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헨릭
총평: WEIRD 심리의 독특함의 근원을 찾아가는 이 여정에서 <개인,인구 집단의 사고방식과 도덕적 판단 기준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서로 다르다>, <문화적 진화가 심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라는 사실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이 사실이 주는 함의도 크지만, 수천 년간 문화와 제도, 인간 심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아보는 이 거대한 여정 자체만으로도 즐겁다.
책 내용을 설명하기 전에 인간 심리 성향에 대한 간단한 질문 5개를 던지려 한다. 이 질문들을 읽고, 찬성인지 반대인지 가볍게 생각해 보자.
(1) 관계나 공동체, 사회적 역할보다는 개인의 능력, 특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2) 당신이 친한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는데, 친구가 보행자를 친다. 친구는 60킬로 제한에서 80킬로로 달렸다. 당신 이외의 목격자나 기계는 없다. 당신이 거짓말을 하면 친구에게 가해질 법적 처벌이 약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친구에게 거짓 증언을 해주는 것이 옳지 않은 행위이며 친구는 그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3) 일반적으로 당신은 사람들을 대할 때 대다수 사람들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4) 같은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실수로 잘못을 저지른 행위자보다 의도적으로 저지른 행위자가 더 무거운 비난과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5) 토끼가 고양이와 당근 중 어느 것과 더 잘 어울리는가? (고양이 라면 예, 당근이라면 아니오)
위의 5개의 질문에 대해 ‘예’라고 대답하는 비율이 높았다면, 당신은 WEIRD 일 확률이 높다. WEIRD는 ’특이한’이라는 그 자체의 뜻과 더불어, 서구의 Western, 교육 수준이 높고 Educated, 산업화된 Industrialized, 부유하고 Rich, 민주적인 Democratic 사회에서 자란 사람이라는 뜻이다.
WEIRD는 (1) 개인주의적이며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자신’으로 일관되게 행동하고자 하며 그렇지 못한 모습을 위선이라 생각한다. (2) 법, 능력, 노력, 자격 같은 공평한 규칙이나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3) 낯선 사람, 익명의 타자를 상당히 신뢰하고 그들에게 공정하고 정직하게 대하며, 족벌주의나 혈연에 의한 편의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4) 타인을 평가할 때 심리 상황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5) 전체론적 사고보다는 분석적 사고를 한다.
WEIRD는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했던 인류들과 비교할 때, 그리고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70억 인구에거 비교할 때도 수많은 심리 성향이 극단에 위치할 정도로 독특한 소수에 해당된다. 그런데 미국, 호주, 서유럽 등 우리가 흔히 서구라고 부르는 지역에서는 다수를 차지한다. 최근 급속히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서구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젊은이들도 이와 같은 심리 성향을 띈다. 그들은 어떻게 이런 성향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을까?
… 내가 이 책에서 답하고자 하는 질문들은 이런 것이다. WEIRD는 어떻게 그렇게 독특한 심리를 갖게 된 걸까? 그들은 왜 다른 걸까?
나는 이 수수께끼를 따라 고대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기독교의 한 교파가 특정한 묶음의 사회 규범과 믿음을 확산시켰음을 살펴볼 것이다. 이런 사회 규범과 믿음은 수 세기에 걸쳐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결혼과 가족, 유산과 소유의 개념을 극적으로 바꿔놓았다. 이처럼 가족생활이 근본에서부터 변화하면서 일군의 심리적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새로운 형태의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비개인적 상업이 활성화되는 한편 상인 길드와 자치도시에서부터 대학과 초지역적 수도회에 이르기까지 자발적 조직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 조직들은 점차 개인주의적인 새로운 규범과 법률에 따라 운영되었다. WEIRD 심리학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WEIRD의 종교와 결혼, 가족의 독특한 특성을 분명하게 밝힐 것이다.
WEIRD는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천 년 전 유럽에서 생겨났고, 이 성향들로 인해 유럽에서 다른 지역들보다 먼저 산업혁명이 태동하고, 시장경제와 과학, 법률과 정부가 탄생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첫 단추는 기독교였다. 어떻게 이런 논리가 가능한지 인류의 역사를 처음부터 천천히 살펴보도록 하자.
