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
이 책은 “코로나로 인해 공간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작가의 대답이다. 작가는 한 문장보다는 한 권의 책으로 대답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아파트, 학교, 회사, 그리고 도시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희망적인” 예측과 소망. 여기서 나는 ‘희망적인’이라는 단어를 ‘시대의 흐름을 잘 따라가고, 제도가 효율적으로 변화하고, 그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때’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왜 이런 단어를 사용했는지, 그렇다면 “절망적인” 예측은 무엇인지에 대해 뒤에서 말하겠다. 먼저 작가가 예측한 미래들 중 아파트, 학교, 회사, 도시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려고 한다. .
여러 가지 상황들을 종합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지어질 아파트의 디자인 원칙을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1가구 1발코니’다. 폭이 2.5미터가 넘는 발코니를 만들어서 누구나 집에서 사적인 외부공간을 가질 수 있게 한다.
둘째, ‘소셜 믹스 공원’이다. 아파트 단지의 1층 지면을 적극 개방하여 아파트 주민뿐 아니라 누구나 공원, 상업 시설, 문화 시설을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셋째, ‘기둥식 구조’다. 기존의 벽식 구조가 아닌, 기둥 구조로 만들어서 바뀌는 시대적 상황에도 재건축 없이 변형해 사용될 수 있게 한다.
넷째, ‘복합 구성’이다. 도시 속에 주거, 업무, 학교 등을 나누어서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 내에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작은 위성 학교, 공유 오피스 등을 작게 나누어서 주거와 섞어서 배치한다면 교통량도 줄이고 전염병 전파도 줄일 수 있는 공간 구조가 될 것이다.
다섯째, 친환경적인 목구조를 사용하는 것이다. 환경 문제와 지구 온난화를 막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상 다섯 가지의 원칙으로 도시와 건축이 업그레이드된다면 우리는 새로운 공간이 만드는 새로운 사회에 살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자연적으로 아파트의 구조는 이렇게 변화할 것이다’라는 예측에 더불어 ‘코로나로 인해 바뀌는 사회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라는 희망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위에서 ‘희망적인 예측’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왜 이런 예측을 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다른 나라의 예시, 부가 설명들이 궁금하다면 책을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 다른 나라의 건축물 사진이나 예상 건물 사진 등 다양한 그림도 포함되어 이해를 도와준다. 만약 자신이 1인 혹은 2인 가구이고 원룸에 산다면 특히 더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이후에 동영상 수업이 보편화가 되면 처음에는 기존의 시공간적 제약으로 만들어지는 권위가 사라지는 데 집착할 것이다. 교사들이 불필요하게 되는 게 아닌가 걱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아 선생님의 역할이 새롭게 만들어질 것이다. 이제 화가는 어느 누구도 사진기와 경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선생님은 온라인 수업 동영상 속 일타강사와 경쟁하면 안 된다. 지식 전달의 기능은 일타강사나 유튜브 상의 각종 동영상 자료로 해결 가능하다. 하지만 교육은 지식 전달이 전부가 아니다. 선생님은 지식 전달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해답은 ‘대화’에 있다.
지식 전달, 혹은 입시 교육에 대해서는 학교가 없어도 될 만큼 다른 콘텐츠들이 넘쳐나는 시대다. 지난 1-2년간 많은 학생들은 원격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학교가 단순한 지식 전달 외에 가치를 추구하면 어떨까? (이 책은 단순히 의견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사례까지 제안해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학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커다란 학교를 여러 개로 쪼갤 것, 운동장이나 체육관, 도서관을 학교 안 시설에 국한하지 말고 도시의 사회 시설들을 이용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획일화를 멈출 것. 작가는 비단 코로나 때문이 아니더라도, 지금까지의 획일화되고 전체주의적인 공립학교 체계는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교육으로는 앞으로의 미래를 선도할 수 없고, 획일화로 인한 부작용을 이미 수십 년간 겪었다고. 작가는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대답하고 토론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교육은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생각의 틀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도 동의한다. 거기에 하나를 추가하고 싶다. 자신의 고유성에 대해 자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지금까지는 매우 힘들었던 이것을 추가하고 싶다.
향후 재택근무는 공간이 만들었던 정직원 중심의 조직 구조를 해체할 것이고, 조직 구조의 해체는 노동자의 안전망 해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워에서 해방되고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지 않고 향후 재택근무는 공간이 만들었던 정직원 중심의 조직 구조를 해체할 것이고, 조직 구조의 해체는 노동자의 안전망 해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워에서 해방되고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지 않고 집이나 카페에서 편하게 일하는 것은 업무 공간을 개인화시킨다. 이러한 개인화된 공간 체계는 조직을 쪼개서 개인으로 파편화시킬 것이고, 이는 일자리의 프리랜서화를 가속시킬 것이다.
