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묻다]: 책을 읽고 발제문으로 리뷰하기 26.01
매달 읽은 책들을 간단하게 리뷰합니다. 그중 한 권에 대해서는, 그 책으로 독서 토론을 한다는 생각으로 발제문을 작성하고 그에 답하면서 리뷰를 하려고 합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발제문 - 아래의 내용을 기반으로, 자유롭게 이야기해 봅시다.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기억 남는 장면?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해서.
모스의 선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안톤 시거는 어떤 인물인지. 그 외의 인물에 대해서.
줄거리와 결말에 대해서. 예상대로 인지, 충격적인지. 혹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등등.
책의 유니크한 분위기에 대해서. 어떤 분위기인지, 어떤 이유에서 이 책이 그런 분위기를 자아내는지.
누가 주인공일까? 각자가 생각하는 주인공의 정의란?
제목에 대해. 제목과 그 의미, 그리고 연관돼서 추천할만한 책 한 권.
책을 다 읽고 난 후 발제문에 대해 생각해 보고, 맨 아래의 글을 읽어주시면 됩니다.
이번 달 읽은 책
거장이라 해도 손색없는 작가, 이언 매큐언의 1997년 작품인 Enduring Love 다. 예전에 [이런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적이 있으며, 2004년에는 영화화도 되었는데 제목이 [사랑을 견뎌내기]이다. 이번에는 [견딜 수 없는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판되었다. Enduring 에는 영원하다 혹은 견뎌내다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처럼 중의적인 제목이기에 한국에 다양한 제목으로 소개된 듯하다. 나는 최신 버전을 읽었다. 읽고 나서 다시 제목에 대해 생각해 보니, 위의 세 제목 중 첫 번째 제목은 의미가 잘 느껴지지 않고, 두 번째는 괜찮으나 문장의 명사화라서 어색한 느낌이 있으며, 세 번째는 책 내용과는 잘 맞기는 하지만 원문의 반대 표현이라 이래도 되나 싶다.
주인공은 아내와 함께 피크닉을 나갔다가 어떤 비극적인 사건을 마주하고 휘말린다. 그 사건으로 인해 직업과 가정을 포함해 다양한 것이 바뀌며, 예기치 않은 방면으로 사건이 진행된다. 제목처럼 이 책에는 정말이지 다양한 사랑 방식이 등장한다. 충격적이고 다소 복잡한 플롯과 그 다양한 사랑 리스트가 어우러지는 조화가 일품이다.(책 리뷰에서 보통은 스포일러를 하는데, 이 책은 그 내용이 꽤나 중요하다 생각되어 이 정도로만 서술하겠다.)
주인공의 과학적 (혹은 너드 같은) 사고 과정에 대한 서술과 그리고 첫 비극적 사고에 대한 복잡한 묘사가 어우러져 초반이 약간 읽기 어렵기는 하다. (물론 이 부분이 책 내용 이해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 그 부분만 넘어가면 도파민 터지는 드라마 같은 책이다. 책 표지와 제목까지 리뉴얼해 가면서 다시 출판하고자 마음먹었던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책의 저자 요한 하리는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이다. <도둑맞은 집중력>으로 국내에도 유명해졌고, 그 이후에 다양한 책이 번역되어 국내에 출판되고 있다. 이 책은 요즘 가장 핫한 약이자 사회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인 신종 비만치료제(위고비/마운자로 등)에 대한 책이다. 비만치료제가 어떻게 개발되었고, 어떤 장점과 단점을 가지는지, 그리고 비만치료제의 유행이 보여주는 사회의 이면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현재 직업도, 신체도 비만치료제와 상당 부분 연관되어 있다. 그렇기에 약의 기작이나 약효, 임상 시험 결과 등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사실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방면에서 사고해 보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나는 이제 신종 비만 치료제를 투약하는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이런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과식이, 비만이 내게 해주었던 역할은 무엇인가? 거기서 내가 얻었던 긍정적인 것은 무엇인가?’ 무자비할 정도로 솔직하게 성찰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과식을 없애고 나면 바로 그 ‘문제’들이 어떤 식으로든 다시 전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운동은 심장마비와 뇌졸중에서 조기 사망까지 온갖 문제를 예방하는 데 믿기지 않을 만큼 효과가 있다. 운동이 효과를 잘 내지 못하는 영역은 (안타깝지만) 체중 감량 분야다.
