기다린다고 해서 무슨 대책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차가운 빌라 계단에 앉는다. 자동으로 점멸하는 등은 아주 잠깐 내 존재를 인식할 뿐이다. 어둠 속에서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본다. 며칠 전 엄마가 보내준 뉴스 기사 속 30대 남성이 생각난다. 혼자 사는 30대 남성이 화장실에 갇혀 있다 음성 인식 기기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는 기사 내용을 다시 한번 읽어 본다. 스크롤을 아래로 내리니 ‘이래서 결혼을 해야 해.’라는 댓글이 달려 있다. 30대 비혼 남성의 삶은 누군가의 연민과 비아냥, 그 가운데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어쩌면 혼자 사는 삶이란 닫힌 문 근처에서 하염없이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려야만 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난 과연 이 막연한 기다림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끊임없는 질문과 두려움이 적막한 어둠을 채우기 시작한다.



  닫힌 건 우리 집 문만이 아니다. 문밖에도 닫힌 문들이 가득하다. 내 대답을 원하는 막막한 질문과 걱정이 잠긴 도어락 마냥 나와 마주한다. 결혼은 하셨냐는 질문에 내 삶과 선택을 해명해야 하는 순간들, 저출생을 걱정하는 각종 기사들, 늙고 병들어 돌봐주는 사람 없이 살면 외로울지 모른다는 친구들의 걱정, 너 닮은 자식 하나 키워야 말년에 쓸쓸하지 않다는 엄마의 말, 육아, 교육 이야기로 가득한 대화의 자리, 자식을 키워봐야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는 주변 선생님들의 조언까지. 닫힌 도어락을 열 수 있는 나만의 비밀번호는 여전히 작동 불가능이다.



  얇은 잠옷 사이로 한기가 스며든다. 추위에 몸을 웅크린다. 정말 내 선택은 족쇄이자, 감옥일까. 그런데 눈을 돌려 봐도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드물다. 엄마는 누나를 낳고 이혼했지만, 다시 아빠를 만나 나를 낳았다. 하루하루가 전쟁터였다. 바람을 밥 먹듯 피며 술을 먹고 엄마를 때리는 아빠. 나 때문에 이혼하지 않는 거라며 자신의 선택을 강요하는 엄마 사이에서 난 해방을 꿈꿨다. 그 시절 공중파 드라마엔 늘 불륜과 폭력으로 얼룩진 막장 드라마가 시청률 50%를 넘기곤 했다. 나에겐 관계의 지옥에서 허우적댈 삶보다 닫힌 화장실 안에서 아사할 삶이 해방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매 순간 내 선택을 정당화하려고 애썼다. 비혼의 삶을 기록한 책을 찾아 읽고, 아이들에게 소개했다. 왜 ‘미혼’이 아니라 ‘비혼’이라는 단어를 써야 하는지, 가족의 행복과 내 행복이 등호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곤 했다. 어쩌면 나와 같은 삶을 살아갈 아이들을 위해 든든한 방패막이를 선물해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혼자 잘 살아가는 법, 무언의 압박에 떨지 않는 법, 무례한 질문에 대처하는 법, 닫힌 도어락 앞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법을 말이다.



  닫힌 문을 여는 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도착한 열쇠 수리공이 내 신분증을 확인한 뒤 얇지만 강한 쇠막대기를 문틈 사이로 밀어 넣는다. 그 틈 사이로 기다란 기구를 능수능란하게 집어넣어 도어락을 해제한다. 열쇠 수리공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이 태연한 표정으로 나에게 18만 원을 받아 갔다.



  집 안엔 온기가 가득하다. 긴장과 두려움으로 얼어 있던 내 몸도 천천히 녹기 시작한다.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는 안도감 뒤에 허무함과 걱정이 잇따른다. 난 저 문밖에 즐비하게 늘어선 도어락을 잘 열 수 있을까. 나를 향해 쏟아지는 질문에 ‘질문에도 순서가 있다.’며 날카로운 비밀번호를 누르면 될까. 고슴도치처럼 가시 돋친 마음으로 누군가를 대하면 내 마음은 편해질까.



  비밀번호를 바꾼 지도 한 달이 지났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아주 약간의 빈틈이 눈에 띈다. 저 미미한 틈새로 문이 열렸구나. 누군가의 마음에도 아주 얇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미세한 틈을 낼 수 있을까. 그러면 언젠가 서로의 삶 속으로 들어서게 될까. 질문과 해명이 아닌 이해와 격려로 서로를 마주하게 될까. 그 순간을 위해서라면 어두운 적막 속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수 있을 것도 같다. 새로운 비밀번호로 닫힌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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