재택근무라는 개념은 이번 코로나로 인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는 더 가속화될 것이라고 작가는 예측한다. 하지만 보안성, 옅어지는 팀워크, 낮아지는 집중력 등이 재택근무를 힘들게 한다고도 말한다. 이를 막기 위한 여러 방법 중 ‘기업철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까지는 공간과 시간의 제약으로 인해 사원들에게 통일성을 주고 이를 통해 강제적으로 팀워크를 만들 수 있었지만, 이제 그런 기업은 살아남기가 힘들 것이다. 애플이나 디즈니 픽사처럼 하나의 기업 철학을 가진 회사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책에 나온 예시는 아니지만, 이번 픽사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소울’이 생각난다. 소울은 재택근무로 제작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코로나 시대에 어울리는 모습이 아닐까?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코로나로 인해서 도시가 해체될 것인가?’였다. 집값이 너무 비싼 지금 도시에 집을 사야 하나 외곽으로 이사를 가도 되나 궁금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경제 전문가도 부동산 전문가도 아니니 집값에 대해서는 확답을 주기 어렵다. 다만 도시가 해체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해체되지 않는다’이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인류 역사를 보면 그렇다. 5천 년이 넘는 인류 문명과 도시의 역사를 보면 전염병이 없었던 시기가 없었고 가끔은 심각한 전염병으로 도시가 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은 다시 모였고 도시의 규모는 계속 커져 왔다.
도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변화할 것이다. 작가는 어떻게 하면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말한다. 그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빌라를 합쳐서 하나의 블록으로 재개발하고, 공동 주차장을 만들자. 그리고 그 사이의 자투리땅이나 현재 주차장인 1층은 공원이나 보행자 공간으로 만들어 거주자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자. 이런 예시 이외에도 다양한 예시가 있다. 작가가 공통되게 강조하는 것은 ‘소셜 믹스’다. 서로 다른 관심사, 수입,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공통의 경험을 하는 것이 소셜 믹스다. 만약 입장하는데 돈이 들게 되면 소셜 믹스는 생기지 않는다. 발코니, 공원, 도서관 등에 대해 작가는 다양한 개혁안을 내놓는데, 그 이유는 소셜 믹스가 쉽게 생길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소셜 믹스가 일어나야 사회는 다양해지고 공간이 그저 돈으로만 환산되는 현상을 탈피하며, 획일화에서 벗어나 다수가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러한 예측, 혹은 소망은 기관이나 기업이 시대의 흐름을 잘 따라가고, 제도가 효율적으로 변화하고, 그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때에 이루어질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아니면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작가는 <엘리시움>이라는 영화를 인용하며 말한다. 이기적인 인간에게 나타날 자연스러운 결과는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이 격리되는 사회라고. 부자들의 공간은 커지고 밀도는 낮아질 것이며,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반대가 될 것이다. 이것이 절망적인 예측이다.
현재 한국은 부의 계층 이동이 매우 어렵다. 서점에서는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하는 책들이 넘쳐나고 포퓰리즘이 성행한다. 노력을 해도 서울에 집 한 채 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작가는 국가가 여러 개혁들을 통해 저소득층에게 저렴한 공간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 계층 간 이동의 사다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재 제도는 그렇지 않다. 더 나은, 다수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바꿔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서 전 세계 모든 국가와 사회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 출발선상에 섰다. 과거의 공간 모델로는 다가올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과거 근대화에 늦은 우리는 서양 사회가 만든 공간 시스템을 답습하는 일만 해 왔다. 지하 상하수도 시스템, 전략 공급망 시스템, 엘리베이터와 철근 콘크리트를 통한 고층 고밀 도시 공간, 근대식 학교 등 거의 모든 시스템을, 우리보다 앞서 나갔던 서양 문명의 열매를 도입한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처음으로 만든 새로운 도시 공간 시스템, 우리만의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서 세계를 리드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선진국 성공 사례를 찾아다닐 것인가. 중요한 시기인 지난 이십 년 동안 우리 국민은 ‘과거사 재정의’ 과정에서 빨갱이와 토착 왜구로 상대방을 비방하며 분열됐다. 역사를 모르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 하지만 역사만 이야기하는 사람에게도 미래는 없다. 미래는 미래에 대해서 구체적인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시선의 초점을 과거에서 방향을 돌려, 미래를 향하길 바란다. 코로나라는 위기는 그런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역사를 보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대가 있다.
... 역사 중에 어느 시대의 선택이 이후 수백 년의 인류 역사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지금이 그런 시대다. 기후 변화와 전염병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백 년 후의 인류 역사를 결정하는 거룩한 책임을 짊어진 세대다. 미래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미래는 우리가 만드는 오늘의 선택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각자의 자리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