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2/4)

2부: 1-3장

by 최형주
우리가 오늘날 이런 평화를 누리는 까닭은 옛 세대들이 당대의 폭력에 진저리 치면서 그것을 줄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1부에서는 요약 및 소개를 했고, 이후에는 이 책의 총 10장을 3 부분(1-3장, 4-7장, 8-10장)으로 나누어 설명을 할 예정이다. 책의 논리 흐름을 따라가되,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적당히 설명을 하려고 한다. 1-3장의 제목 및 요약은 다음과 같다.​


1장 낯선 나라

: 과거가 현재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다이제스트.

2장 평화화 과정

: 오천 년 전 국가가 생기며 폭력이 감소했다.

3장 문명화 과정

: 13세기 이후, 법적 제도 정비와 상업화를 통해 인류가 문명화가 되며 폭력이 감소했다.


​<1장: 낯선 나라>

작가는 이 책을 통해 폭력의 역사적으로 감소한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려 한다. 하지만 무엇이든 서두르면 좋지 않은 법. 처음부터 데이터를 들이대면 지쳐서 떨어져 나갈 수도 있으니 쉽고 흥미가 가는 이야기들부터 시작한다. <낯선 나라>라는 제목은 소설가 L.P. 하틀리의 “과거는 낯선 나라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다르게 산다.”라는 문장에서 따왔다. 그러면 지금부터 기원전 8천 년부터 기원후 1970년 사이의 과거에 대해, 그 낯선 나라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약 만년 전의 선사시대에 대해서는 정보가 그다지 많지 않다. 알프스에 파묻힌 채로 발견된 5천 살의 <아이스맨 외치>, 워싱턴 강둑에서 발견된 9400년 전의 <케너윅 맨> 등등 몇 개의 유해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 유해들의 공통점은 모두 폭행의 흔적이 있다는 점이다. 화살촉이 박혀있거나, 두개골이 절단되어 있거나, 줄에 목이 졸려 있거나 하는 등으로. 살해당한 시체가 더 잘 보존되었을 것이라고 하는 근거는 없으므로, 일반적인 고대인의 죽음의 원인은 폭력이었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물론 사례가 적고 너무 오래전이니 정확하지는 않다. 과거는 꽤나 폭력적이었다, 라는 인식 정도만 하자.)

그 이후, 문자가 퍼지면서 더 많은 정보가 현재까지 남았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기원전 800-650년에 쓰였고, <구약성경>은 기원전 1500년 정도에 쓰였다. <오디세이>에서 모든 장군들에게 여성은 전쟁의 전리품이었다. 오디세우스는 아내에게 구애한 남자들을 모두 죽이고, 첩들이 다른 남자들과 사귄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첩들도 모조리 죽인다. 히브리 성경에서 신은 수많은 방법을 통해 대량 학살을 한다. 홍수(노아의 방주), 장남을 죽이는 저주(출애굽기) 등등. 구약성경 속에서 나라나 왕, 개인이 학살을 하는 장면이 600군데, 신이 직접 처벌하는 장면이 1000군데쯤 존재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대부분 픽션이지만 픽션은 언제나 현실을 반영한다. 작가들에게,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고대사회의 분위기에서 권위에 대한 충성을 위해서라면 사람 수십수백 명의 목숨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물론 이것이 사실인지는 뒤에서 살펴볼 예정이다.

조금 더 최근으로 와보자. 앞의 예시들보다 더 끔찍한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점점 더 폭력적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료가 생생하고 더 많이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의 십자가형, 중세 고문도구, 셰익스피어 비극에 나오는 묘사, 그림 형제 동화집 등등에서는 폭력적이고 잔혹한 장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유튜브나 텔레비전 프로그램, 게임이 아이들의 폭력성을 부추긴다고 걱정하는 어른들이 많은데, 17세기의 자장가보다는 훨씬 온건하다.

최근 <아동 질환 기록>에 다양한 어린이 오락 장르들의 폭력성을 측정한 논문이 실렸다. 그 글에 따르면,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폭력 장면이 시간당 4.8회 꼴로 나오는 데 비해 자장가는 편당 52.2회였다.

