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묻다]: 책을 읽고 발제문으로 리뷰하기 26.04
발제문 - 아래의 내용을 기반으로, 자유롭게 이야기해 봅시다.
1. 책에 대한 소감. 알파고와의 대국을 보았는지? 그때는 어떻게 생각했고, 지금은 어떻게 다른지.
2. AI 툴을 처음 쓴 게 언제인지? 어떻게 쓰고 있는지? 앞으로는 어떨 것 같은지?
3. AI에서 살아남을 것 같은 직업이 무엇일지?
4. 이 책의 서술 방식에 대해서.
5. 작가는 9장 <가치가 이끄는 기술> / 10장 <인공지능이 아직 하지 못하는 일>에서 자신의 중심 주장을 이야기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올바른 세상을 만들지 않기에 사람이 가치를 제안하고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26.03) 이번 달 읽은 책
또다시 이언 매큐언의 소설들을 읽었다. <속죄>, <스위트 투스>, <이런 사랑>, <칠드런 액트>를 포함해 총 6권을 읽었다. 이 정도면 어딜 가서 이언 매큐언 좋아한다고 할 만큼 충분히 읽었다.
<암스테르담>은 장편보다는 중편에 가까운, 2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짧은 소설이다. 두 사람이 중심인물인데, 한 명은 작곡에 대한 영감을 지키고자 습격당하는 여자를 목격하고도 못 본채 한다. 한 명은 정치인의 숨겨진 사생활을 보도하며 평판에 흠집을 내 나락으로 보내려고 한다. 각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는 서술되며 앞서 말한 행위들이 정당화되고 축소되는데, 마지막에 가서 그 두 명에 대한 사람들의 신랄한 평가가 드러난다. 마치 추리소설과 같은 전개와 믿을 수 없는 화자들이라는 서술 방식, 그리고 이언 매큐언 특유의 잔혹하고 우아한 묘사가 합쳐진 책. 미니멀하고 흥미진진하다.
<체실 비치에서>는 한 신혼부부가 신혼여행에서 어긋난 첫날밤을 보내고 파국을 맞는 이야기다. 그들의 과거와 미래가 그 사건과 공진하며 여운을 남긴다. 변태적인 설정과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드러나는 약간은 불쾌한 소설이지만, 어긋난 사랑이라는 쓰기 어려운 감정을 글로 써낸 작품이다.
삼국지를 전혀 모르거나, 이름 정도만 들어본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
삼국지 주요 사건과 주요 인물들을 위주로, 처음부터 끝까지 간략하게 소개하는 책. 중간중간 지도도 나오면서 설명을 돕는다. 삼국지에서 나온 고사성어들이나 삼국지 일화에서 유래된 단어 등도 소개하고 있다. 긴 소설 중 재미있는 부분들만 모아둔 책이기에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어릴 때 자연스레 삼국지를 접하지 않았던 사람이 처음 접하기 좋은 책이다.
- 이 책들은 소설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소설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에 대해 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읽는 책 시리즈다. 여기다가 <나보코프 문학 강의>까지 추가해서 내용을 정리하고 몇 편의 글로 써볼 예정이다.
- 나는 한국기원 인증 아마추어 1단 단증을 가지고 있다. 초등학생 때 2년 반 다녔다. 그 뒤로는 바둑을 하지는 않았지만 바둑을 아예 모르는 일반인보다는 조금 더 관심은 있었다. 알파고와의 대국도 실시간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대국에 대해 찾아보고 뉴스도 본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당연히 알파고가 질 것이라 생각했던 판단도 기억이 난다. 예상과는 달리 알파고가 압승을 거두었지만, 그렇게까지 쇼크는 아니었다. 바둑을 떠난 지도 오래되었고, 또한 그 파장이 바둑에만 미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를 되돌아보면, 그나마 알파고 사건으로 인해 AI의 위력이 드러난 것이 다행히 아닐까 생각한다. 만약 쥐도 새도 모르게 몇 년 동안 더 발전하다가 갑자기 튀어나왔으면, 그 충격이 더 크지 않았을까.
- 챗GPT가 알려지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사용하기 시작했다. 업무에 사용하는 건 주로 논문과 같은 영어 문서 번역 및 정리. 적합한 자료를 찾는 것보다는, 자료를 찾아서 여러 개를 넣어주면 비교하고 정리 요약하는 방향으로 사용 중이다. 업무가 아닌 방향에서는, 요리할 때 레시피를 물어본다거나 여행할 때 번역하는 것. 특히 레시피에 대해서는, 가지고 있는 재료만 넣어주면 딱 맞게 계량해서 알려줘서 많이 쓰고 있다.
