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애하는 영케어러 선배님

married coda (내 남편은 코다)

by 구둘기


손으로 노래를 그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손등과 손바닥으로, 콧잔등과 입술과 볼과 눈썹으로 노래를 옮긴다.
그게 바로 수어통역사들이 해내는 일이다.
_아무튼 노래, 이슬아.


최씨(우리집 아저씨라 부르는 내 남편)은 어쩌면 정말 영케어러였다. 태어났을 때부터 부모님은 농인이셨고, 그 사이에서 들리는 언어와 보이는 언어를 함께 연습하며 컸다.

다행인 것은 그분들은 건실하게 일을 하시는 분들이었다.


최씨는 다른 또래 아이들과 똑같이 과자를 좋아하며, 멍멍이와 함께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철부지 남자애였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최씨 이후 뒤 늦게 태어난 여동생이 ‘오빠 엄마가 뭐라고 하는거야?. ‘아빠가 뭐라고 하는거야?’라며 엄마 아빠의 손 언어를 보고 물을 때 그 손을 유심히 살피며 전하는 언어통역사의 역할을 해왔다는 것일테다.


또, 온전히 수어만 구현하시는 부모님과 다른 어른들이 이야기할 때, 관공서에서 처리할 일들이 있을 때에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통역사로서 부모님의 손을 잡고 이 곳 저곳에 갔다는 것이겠다.

그래서인지 최씨 여동생은 최씨가 날 때부터 수어를 할 줄 알았다고 생각했고, 초등학생부터 은행에서 공과금을 내고 돌아오는 것은 그에게 일상적인 일이었다.


스무살 성인이 되어 커버린 최씨는 본인의 일자리를 찾는 것과 동시에 부모님의 일터 공장 사장님과 논의할 문제를

, 부모님의 자그마한 부동산 문제들에도 조율하는 사람이 되었다.

스무살 초반 언저리부터 연애하기 시작한 우리,

나는 최씨와 함께 있을 때, 최씨는 모르는 어른들과 부모님에 관해 ‘아-그건 아버지가요.’ ‘ 아 그건 어머니께서요.’라고 통화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봐왔다.


최씨는 그렇게 영케어러 선배로서 커나간 것이다.

부모님에게 의지하면서도 의지할 수 없는 시간들 속에서 스스로를 단단히 하면서 커나간 것이다.

어렷을 적부터 본인이 찾아보고, 해결하고 하다보니 다 커버린 최씨에게 생긴 별명은 최위키백과.

세월이란 시간은 그에게 모진 풍파도 선사했지만 그 풍파 속에서 스스로 설 수 있는 굳건한 다리를 주었다.

얇고 때로는 깊고 넓은 지식들로 안전하게 자신을 보호하는 법과

모르는 이들과도 잘 소통하는 법, 자기효능감을 키워줬으리라.


나의 멋진 영케어러 선배님은, 오늘도 부모님을 부양하기 위해 아침 7시마다 탑차를 타고 습하고 축축한 아침 공기를 후- 하고 크게 들이마신채 일터로 떠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이제는 사장으로 아들을 부르는, 그의 부모님의 일상도 함께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