18세기 무렵부터는 모두들 잘 아는 시대다. 18-19세기까지 유럽과 미국에서는 공식적인 결투가 존재했고 명예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죽였다. 유럽의 많은 공공장소는 장군의 이름을 가지고 있고, 전쟁 동상들도 수두룩하다. 군국주의가 정점에 달한 결과는 우리가 모두 익히 아는 두 번의 전쟁이다. 미국의 1950년대에는 시트콤에 가정폭력이 농담거리로 등장했고, 뮤지컬에는 강간이 노래 불러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 잘 알겠지만, 20년쯤 전 만해도 (그리고 아직도 지구의 일부 지역에서는) 아동폭력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선사시대, 고대 그리스를 지나 중세, 근대까지 폭력은 당연하게 일상 속에서 존재했다. 현재는 어떤가. 현재에도 폭력적인 사건들은 즐비해 보인다. 총기난사사건, 테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소수민족 탄압 등등. 무능한 정치인들과 경찰들은 범죄자의 인권을 옹호한답시고 제대로 범죄를 방지하지도 못한다. 폭력이 점점 더 음지로 내려가 안 보이게 되고, 조직화되어 더 심각한 피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놀랍게도, 현재는 옛날보다는 낫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는 2장부터 시작된다. 1장에서 만 년간의 역사를 빠르게 돌아보았다면, 다음장부터는 시기를 끊어서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우리에게는 오늘의 위험들이 있지만 어제의 위험들은 훨씬 더 나빴다.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위험을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마찬가지다). 성 노예로 납치되는 것, 신의 명령에 따른 집단 살해, 죽음을 부르는 원형 극장과 마상시합, 대중적이지 않은 신념을 품었다고 해서 십자가, 래크, 바퀴, 화형주, 형틀로 처벌받는 것, 아들을 못 낳는다고 해서 목이 잘리는 것, 왕족과 사귀었다고 해서 할복을 당하는 것, 명예를 지키기 위한 권총 결투, 여자 친구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 해변에서 주먹다짐을 하는 것, 그리고 문명과 인류를 아예 몰살시킬 만한 핵전쟁의 전망.


<2장: 평화화 과정>

2장에서 다뤄볼 것은 ‘국가의 건설’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이 가져온 폭력의 감소에 대해서이다. 근대 철학자 중에서, 국가 이전의 ‘자연 상태’에 대해 말하는 몇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한쪽 끝에는 토머스 홉스가 있다.


토머스 홉스는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궁핍하고, 비참하고, 야만적이고, 짧다.’라는 표현과 그의 저작 <리바이어던>으로 유명하다. 홉스는 이 책에서 폭력의 세 가지 원인 - 경쟁, 불신, 영광 - 을 분석한다. 경쟁은 한정된 자원을 두고 다투는 것이다. 불신은 그런 경쟁의 결과로 발생하는데, 내 이웃이 나를 공격할지 아닐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제공격을 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영광은 상대방에게 ‘나를 건드리면 크게 낭패를 볼 것이다’,라고 선언하기 위해 사소한 위협에도 크게 반응하는 것이다. <경쟁 = 포식적 습격 / 불신 = 선제적 습격 / 평판 = 보복적 습격>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홉스는 무정부 상태에서 이러한 원인들로 인해 끊임없는 폭력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원인들을 제거하기 위해 절대적인 정권인 ‘리바이어던’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정부가 나서서 공격자를 처벌하게 되면, 폭력에서 이득을 취할 수 없기 때문에 폭력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의 끝에 서있는 철학자는 장 자크 루소다. 단순히 요약하자면 ‘고귀한 미개인’이라고 불리는 그의 이론은, 맨 초기의 인류는 온화했으며 이후에는 종이 점점 쇠락하는 단계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홉스와 루소 중 누가 옳았을까?

국가 이전 시대의 폭력에 대한 홉스와 루소의 말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 소리였다. 사실 그들은 문명 이전의 삶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오늘날 우리는 그들보다 더 많이 안다. ······ 무정부적 부족들의 전쟁은 정착 국가들의 전쟁보다 더 파괴적일까, 덜 파괴적일까?​ …… 현대 서구 국가들의 평균 전쟁 사망률은 전쟁으로 가리가리 찢긴 세기에도 비국가 사회들 평균의 4분의 1을 넘지 않았다. 최고로 폭력적인 비국가 사회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 된다.

홉스가 대체로 옳았다. 아무리 폭력적인 국가라 해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국가의 출현 이후 폭력은 급격하게 감소했다. 이것이 바로 <평화화 과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우리가 범죄로 괴로웠지만 이제는 법으로 괴롭다.” 초기 국가는 계층화된 국가였으며, 극소수의 엘리트가 대부분의 사람들을 착취해 경제적 이득을 얻는 사회였다. 또한 중앙 집권화된 사회일수록 여성을 죽이고, 노예를 부리고, 인신공양을 하는 경향이 더 컸다. 복잡한 사회일수록 신성모독이나 마술처럼 피해자가 없는 행위를 범죄 화하여 고문하고 처형했으며, 독재자에게 휘둘릴 가능성도 증가했다. 즉, 리바이어던은 전쟁과 살인에서 다른 곳으로 폭력을 이동시켰다.