이제 한 1-2년만 지나면 사람이 데스크에 앉아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업무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권한과 부작용의 문제가 남겠지만, 실용성에서 압도하면 넘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고. 내 업무에 비추어 말하자면, 실험 계획을 수립하고 결과를 분석하고 다음 실험을 제안하는 일들은 빠르고 쉽게 해낼 것이다. 나는 그걸 빠르게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 비겁한 방법으로 대답하자면, 어떤 직업이든 살아남는 동시에 위협받을 것이다. AI툴을 사용하는 능력과 적극성을 포함해서, 그 직업의 본질을 똑바로 마주하는 사람은 살아남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스러져갈 것이다. AI가 없더라도 언제나 그렇지만, AI는 더욱 과감하고 빠르게 일어날 뿐이다. 물론 좁은 의미에서의 일자리, 예를 들면 단순 번역 업무나 법률 보조사무 같은 직업들은 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번역가나 법률가는 하는 일이 바뀌고 종사자는 줄어들겠지만 직업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저자가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지금 시점에서의 예상은 대부분 틀릴 것이지만.
- 1장에서 7장까지는 주로 바둑의 이야기와 그리고 저자의 직업인 소설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알파고 사태 이후로 바둑계가 겪은 변화를 인터뷰를 포함해 생생히 묘사한다. 그리고 거기서 도출해 내는 소결론들을 문학계에도 적용한다. 그런 과정을 읽는 독자는 물론 바둑계와 문학계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직업에는 어떨지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렇게 7장까지 빌드업을 하다가 8장부터는 저자 자신의 생각이 나온다. 친숙한 사건에서 시작해, 그 사건을 더 깊게 파고들고, 거기서 몇 단계 더 확장하면서 점점 사회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다행히 바둑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고, 문학에는 그보다 더 큰 관심이 있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조금 지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과학기술이 가치중립적이라는 헛소리를 경계해야 한다. 과학기술은 물질세계뿐 아니라 정신세계 깊은 곳까지 힘을 미치는 강력한 권력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나 정당, 제도가 그런 권력을 행사하려 들면 반드시 견제 장치가 마련될 것이다.
자율주행차가 보급되면 운수업 종사자들이 크리스퍼 전문가나 오보에 연주자로 전업할 수 있을까? 이들과 그 가족들의 운명이 테슬라나 구글 같은 몇몇 테크 기업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나는 믿어지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인공지능이 아직 할 수 없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다. 좋은 상상을 하는 것, 우리가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 그렇게 미래를 바꾸는 것이다.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시 「인빅투스」 마지막 구절을 조금 변형해 책을 마무리하도록 하자.
우리는 우리 운명의 주인이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선장이다.
아직까지는.
내 직업은 약물제형연구자다. 만약 어떤 거대 제약사와 AI 기업이 연구를 거듭한 끝에 내 분야에 사망선고가 내려진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연구하는 한 분야의 신약을 개발한다는 뜻이 아니라, 신약을 개발하는 모든 절차가 AI에 의해 장악당해 신약 개발에 더 이상 인간이 할 일이 없어진다면 말이다. 나는 아주 씁쓸해지고 슬프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받아들일 것이다.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이 직업을 통해 산업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진다면 나는 더 이상 그 직업으로 사는 것을 포기할 것이다.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다른 직업을 찾아 헤멜 것이다. 물론 현실적인 사정에 의해, 하기 싫으면서도 기여하는 것이 없다고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불쉿 잡을 계속해서 끌어안고 놓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생계에 필요한 돈을 지원해 주는 것이 충분한 해결책이 되리라 생각한다.
작가는 7장에서, 기본소득이나 로봇세를 거두어 소설가들에게 지급해 준다고 하더라도, ’ 소설가라는 직업이 지켜졌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 물론 그렇다. 소설가라는 직업을 지키는 것이, 그 어떤 직업이라도 그 직업 자체를 지키는 것은 정부와 사회의 목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목표는 그가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안전망을 단단히 지키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 현재로서는 가장 쉬운 방법이 개인의 직업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직업을 지키는 것이 지금은 중요한 일일 뿐이다. 정말로 기본소득이 가능한 세계라면 직업을 지킬 필요는 없다.
이런 근본적인 차이는 정부나 기업, 사회의 역할에 대한 의견 차이라고 보인다. 작가는 그들이 옳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며, 옳은 일=가치가 무엇인지 서로 이야기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기술을 통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단단한 안전망을 만들어 하방을 지지하는 일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하방이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기본 의식주 (시대가 지날수록 그 ‘기본’에 대해서는 조금씩 기준이 올라갈 것이다)이고 가치나 여가에 대해서는 아니다. 무엇이 가치 있는 일인지는 각자가 생각할 일이며 그것은 타인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 자율주행차가 99%를 점유하는 시대에 손으로 운전하는 일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존중한다. 일론 머스크를 필두로 하는 기술기업 독재자들이 화성에 가는 일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매진한다면, 그것 또한 존중한다. 그렇지만 개인의 가치 추구가 불러오는 폐해가 크고 개인의 존엄을 해친다면 막아야 하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다. 석면을 사용하는 것처럼 AI를 사용하는 것이 폐해가 큰 일일까? ‘지금 사람들’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기술의 발전보다 중요하다 생각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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