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
... 저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라도 다시 만나는 걸 해가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아요. 그들이 잘되길 바라고 어쩌면 서로 만날 수 있게 돕기도 한다는 걸요. 그러니까 제발 조시와 릭을 생각해 주세요. 이 아이들은 아직 어려요. 조시가 세상을 뜬다면 둘은 영영 헤어지게 돼요. 해가 거지 아저씨와 개에게 주었던 것 같은 특별한 자양분을 조시에게 주기만 하면 조시와 릭은 친절한 그림에서처럼 같이 어른이 될 수 있어요. 둘의 사랑이 단단하고 영원하다는 걸 제가 보증할 수 있어요. 커피잔 아주머니와 레인코트 아저씨처럼요.
카팔디 씨는 조시 안에 제가 계속 이어 갈 수 없는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에게 계속 찾고 찾아봤지만 그런 것은 없더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저는 카팔디 씨가 잘못된 곳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클라라’라는 한 여성형 AF (Artificial friend=인공친구, 즉 로봇)는 판매점에서 자신을 구입해 줄 주인을 기다린다. 소녀 ‘조시’가 클라라를 구입한다. 조시의 집에 살며 그녀의 친구가 된 클라라. 조시, 조시의 소꿉친구인 릭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조시는 몸이 안 좋아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클라라는 태양에게 조시를 낫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조시의 건강과, 조시와 릭의 행복을 위해서. 그 기도는 이루어질까?
이 소설에서 조시는 ‘향상된 아이’이며, 릭은 아니다. ‘향상’ = ‘특정한 수술을 통한 사람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의 증가’이라는 것을 우리는 책 후반부가 되면 알게 된다. 또한 그 수술이 그다지 안정적인 방법이 아닌 것 또한 알게 된다. 조시에게는 지금은 죽고 없는 언니가 있었다. 그녀는 ‘향상’을 위한 수술을 받다가 죽게 된다. 그 후 조시의 어머니는 카팔디라는 사람을 찾아간다. 카팔디는 인간의 내적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즉 ‘A와 B의 사고방식, 외모, 행동 패턴 등이 같다면 A와 B는 같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자세하게는 나오지 않지만, 과학과 기술이 현재보다 조금 더 발전하면서 특정 개인을 물리적인 성질로 치환할 수 있게 되면서, 그러한 과학적 결과들을 바탕으로 카팔디가 위와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AF에게 (혹은 다른 종류의 로봇에게) 사람의 사고방식, 외모, 행동 패턴을 학습시켜 사람을 ‘만들려는’ 혹은 ‘이어가게 하려는’ 시도를 한다. 조시의 언니의 경우에는 죽은 다음에 시도했고, 실패했다. 조시가 ‘향상’ 수술을 받고 몸이 약해지자, 조시의 어머니는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조시의 언니처럼 사후에 시도하게 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서, 조시의 개인적 특성을 미리 클라라에게 학습시켜 놓는다. 만약 조시가 잘 못 된다면, 클라라에게 조시를 이어가게 하기 위해서. 다행히 그 방법은 사용하지 않게 되고 조시는 무사히 어른이 되고 대학에 가게 된다. 클라라는 집에 남고, 시간이 지난 후에는 야적장에 놓여 (버려진 것으로 생각됨) 옛날 기억들을 회상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개인의 고유한 성질, 클라라가 따라 할 수 없는 조시만의 특수한 무언가. 그런 성질이 있을까? 있다면 어디에? 카팔디는 그런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만약 클라라가 조이와 같은 외모와 행동을 보인다면 그것은 조시를 흉내 낸 무언가가 아니라 조시 그 자체라고. 인간이 아닌 클라라가 화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클라라가 인간과 같은 마음을 가진 것을 알 수 있다. 태양에게 조이를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그 기도를 위해 자신을 훼손하기까지 하는 클라라, 그런 클라라를 보면서 우리는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무언가가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클라라는 마지막 장면에서 매니저에게 말한다. 카팔디가 잘못된 곳을 찾고 있었다고. 조시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다고 말한다. 클라라는 인간의 내면의 고유성, 의식, 정신 혹은 혼이라고도 하는 그 무언가를 ‘관계’ 속에 있다고 말한다.
외모, 행동과 같은 물리적 성질들로 우리는 개인을 구분한다. 하지만 그 외 무언가, 내면의 무언가가 있을까. 당연하게 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적 의식. 타인과 내가 구분되는 가장 결정적인 것, 같은 물건을 보고 같은 상황에 처해도 다르게 느끼고 행동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면서 그 고유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고부터 인간의 고유성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많았다. 종교나 신화, 서사시, 시, 소설 등의 형태로. 고유성이 무엇인지 직접적으로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직접적이지 않은 이야기의 형태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다른 사람 내부의 무언가를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신의 고유성은 인식할 수 있다. 자신만이 인식하고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는 없다. 특정한 예술의 형태로만 그것을 간접적으로, 매우 작은 편린이나마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림이든, 음악이든, 책이든, 그 외에 다양한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만든, 그리고 오랜만에 책을 펴서 한 번에 끝까지 읽는 즐거움을 느끼게 만든, 그런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