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꽃은 피고, 나무는 물들기에
별안간 가을이 찾아왔다.
엊그제만 해도 반팔에 반바지를 입지 않으면 땀이 솟아났건만.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서는 내 솟아오른 광대에 햇빛이 남긴 그림자들이 가득할까 봐 필사적으로 모자를 쓰고 집 밖으로 나갔었는데, 지난밤에 울던 매미는 온 데 간데 사라지고, 가을비와 함께 여름은 떠났다.
아침을 먹다가 느껴진 가을바람의 스침에 혁이씨는 춥다고 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겠는가. 얼른 창문을 닫아드려야지.
창문 닫는 시중을 들고, 다시 밥 한 숟갈을 뜨는데, 혁이씨가 말했다.
“봄에 매화꽃 폈을 때, 그때 계절이 딱 멈춘 거 같다”
봄에 매화꽃 폈을 때? 잠시 멈칫했다가 나는 “응”하고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가슴 한편에 밥 때문인지 아련함 때문인지 먹먹해졌다.
이럴 땐 그냥 “된장찌개가 짜다 ~ 그치?” 하는 수밖에.
슬퍼질 때마다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말하는 실력이 없어지는 나다.
그러고 보면 올해 나의 계절도 봄에 멈춰버린 것 같았다.
매화꽃 폈던 봄.
나도 그 봄의 정원을 기억한다. 매화꽃 핀 병원의 정원.
병원 외래 진료 날, 병원 한편에 쭉 심어져 있던 하얗고, 분홍빛을 뗬던 매화꽃들.
거동이 불편해서 휠체어를 탄 혁이씨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엄마 나 여기 병원비 수납하고 오는데, 매화꽃 있다. 보러 가자” “아유 됐어요~”
시큰둥한 혁이씨에게 카톡으로 매화꽃 사진 전송으로 유혹.
“아이 예쁘네~ 어디 있는데?”
그렇게 병원 산책로 한켠에 심긴 매화꽃을 필사적으로 찍던 혁이씨를 기억한다.
그리고 그런 혁이씨를 나도 필사적으로 찍어댔다.
그렇게 서라도 우리는 봄의 한 자락을 붙잡고 싶었다.
그곳에는 우리뿐 아니라, 어쩌다 병원신세를 지게 되어 이렇게라도 꽃구경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어디가 아파서 여기에 이렇게 온 건지.
간신히 병원에만 오가는, 보행이 자유롭지 못한 혁이씨를 보며 병원에 작은 정원이라도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봄에는 걸어서 매화꽃 보고 싶어”하는 혁이씨의 눈빛은 사무치게 아련하다.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혁이씨는 병원에 다녀온 날, 집에 돌아와 아까 찍은 매화꽃을 사진을 한참을 들여다본다.
아프고 난 뒤 혁이씨에게 하나의 취미가 있다면, 병원 근처에서 찍은 예쁜 나무나 꽃들의 사진을 열심히 편집해서
카카오톡 프로필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꼭 혁이씨의 친구들에게서 전화가 온다.
“엉 어디 좋은데 놀러 갔다 왔나 봐 -?”
“응 ~병원”
잠시 침묵과 함께 “그래~ 요즘 좀 어때~”라는 질문이 항상 이어지곤 한다.
그 뒤로도 그녀는 주변에서 아름다운 것을 볼 때마다 떨리는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정성스레 편집을 하고, 프로필 사진을 바꿨다. 혁이씨에게 프로필은 하나의 갤러리다. 그리고 그 갤러리에는 아무리 뒷 배경의 사진이 바뀌더라도 우산을 들고 빗 속에서 뚜벅뚜벅 걷는 오리 캐릭터 한 마리도 있다.
생기 잃은 몸과 마음에,
혁이씨의 프로필 갤러리에 더 아름다운 꽃들이 피기를.
그곳에 있던 모두에게 무사히 내년 봄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마스다 미리-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