우리는 왜 이런 식의 양자택일에 직면해야 하는가? 내 자녀를 건강이 망가질 수 있는 험한 몸 상태로 놔두거나 위험성을 내포한 약을 끝도 없이 투약하게 하거나, 왜 둘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는가?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됐는가? … (중략)… 누구나 먹어보았을 여러 종류의 비스킷을 만드는 업체의 내부 보고서가 1998년 공개됐다. …(중략)… 보고서는 (식품업계의 목표처럼) 아이들이 자신을 병들게 할 쓰레기 같은 음식을 흡입하게 만들어서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은 아이들에게 제품을 광고하기 위해서 미국에서만 연간 수십억 달러를 쓴다.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마지막 챕터가 <비만 치료제가 필요 없는 나라 - 왜 일본인은 살이 찌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BMI 30 이상에 해당하는 비만율을 찾아보면, 통계 방법고 시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큰 차이가 없이 5% 내외다. 즉 이 책의 저자 입장에서 보기에 일본 그리고 한국은 비만에서 자유로운 나라인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는 BMI 25 이상부터 비만이라고 정의하는 등 국가와 지역에 따라 신체적인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현재 한국에서 위고비/마운자로는 굉장한 인기다. 위고비는 출시 8개월 만에 40만 건 이상 처방되었고, 마운자로는 첫 달 판매량이 위고비를 뛰어넘었다. 과연 그중 얼마나 정말로 건강 때문에 투약하고 있을까?
만약 당신이 비만치료제를 투여하고자 고민 중이라면, 혹은 이미 맞고 있는데 약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면, 그리고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비만치료제에 대해 궁금하다면, 강력 추천하는 책.
노후 연금이라는 중요한 주제이지만, 이 책 속에 그다지 알맹이는 없다. 노후 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사람에게 경종을 울리는 정도의 책.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기억 남는 장면?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해서.
<모두 다 예쁜 말들> 이후로 두 번째로 읽는 작가의 소설이다. 흥미롭게 읽었다. 훌륭하게 쓰인 소설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과연 누군가에게 쉽게 추천할 수 있을까?라고 하면 그런 소설은 아니다. 난도가 있기도 하고, 읽고 나면 기분이 찜찜하기도 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모스의 죽음. 그 장면이 실제로 나오지는 않고, 소녀와 이야기하던 장면 이후에 바로 결론만 내어주는 그 부분이 인상 깊다. 죽음이란, 불행이란 이처럼 갑작스레 찾아오는 것이야, 하고 말하는 듯하다. 영화도 보았다. 영화를 보았을 때는 총격전이나 비주얼이 인상 깊었던 것 같은데, 책에서는 총격전은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전투 장면이 나오기까지 준비하고 기다리는 과정들의 숨 막힘이 잘 느껴진 듯.
모스의 선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안톤 시거는 어떤 인물인지. 그 외의 인물에 대해서.
어느 하나 별로 친근감이 생기지 않는 인물들만 나온다. 내가 모스였다면, 돈을 챙긴 후에 무슨 연유로 이 돈이 내 손에 오게 되었는지 일말의 궁금증도 가지지 않고 재빨리 떠나 미국 어느 한 구석으로 향했을 것이다. 보석으로 바꾸든 무엇을 하든 세탁을 해서 유유자적 살아가지 않을까. 물론 그 돈을 발견하고 챙긴 것도 바보 같은 선택이지만, 한 번 더 돌아간 것은 곱절로 멍청했다. 거기다 쫓기고 있고, 부인도 위험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도, 히치하이킹하는 소녀를 태우다니. 그런 면모가 있기에 책이 전개되는 것이지만 참 답답했다.
안톤 시거가 어떤 인물일까, 하고 생각하며 책을 이리저리 살피며 그가 나오는 장면들을 보았다. 주사위를 던지는 장면, 돈이 없어진 트럭에서 자신을 데려간 두 명을 쏘는 장면, 웰스와의 대담, 모스 부인을 죽이는 장면. 그가 나올 때는 누군가가 죽을 위기에 처하거나 죽는다. 당사자의 관점에서는 이유도 없고 갑작스럽지만 그냥 죽는다. 영화가 워낙 유명해서 안톤 시거가 사이코패스 살인마이며 '걸어 다니는 재앙'이라는 해석이 잘 알려져 있다. 걸어 다니는 재앙이라는 뜻을, 나는 그가 '등장인물'이 아니라 하나의 현상이라고 받아들인다. 태풍이나 지진처럼 인간의 의사와는 아무 관계없이 일어나고 없어지는 그런 현상. 그렇기에 작가도 이해할 수 없는 인물로, 대적할 수 없는 인물로 묘사하기 위해 힘쓴 듯 보인다.
