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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주 Jul 15. 2022

마의 산 - 한 독일 청년의 교양과목 수강기

토마스 만

총평: 한 젊은이의 인생에 대한 고뇌와 결론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교양소설. 직업 선택과 진로에 대해,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줄거리 및 인용​


1900년 초반의 독일. 청년 한스 카스토르프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소에 취직을 앞두고 있다. 취직 전 건강을 위해 잠시 요양을 다녀오라고 의사가 권고를 하자, 카스토르프는 결핵을 앓고 있는 사촌 요아힘이 머물고 있는 알프스 산맥 위의 한 요양원으로 떠난다. 처음에는 2주간 머물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내는 동안 요양원의 의사인 베렌스는 카스토르프 또한 결핵에 걸려있다는 충격적인 진단을 내린다. 그렇게 2주였던 요양은 점점 길어지게 된다. 이 여행은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려는 청년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여행을 떠나 이틀만 지나면 사람은  삶에 아직 굳건히 뿌리를 박지 않은 젊은이가 특히 그렇듯이  의무, 이해관계, 근심과 희망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으로부터, 즉 일상생활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그것도 역으로 가는 마차 안에서 어쩌면 자신이 꿈꾸었을지도 모르는 것보다 훨씬 더 멀어지게 된다.

 계절과 날씨, 복장과 식사시간마저 아래와는 딴 판인 산 위의 요양원. 카스토르프 처음 도착했을 때 깔끔히 소독된 방에 들어간다. 나중에 그 방에 살던 사람이 죽고 난 후 곧바로 자신이 도착했음을 알게 된다. 그러고는 자연스레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와 함께, 작가는 카스토르프가 1900년대 초반의 독일에 살면서 일말의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 인간 주위의 비개인적인 것, 즉 시대 그 자체가 외견상 매우 활기를 띠고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희망이나 전망이 결여되어 있다면, 또 시대가 우리에게 희망도 없고 전망도 없으며 해결책도 없다는 것을 남몰래 인식시켜 주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시대에 대한 어떤 형태의 질문  즉 우리의 모든 노력과 활동이 지닌, 개인적인 의미 이상의 궁극적이고도 절대적인 의미에 대한 질문에 대해 공허한 침묵을 계속 지키고 있다면, 그러한 사태로 인한 모종의 마비 작용을 보다 솔직한 인간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거의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의 직업(조선소 엔지니어)과 시대에 대한 약간의 회의감, 죽음에 대한 생각, 모든 것이 낯선 장소. 이러한 것들이 모여 카스토르프는 깊은 생각에 빠진다. 일차적인 목적은 결핵을 치료하고 건강해지는 것이지만, 이제는 그것보다 원초적이며 근본적인 문제들 - 삶과 죽음, 인생의 의미, 직업 등 -에 대해 답을 구하는 것이 카스토르프에게 더 중요한 목적이 되었다. 후반부에는 의사가 카스토르프의 폐병의 완치를 선언하고 이제 그만 내려가도 된다고 말하지만, 그는 거절하고 더 머물기까지 한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한 번도 산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7년간 산 위 요양원에 머문다.

한스 카스토르프가 인생 근무의 의의와 목적에 관해 시대의 깊은 곳에서 그의 단순한 영혼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해답을 얻을 수 있었더라면, 애초에 이 위의 사람들 곁에 머무르기로 예정했던 날짜를 지금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 시점까지 연장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카스토르프는 혼자서 답을 찾지 않아도 되었다. 그에게는 스승들이 있었다. 한 명은 이탈리아 출신 계몽주의자 세템브리니다. 다른 한 명은 나프타라는 기독교 극단주의자이자 기독교적 마르크스주의자이다. 나프타는 항상 세템브리니와 논쟁한다. 주인공은 그들이 자신에게 해주는 말들, 그들 사이의 논쟁을 옆에서 지켜보며 많은 것을 배운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의 편도 들지는 않고 자신만의 결론을 내린다.

나프타의 견해에는  세템브리니의 견해에도 마찬가지로  물들지 않도록 하자. 이들은 둘 다 수다쟁이에 불과해. 한 사람은 음탕하고 불경스러우며, 다른 한 사람은 언제나 이성의 호각이나 불면서 미친 사람들도 각성하게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지. 그건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소리야. 오히려 속물근성이고, 단순한 윤리이며, 비종교적인 것에 불과해. 그건 틀림없어. 또한 난 키 작은 나프타에게도 동조할 수 없어. 신과 악마, 선과 악이 온통 뒤범벅이 된 그의 종교에도 당연히 동조할 수 없고 말이야. 사실 그의 종교는 개인이 거꾸로 추락하여, 공동체 속으로 신비롭게 침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저 두 사람의 교육자! 저들의 논쟁과 대립 그 자체가 뒤범벅에 지나지 않고, 싸움터의 혼란한 소용돌이에 불과한 것으로, 머릿속이 조금이라도 자유롭고 마음이 경건한 자라면 아무도 그런 것에 현혹되지 않을 거야. 귀족성에 대한 두 사람의 논쟁, 고귀함에 대한 토론! 죽음과 삶  병과 건강  정신과 자연, 이런 것이 서로 모순되는 것일까? 나는 묻고 싶어, 과연 문제가 되는 것인지 말이야. 아니야, 이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고, 또 어느 것이 고귀한가 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아. 죽음의 모험은 삶 속에 포함되며, 그런 모험이 없는 삶이라면 이미 삶이 아닐 거야. 그리고 인간의 상태가 신비스러운 공동체와 미덥지 못한 개별 존재 사이에 있듯이, 신의 아들인 인간의 위치는 그 한가운데에  모험과 이성의 한가운데  있는 거야.