그렇다면, 최초의 리바이어던은 폭력의 문제를 하나 풀었으나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냈던 셈이다. 덕분에 사람들은 살인과 전쟁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줄었지만, 대신 독재자, 성직자, 도둑 정치가(Kleptocrat)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여기에서 우리는 평화화라는 단어에 숨은 음흉한 뜻을 깨우친다. 그것은 단순히 평화를 가져오기만 하는 과정이 아니었다. 강압적인 정부가 절대적인 통제를 가하는 과정이었다. 인류가 이 새로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몇 천 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심지어 세계 여러 지역에서는 아직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3장: 문명화 과정>


다행히도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국가가 폭력을 줄여서 내가 살해당할 가능성이 줄어들었으니 착취당하고 강간당할 위협쯤은 감수해야지’, 하고 책을 덮을 필요는 없다. 아래의 표를 보자.

중세 이후부터 급격히 줄어드는 살인율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살인율은 다른 중범죄들 (강간이나 폭행 등)은 어느 정도 비례한다. 따라서 전체적인 폭력의 양이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감소했다고 말할 수 있다. 지방 자치가 강했던 국가가 중앙 집권으로 바뀌며 국가 내에서 다툼이 줄어들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 이유로는 상업의 발달이다. 상업은 다른 경제 수단과는 달라서 포지티브섬 게임이 될 수 있다. 때문에 이웃과 다투기보다는 그들에게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것이 바로 문명화 과정으로 인한 폭력의 감소다.

물론 서유럽만의 데이터이므로 전 세계 공통으로 비슷한 경향을 지닌다고 하기는 어렵다. 제한된 데이터를 종합하여 보았을 때, 중앙집권이 잘 구성된 나라들(중국, 이슬람 국가)은 범죄율이 역사적으로도 현재도 낮다. 범죄율이 높은 지역은 러시아나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 등인데, 이곳들은 경찰과 사법 체계의 부패율이 높아 국가가 ‘리바이어던’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은 유럽과 비교했을 때 범죄율이 매우 높다. 이런 식으로 국가 간 대륙간 편차는 존재하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어느 곳이든 ‘삐뚤삐뚤하게’ 오른쪽 아래로 범죄율이 내려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삐뚤삐뚤하게 내려간다는 것은, 가끔 올라갈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중 대표적인 예외 하나는 미국이고, 다른 하나는 1960년대부터 갑자기 증가했다가 1990년대 급감한 범죄율이다. 책에서는 이 예외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범죄율이 내려간 것뿐만 아니라, 범죄의 주체도 변화했다. 중세까지는 귀족들이 범죄를 주도했고, 범죄로 인해 죽는 숫자도 많았다. 하지만 현대로 올 수록 폭력과 낮은 사회 경제 지위가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국가가 강해져 법이 정착되고 경찰들의 강제력이 생긴 결과다. 잃을 것이 많은 상류 계층들은 자연스럽게 싸움을 피하게 되지만, 법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혹은 그렇다고 생각하는) 낮은 사회 경제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법보다 주먹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국가에 대한 신뢰가 낮은 그들은 범죄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 직접 무기를 손에 든다.

전체 살인 중에서 소수만이 (아마도 10퍼센트 미만이) 실제적 목적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실제적 목적이란 도둑질 중에 집주인을 죽이거나, 체포되던 중에 경찰을 죽이거나,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사실을 노려 강도와 강간 피해자를 죽이거나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더 흔한 살인 동기는 도덕적인 것이다. 모욕에 대한 보복, 집안싸움의 격화, 불성실하거나 자신을 떠난 연인에 대한 처벌, 그 밖의 질투, 복수, 자기 방어 행위이다.

국가의 보호와 상업적 혜택을 누린 상류층의 범죄율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국가에 버림받았으며 상업적 혜택보다 근처의 주먹의 영향력이 큰 계층에서는 범죄율이 상류층만큼 줄어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문명화 과정은 폭력을 없애버린 것이 아니라 사회의 변두리로 몰아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장에서 간단하게 폭력의 역사를 살펴보았고, 2장에서는 국가가 폭력을 감소하는 <평화화 과정>에 대해서, 3장에서는 법과 경찰, 상업으로 촉발된 <문명화 과정>으로 인한 폭력의 감소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평화화 과정은 살인과 전쟁에서 절대적인 통제와 착취로 폭력을 이동시켰고, 문명화 과정은 폭력을 사회의 변두리로 몰아냈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절대적인 폭력의 수는 대폭 감소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다음 4-7장에서는 기분 좋은 소식이 우리를 기다린다. 앞서 <평화화 과정>과 <문명화 과정>에서는 국가의 보복이나 상업적인 이득이라는 미끼가 인간의 폭력을 감소시켰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며, 그런 폭력 제동장치가 사라졌을 때 언제나 상대방을 거꾸러뜨릴 기회만 엿보는 인간이 도사린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4-7장에서는 상대에게 감정 이입을 하고, 생명을 존중하고, 여성과 아동, 동성애자와 동물에 대한 권리를 존중하는 조금 더 ‘인간적인’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