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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주 Jun 29. 2022

면도날  - 한 구도자의 일대기

서머싯 몸

총평: 거장 서머싯 몸의 원숙함이 느껴지는 마지막 장편소설. 시대와 사회의 요구와는 다른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누군가의 삶을 지켜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주인공과 화자를 다르게 설정하면서, 주인공 이외의 다양한 주변 사람들의 인생 또한 조명하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면도날이라는 책의 제목은 다음과 같은 우파니샤드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 - 카타 우파니샤드

 구원을 향한 어려운 길을 걷는 ‘래리’, 그의 약혼녀였던 ‘이사벨’, 이사벨의 삼촌인 ‘앨리엇’, 이사벨의 남편인 ‘그레이’, 그 외에도 ‘소피’, ‘수잔’ 등이 등장한다. 화자인 ‘나’는 작가로 등장하는데, 서머싯 몸 본인을 어느 정도 투영하고 있다. ‘나’는 래리와 그 주변 인물들과 친분이 있으며, 모든 사건이 끝난 후 인물들과의 에피소드, 대화를 회상하며 독자에게 들려주는 형식이다. ​래리는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하고 그곳에서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다. 그 경험으로 말미암아 그는 사회적 성공, 부와 명예라는 목표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게 된다. 약혼녀인 이사벨과 그 문제로 인해 깨어지고, 세계를 떠돌며 인생의 의미를 찾아다닌다.

“그런데 왜 취직을 안 하겠다는 거야?”
“왜냐고? 난 돈에 관심이 없어.”
이사벨은 웃었다. “래리,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사람은 돈이 없으면 살 수 없어.”
“난 조금은 있어.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 만큼은 있다고.”
“빈둥거리는 거?”
“그래.”그는 미소를 지었다.
“래리, 서로 힘들어지게 정말 왜 그래.”이사벨이 한숨을 쉬었다.
“미안해. 나도 마음 같아선 그러지 않고 싶어.”
“그러지 않을 수 있잖아.”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잠시 말이 없었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을 때 한 말은 그녀를 깜짝 놀라게 했다.
“죽은 사람은, 정말로 죽은 사람처럼 보여.”

 ‘죽은 사람은, 정말로 죽은 사람처럼 보여.’ 동료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목격하며 삶과 죽음에 대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사벨은 래리를 사랑하지만, 그녀에게는 사교계, 파티, 호화로운 생활이 필수적이었기에 래리를 포기하고 그레이와 결혼하게 된다. 래리가 어떻게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는지가 이 책의 주된 관심사이지만, 이사벨과 그레이, 앨리엇, 소피 등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 또한 흥미진진하다. 20세기 초반의 유럽과 미국의 사교계,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1차 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유럽의 전쟁을 발판 삼아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이 되었으며, 발전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했다. 그 시절 미국은 세계 최고의 국가였고, 풍요로웠으며 발전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했다. 그런 풍요와 야망의 미국에서 많은 청년들은 자부심과 물질적 풍요를 바탕으로 사회에서 요구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수행했다. 하지만 또한, 참혹한 1차 대전을 겪고 난 후 허무감과 회의감을 겪은 사람 또한 많았다. 이 책에서는 양 쪽의 인물들을 모두 보여주면서, 등장인물과 떨어진 화자의 입장에서 양쪽 모두를 긍정한다.​


래리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고, 배우고, 경험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추구해야 할 것, 추구하고 싶은 것이 ‘자기완성’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멋 훗날 사람들이 좀 더 커다란 통찰력을 얻게 되면, 결국 자신의 영혼에서 위안과 용기를 찾아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어떤 대상을 숭배하고자 하는 욕구가 잔인한 신들에 대한 기억의 잔재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잔인한 신들의 비위를 맞춰 줘야 한다는 기억의 잔재라는 것이죠. 신은 제 안에 있는 게 아니라면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고 저는 믿거든요. 그렇다면 저는 누구를 혹은 무엇을 숭배해야 하는 걸까요? 저 자신일까요? 사람들의 정신적인 발달 수준은 저마다 다르죠. 그중 인도인들은 나름의 상상력을 통해 브라마와 비슈누, 시바, 여타의 수십 가지 이름으로 알려진 절대자의 현시를 발전시킨 겁니다. 절대자는 세상의 창조자이자 통치자인 이슈바라 안에 존재할 수도 있지만, 땡볕에서 일하는 농부들이 꽃을 따다 바치는 소박한 물신 속에 존재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인도의 그 수많은 신들은 개개의 자아가 궁극의 자아와 하나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수단에 불과한 셈이죠.”​

나는 래리를 물끄러미 보았다. “자네가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확고한 믿음에 매료되었는지 궁금하군.”​