인류 집단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는 무엇이었을까. 수렵채집사회다.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기 이전에는 모두 이동을 하며 수렵과 채집을 통해 먹을 것을 구했다. 이때는 커다란 연결망을 통해 넓은 위치의 자원들 - 과일나무, 물웅덩이, 부싯돌 채석장 등 - 을 파악하고 이용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회는 친족 기반 제도를 잘 활용한 사회, 즉 씨족사회였다. 결혼은 아버지와 아이, 배우자 사이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기혼 남자는 부인, 아이, 부모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가족, 부인의 친척, 형제의 부인의 가족, 사위의 가족 등과도 끈끈하게 연결된다. 혈족과 인척을 통해 수렵채집인 사회는 커다란 연결망을 만들었고, 이 연결망은 구성원들의 생존력을 향상시켰다.
이 과정에서 여러 제도와 사회 규범들이 생겨났다. 예를 들면, 식량 공유에 대한 규범이다. 어떤 부족은 사냥꾼이 자신이 사냥한 짐승의 특정한 부위를 먹지 못하는 규범이 존재한다. 다른 부족에서는 자신이 기르는 가축의 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된다. 이러한 규범은 구성원들 간의 식량 공유를 장려하며 결과적으로 집단의 생존력을 상승시킨다. 친족 기반 제도에도 수없이 많은 규범이 있다. 근친상간을 금하고, 부계사회에서 형제가 죽었을 때 형제의 자매와 결혼해야 한다. 이러한 규칙은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규칙들이다. 의도가 명확하게 알려진 규칙은 거의 없었다. 사냥꾼이 특정 부위를 먹지 못하도록 하는 규칙은 식량 공유를 장려하기 위한 규칙이지만, 실제로는 그 부위를 먹으면 신에게 버림을 받는다거나 운이 나빠진다는 식으로 설명되었다. 맨 처음에는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도는 남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규칙들을 보고, 어떤 설계자가 존재해서 규범들을 죄다 의도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세계 곳곳에는 수많은 집단이 존재했으며 그들의 제도와 규범은 제각각이었다. 그중 제도와 규범들이 우연히 현실의 상황과 잘 들어맞아 생존력이 우수한 집단들이 그렇지 못한 집단들을 집어삼켰고, 그 제도와 규범은 살아남아 후대에 전달되었다. 즉 집단 간 경쟁에서 살아남은 문화가 계속해서 전파되었다. 문화의 진화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화의 진화와, 인간 심리의 진화가 함께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문화와 인간의 ‘공진화’라고 말한다. 인간의 유전자는 짧은 시간에 쉽게 변하지 않는다. 수렵채집 시기는 수만 년 전이지만, 아직도 우리 유전자의 대부분은 수렵채집인의 유전자이다. 하지만 문화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문화가 변화면 규칙이 변하고, 생활이 변한다. 거기에 사람은 적응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특정한 심리를 가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문화와 심리의 공진화다.
수 만년이 넘는 수렵채집 시기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인간 심리의 세 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규칙을 잘 받아들인다. (그렇지 못하면 집단에서 배척당하고 죽게 된다.)
둘째, 집단 내에서 상호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지 못한 집단은 생존력이 약하므로 다른 집단에게 집어삼켜지거나 멸종했다.)
셋째, 자신과 다른 종족 표지 (언어, 의복, 다른 관습)를 가진 대상에게는 비우호적이다.
문화로 인해 심리가 바뀐다. 개인적, 일시적일 뿐만 아니라 집단적, 장기적으로도 그렇다. 그렇다면 만 이천 년 전 농경사회가 시작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화와 인간 심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농경사회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쉴 새 없이 이동하며 먹을 것을 구하지 않아도 되었다. 기후가 바뀌며 다양한 작물을 기르기에 적합한 환경이 되면서 사람들은 정착해 살기 시작했다. 전투가 줄어들고, 아이를 낳아 기르기 좋은 환경이 되면서 집단의 규모는 자연스레 점점 커졌을 것이다. 하지만 규모에는 한계가 있었다.
