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아니고 워킹 간병인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법
누군가 그랬다. 삶은 사랑하는 이들의 손을 잡고 분투하는 것이라고.
영케어러( young carer ) 만성 질환 간병이나 장애를 가지고 있는 가족을 돌보는 가족 돌봄 청년 아이 혹은 청년을 일컫는다.
나는 한 자녀 가족의 영케어러다.
아빠는 내 나이 만으로 열여덟인 해에 갑작스러운 패혈증으로 세상과 이별을 하셨다.
그 이후 엄마인 혁이씨와 나는 단 둘이 남게 되었다.
대학 졸업 이후, 바로 가게 된 첫 직장에서 계약직을 무사히 끝냈다.
정규직 제안을 거절하고 방송국에서 기존 가지고 있던 출판에 대한 마음을 간직한 채 도전하고 있던 해에 엄마 혁이씨의 폐암 발견. 세상이 무너지는 해였다.
그래도 나는 가녀장이었다. 몇 차례 수술장을 오가고, 딱딱한 간병인 베개가 익숙하지 않을지언정 나는 일도 해나가야 했다.
나는 그렇게 용케 죽지않고 살아서 간병 7년 차 영케어러이자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끔은 툭하면 부러질 것 같으면서도 계속 본인의 몸을 쓰며 쓸 일을 다 써 내려가는 연필심 같다.
내 남편은 코다다.
코다 (coda)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뜻함. children of deaf adult의 준말
우리는 대학생 때 만나, 8년의 연애 끝에 얼마 전 결혼 3년 차가 되었다.
그리고 결혼 3년 차에 내가 할머니라 부르는 우리 엄마 혁이씨와 셋이 함께 살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질병 앞에 우리는 함께하게 되었다.
나는 효녀도 아니고 착한 딸도 아니다.
우리 엄마 혁이씨의 꿈은 그저 당분간 지낼 동안 같이 잘 지내고 얼른 나아서 본인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녀는 집 안에서 햇살 찐하게 드는 시간 동안 햇살에 굳어진 몸을 다리며, 자신의 두 다리를 지탱해 주는 보행기를 밀고 열심히 걸어보는 것으로 집으로 돌아갈 날만을 모색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최씨는 혁이씨가 홀로 있는 것이 마음에 내킨다. 그는 피할 수 없은 현실 앞에 온전한 합가를 꿈꾼다.
영케어러,가녀장, 농인, 코다, 암환자 보호자.
우리의 소속을 이야기할 수 있는 명칭들. 이것들로 나를 다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존재와 소속에 큰 키워드이다. 그리고 이 명칭들에 속한 이상 나는 단수가 아니다.세상에 어딘가에 나와 다르지만 비슷한 일상들을 살아내는, 복수로 존재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sns에서 해시태그로 걸기에는 왠지 조금 슬픈 것 같은 이야기들,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맞닥뜨리게 되었고, 부딪히며 끌어안고 살아가는 이야기들.
세상에 있는 나의 복수들, 내 친구들을 위해 나의 소소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자 한다.
내가 인터넷에서 처음 영케어러라는 단어를 알게 되고
지구상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질감의 고민과 삶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존재 자체에 위로가 된 것처럼.
코다라는 단어를 알게 되고, 남편에게 알려주며 코다 관련 영화를 같이 보면서 소중한 마음이 들었던 것처럼.
나의 일상을 담은 글자의 조각들이 누군가에게도 읽혀서, 그가 조금은 덜 외로운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이사람도 이렇게 존재하는구나.” 하며.
그리고 ‘그렇게 존재하는’ 나도 글을 쓰며 지금의 시기를 잘 버텨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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