줄거리와 결말에 대해서. 예상대로 인지, 충격적인지. 혹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등등.
물론 영화를 먼저 보아서 결말에 대해 알고 있었다. 모스와 부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모두 죽을 것이라는 결말 말이다. 순리대로 흘러간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책의 마지막 장면은 그렇게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책은 보안관 벨의 두 가지 이야기로 끝난다. 돌구유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벨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벨은 어느 집에서 커다란 바위를 통째로 깎아서 만든 듯 보이는 돌구유를 보고는, 그것을 깎았을 누군가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유일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마음속에 어떤 약속이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나는 돌구유를 깎을 생각이 전혀 없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약속은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생각에는 그게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인 것 같다.
벨은 또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꿈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첫 번째 꿈에서는 아버지가 준 돈을 잃어버린다. 두 번째 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날은 추웠고 땅에는 눈이 쌓였는데 아버지는 나를 지나쳐 가더니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갔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아버지는 그저 나를 지나쳐 갔고 담요를 두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나를 지나쳐 갈 때 보니 사람들이 예전에 그랬듯 안에 불을 밝힌 뿔 등불을 들고 있었고 나는 안에서 비치는 불 덕분에 뿔 등불을 볼 수 있었다. 달빛 같은 색깔이었다. 그리고 꿈속에서 나는 아버지가 앞서가서 그토록 어둡고 그토록 추운 세상 어딘가에 불을 지필 작정이라는 것을 알았고 내가 언제 도착하든 그곳에 계시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서 나는 잠에서 깼다.
망치와 끌을 들고 커다란 바위를 깎아내는 누군가를 상상하는 벨은, 그가 마음속에 약속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 약속은 영원성에 대한 약속이다. 천년만년 가족이 번성하며 말과 소에게 여물을 먹이는 그런 장면을 생각하며 한 땀 한 땀 깎아나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돌구유는 어느 집 앞에 나뒹굴고 있고 말과 소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은, 그런 종류의 약속을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한다. 비록 돌구유는 쓰임새를 다했지만, 그것을 깎을 때는 평온하고 찬란한 미래를 생각하며 행복했을 것이며, 그런 희망을 가지는 것만이 인간에게 삶의 의욕을 부르는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아버지에 대한 두 번째 꿈의 장면으로 책이 끝을 맺는다. 벨은 아버지가 '그토록 어둡고 그토록 추운 세상 어딘가', 즉 죽음 속에서 불을 지피고 그를 기다릴 것이라 생각한다. 아버지가 등불로 길을 조금이나마 밝혀주었고, 그 길을 따라 인생을 살다가, 언젠가는 같은 곳을 향하게 될 것이다.
예기치 않은 재앙이 물밀듯이 닥치는 앞의 사건들과 합쳐서 보자면 이런 것이다. 재앙은 예고 없이 닥치고, 세상은 바뀌며 나는 세상에 뒤쳐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무언가 영원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 희망을 후대에게 등불처럼 보여주며 살아가자.
책의 유니크한 분위기에 대해서. 어떤 분위기인지, 어떤 이유에서 이 책이 그런 분위기를 자아내는지.
인물들의 건조하고 짧은 대화, 큰따옴표가 없이 죽 이어지는 글들, 그리고 배경과 묘사가 어우러져서 하드보일드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책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유니크함이다.
누가 주인공일까? 각자가 생각하는 주인공의 정의란?
중요 등장인물로는 세 명이 있다. 벨, 모스, 안톤. 가장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벨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주인공은, 어떤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결정적인 변화를 겪는 인물이다. 안톤 시거는 전혀 변화하지 않았고, 인물이라고 하기도 어려우니 제외하자. 모스는 죽음이라는 결정적인 변화를 맞이했지만, 사고나 행동 패턴은 처음 그대로인 채다. 벨은 그 사건을 해결하리라는 희망으로 참여하지만, 아무것도 바꾸지도 실상에 다가가지도 못한다. 그러면서 세상의 변화를 몸소 느끼고 보안관을 그만두게 된다. 그런 변화를 지켜보며 독자들은 벨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책을 더 깊숙이 받아들인다는 측면에서 벨이 주인공이 아닐까.
제목에 대해. 제목과 그 의미, 그리고 연관돼서 추천할만한 책 한 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우리는 그것을 따라가기 벅차다.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뒤처지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의 형편을 봐줄 정도로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벨은 영원성에 대한 약속을 가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각자의 설 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좋든 싫든 간에,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되기에.
빠르게 바뀌는 세상 속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한 책으로,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