“그건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저는 오래전부터 종교를 구원의 필수 조건인 것처럼 떠벌리던 종교 창시자들에 대해 서글픈 마음을 갖고 있었어요. 마치 사람들의 믿음을 얻어야만 자신도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들을 생각하면 고대 이교의 신들이 떠올랐죠. 독실한 신자들의 봉헌물이 없으면 힘을 잃고 마는, 그런 신들 말입니다. 아드바이타*는 믿음을 요구하지 않죠. 그저 실재에 다가가고자 하는 열렬한 열망만을 요구할 뿐입니다. 신이라는 것도 기쁨이나 고통처럼 확실하게 경험할 수 있는 그 무엇이라고 가르치죠. 현재 인도에는 신을 경험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아요. 제가 알기만도 수백 명이죠. 사실, 저는 인식을 통해 실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이후 인도의 현인들도 인간의 결점을 깨닫고 사랑을 통해 혹은 의로운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도 있다고 시인하긴 했지만, 가장 어렵고도 고귀한 구원의 수단은 단연 인식이라는 점은 결코 부인하지 않았죠. 인식이라는 수단은 인간의 가장 귀한 능력, 즉 이성이니까요.”​
“… 저는 인간이 세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이상이 자기완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고귀한 이상이지, 래리.”“그렇다면 그것을 추구하려 노력하는 게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요?”
“하지만 자네 혼자 그렇게 살아간다고 해서 미국인들에게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나? 미국인들은 늘 들떠 있고 부산하고 무지막지한 사람들이야. 게다가 극도로 개인주의적이지. 차라리 맨손으로 미시시피 강물을 막는 게 나을 걸세.”
“시도는 할 수 있잖아요. 물레도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거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도 한 사람이었어요.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작게나마 영향력을 갖고 있게 마련이죠. …”
 그는 야망도 없고 명예욕도 없다. 어떤 식으로든 유명해지는 것은 그가 무엇보다도 싫어하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선택한 삶의 행로를 따르며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는 데 만족할 것이다. 그는 겸손한 성격 때문에 자신을 타의 모범으로 내세우진 않을 것이다. 다만, 적절한 때가 되면 나방이 촛불에 모여들 듯 확신 없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그에게 이끌릴 거라고, 그리하여 궁극적인 만족은 오직 정신적인 삶을 통해서만 구할 수 있다는 자신의 믿음을 함께 나눌 거라고, 그리고 스스로 사심 없이 자제하며 자기완성을 추구하려 노력하다 보면 저술 활동이나 대중 연설 못지않게 사회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부분들만 본다면 이 책에서 보여주는 유일한 가치가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구도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 가치가 중심인 것은 맞다. 책 이름 자체가 구도를 뜻하는 <면도날>이며, 화자가 밝히길 이 회상을 하는 이유 또한 래리를 우리에게 말해주기 위해서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 다른 가치들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낮게 보거나 생각이 얕은 사람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바로 내 의도와는 달리, 이 글이 일종의 성공담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내가 등장시킨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 원하는 바를 얻지 않았는가? 엘리엇은 사교계에서 명성을, 이사벨은 막대한 재산을 확보하여 활동적이고 교양 있는 지역사회에서 확실한 지위를 얻었으며, 그레이는 안정적이고 수익성 높은 직업과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하여 6시에 나설 수 있는 사무실을 얻었다. 수잔 루비에는 안정을, 소피는 죽음을, 래리는 행복을 얻었다.  

 화자는 분명 래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 책을 시작했지만 얘기를 하다 보니 결국 주변 인물들 또한 자기 나름대로의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이 다른 ‘구도자’들에 대한 책과 다른 점이며, 화자의 특별한 위치에서 얻을 수 있는 강점이 아닌가 싶다. 예를 들면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 등이 있다. 그런 책들도 물론 훌륭하지만, 이 책 <면도날>은 다른 방향으로 훌륭하다. 헤세의 소설들의 주인공은 ‘구도자’ 혹은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찾는 사람’이며, 당연하게도 그 인물의 행동과 감정에 집중한다. 따라서 몰입감이 뛰어나고 소설이 한 방향으로 달려 나가 완결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헤세 소설 속의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하기 힘든 독자라면 책을 읽기 어렵거나 별다른 감정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 그에 비해 <면도날>은 화자가 주인공이거나 전지적 작가 시점이 아니다. 화자는 그저  래리와의 대화, 혹은 래리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서 전해 들은 내용을 독자에게 서술하는 위치에 머무른다. 래리에게 완전히 이입하지 않아도 충분히 래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어나갈 수 있다. 또한 다른 인물들의 삶 또한 조망하면서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을 피한다. 하나의 완결적인 이야기보다는 다양한 흥미로운 삶의 형태를 보여주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많은 독자들이 더 쉽게 읽고 다양한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점이 이 책이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랑을 받고 회자되는 이유가 아닐까.

 서머싯 몸은 1874년 생으로 1965년에 사망했다. 이 면도날은 1944년에 출판된 그의 마지막 장편소설이다. 자전적 성장소설인 <인간의 굴레에서>, 화가 폴 고갱을 모티브로 한 소설인 <달과 6펜스>와 함께 그의 대표 3대 소설이다. 수많은 대작을 써낸 그의 말년에 써낸 이 책은 그중에서 가장 원숙미가 느껴진다. <달과 6펜스>에서는 그 날카로움에 감탄했다면, 이 책은 시종일관 날카롭거나 무언가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날카로워야 할 때는 날카롭고 부드러워야 할 때는 부드럽다. 농담들과 표현들도 재미있다. 글쓰기에 통달하면 이런 글이 나오는 것일까, 하는 훌륭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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