 세템브리니와 나프타, 그리고 자신이 사모하는 여인인 쇼샤 부인과 후반부에 등장하는 페퍼코른. 또 사촌 요야힘, 그 밖에 요양원의 수많은 환자들과 의사, 간호사들. 그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며 대화하고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그는 결론을 내린다. “인간은 선(善)과 사랑을 위해 결코 죽음에다 자기 사고의 지배권을 내어 주어서는 안 된다.”라는 이 명제를 깨닫는 과정은 마치 부처가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는 과정처럼 묘사되어 있다.

마음속으로 죽음에 대해 늘 성실하게 임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죽음과 과거의 것에 대한 성실성이 우리의 생각과 술래잡기를 지배한다면, 그 성실성은 악의와 음산한 육욕과 인간에 대한 적대감으로 바뀐다는 것을 확실히 기억해 두자. 인간은 선(善)과 사랑을 위해 결코 죽음에다 자기 사고의 지배권을 내어 주어서는 안 된다.

그 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7년 만에 산에서 내려가 전쟁에 참여하는 것으로 소설이 끝이 난다.


생각

 현재 대학은 직업을 가지기 위한 직접적 수단 혹은 직업 교육의 현장이다. 이 책을 보자니 비단 오늘날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카스토르프 또한 대학에서 엔지니어에 필요한 지식은 습득했지만 '교양 과목'에 대해서는 특별히 생각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 그가 얼떨결에 산 위로 올라와서 결핵을 선고받고 요양원에 머물며 생각에 잠기는 것을 보고 있으면 몇몇 나라의 사람들이 떠오른다. 초-중-고에 걸쳐 대학 입학을 위한 공부에 매진하고, 직업을 가지기 위한 대학에 입학하고, 직업을 가지게 되고, 그때 회의감에 빠져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 이외에 대해 고민에 빠지는 것 자체를 사치라고 여기는 듯하다. 경쟁자는 많고, 좋은 일자리는 없고, 먹고 자는 데만도 만만치 않은 금액이 들어간다. 재능이 지금의 교육 환경에 운 좋게도 알맞거나, 부모님의 도움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다.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도 성공할 거라는 기대도 그다지 없다. 먹고살 수 있으면 다행이다.

“……시대 그 자체가 외견상 매우 활기를 띠고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희망이나 전망이 결여되어 있다면, 또 시대가 우리에게 희망도 없고 전망도 없으며 해결책도 없다는 것을 남몰래 인식시켜 주고 …… 그러한 사태로 인한 모종의 마비 작용을 보다 솔직한 인간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거의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토마스 만이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한 것이 나는 무엇보다 와닿았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그런 ‘모종의 마비 작용’에 의해 요양원에 남는 것을 택했다. 그것은 그가 모든 것을 떠나 홀로 산 위에 있어도 외롭지 않은 강인한 인간이며, 자신감이 있다. 결핵이라는 명분도 있었으며, 훌륭하고 다양한 스승들도 그의 옆에 함께 있었다. 무엇보다 부유하다. 7년이나 산 위에서 호화로운 요양원에 머물렀지만, 그 돈은 그의 재산에서 나오는 이자만으로 충분했을 정도다.

 많은 사람들은 그러지 못하다. 주변의 기대와 다르게 행동하면 외롭다. 먹고살기도 어렵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된다.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기에 시작도 하지 못한다. 직업을 구하기 위한 루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어김없이 면접에서 '쉬는 기간에 뭐 했어요?'라는 질문을 듣게 된다. 인생에 대한 고민을 했다고 대답을 한다면 면접관들을 웃길 수는 있겠지만 직장을 구하기는 어렵다. 이런 교양소설은 그런 청년들에게는 비현실적이고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소설로 보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의미, 삶과 죽음, 사랑. 그런 뜬구름 같은 것들에 대한 생각은 술을 먹든 게임을 하든 해서 빨리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다시 공부와 일에 매진하는 것을 사회는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소설을 직업을 선택할 즈음에 위치해 있거나 인생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보다는 던지는 것이 낫고, 고민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낫다. 걸어야 할 대상이 내 인생이라면, 보상과 효율성을 생각하기보다는 다른 것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총 3권으로 되어 있다. 합치면 1000페이지가량의 분량의 소설이다. 짧지는 않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 비해서는, 그리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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