20세기 중반 세픽Sepik이라는 뉴기니의 외딴 지역에서 연구하던 인류학자들은 마을마다 주민이 약 300명, 그 가운데 남자가 80명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집단의 300명은 몇 개의 부계 씨족으로 나뉘었다. 300명이 넘으면 씨족 간 분열이 생기고 작은 집단들로 갈라졌다. 이러한 현상은 특수한 것이 아니라, 씨족 사회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씨족 사회는 친족 기반 제도, 즉 결혼을 통해 만들어진다. 특별한 방법 없이는 아무리 일부다처를 이용해 위로 아래로 옆으로 연결된다고 하더라도 규모가 100명이 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친족 기반을 가진 씨족이 여러 개 모이면 결혼이나 간통, 생존 등에 대한 여러 문제가 발생해 집단의 규모가 줄어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런데 이 뉴기니 세픽 지역에는 하나의 예외가 있었다. 일라히타Ilahiti 라는 이름의 아라페시족Arapesh 공동체는 39개의 씨족을 통합해 2500명이 넘는 집단을 형성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일라히타 마을의 존재는 생태적 또는 경제적 압박이라는 근거로 300명 규칙을 설명하는 간단한 가설들을 잠재웠다. 일라히타의 환경과 기술은 주변에 있는 공동체의 것과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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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말 인류학자 도널드 투진Donald Tuzin이 이 부족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가 알고자 했던 것은 단순했다. 일라히타 마을은 어떻게 규모를 키울 수 있었을까? 왜 다른 모든 공동체와 달리 붕괴하지 않았을까? 투진의 자세한 연구를 보면, 일라히타의 사회 규범, 그리고 의례와 신들에 관한 믿음이 씨족 전체를 연결하는 정서적 다리 역할을 하면서 내부의 화합을 촉진하고, 마을 전체에 깊은 유대감을 심어주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문화적 측면들이 일라히타의 여러 씨족과 작은 마을들을 하나의 통일된 집단으로 연결함으로써 더 큰 규모로 협동하고 공동 방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단순한 친족 기반 제도로는 수 천명의 사람들을 협동하게끔 만들 수 없었다. 필요에 의해서 다른 씨족과 협동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현재를 사는 사람들은 자신, 혹은 자신이 포함된 집단이 홀로는 모든 것을 다 하지 못하기에 다른 사람들과 필연적으로 협동한다. 하지만 씨족 사회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한 씨족은 얌을 재배하고, 돼지를 기르고, 성년식을 하는 등 모든 행위가 가능하다. 하지만 일라히타의 신들은 그렇게 홀로 살아가는 것을 금지하여 씨족끼리 강제로 협력하도록 명령했다. 일라히타의 신들은 씨족 간의 협력을 부추기는 여러 제도를 만들었고 다양한 의례에 참여하도록 했으며, 규율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벌을 내렸다. (라고 사람들은 믿었다.) 일라히타 마을의 제도들은 친족 기반 제도라는 수만 년 간 전해져 내려온 제도를 바탕으로 하여, 친족과 무관한 제도를 발전시켰고, 그 결과 마을의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 씨족 사회에서 족장 사회로 나아간 것이다.
족장 사회는 친족과 무관한 여러 제도를 통해 발전했지만, 그 본질에는 여전히 친족 기반 제도가 있었다. 족장 씨족은 다른 씨족들과 혼인 관계를 통해 연결되었다. 족장 사회의 규모가 수만 명으로 커지면서 족장 씨족이나 그들과 혼인을 통해 연결된 씨족들은 엘리트 계급이 되었고, 그렇지 못한 씨족들이나 전쟁을 통해 점령되어 합병된 씨족들은 하위 계급이 되며 계층화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계층화가 이루어지고, 관료제, 세금 징수, 분쟁에 대한 판결, 의례 수행 등의 제도들이 생기면서 전근대 국가로 서서히 발전한다. 이 발전을 위해서는, 일라히타의 예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일라히타는 신과 의례, 사회조직을 결합한 덕분에 공동체의 규모가 몇천 명으로 커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사례는 또한 공동체가 의례를 통해 연대를 구축하는 힘에 주로 의존하는 것의 한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일라히타의 유력한 의례는 다른 소규모 사회에서 널리 활용되는 의례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사회적 결속을 형성하지만, 그 효과는 개인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상호작용할 필요성에 의해 제한된다. 한층 더 규모를 확대하고, 복잡한 족장 사회와 국가를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해 문화적 진화는 어쨌든 초자연적 존재, 업보 karma 같은 신비로운 힘, 천국과 지옥 같은 다른 세계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는 낯선 이들 사이의 광범위한 연결망과 같은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다.
친족과 무관한 제도의 발달은 집단의 규모를 증가시켰다. 하지만 단순한 신과 의례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초기 수렵채집인 사회에서부터 신은 존재했다. 그 신들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고, 도덕적으로도 모호했다.씨족사회와 종족 사회를 거치면서, 신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몇 가지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초자연적 처벌의 발전, 신의 도덕적 관심의 확대, 정치적 지도부의 정당성 획득, 내세 신앙의 성격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여러 특징을 가진 종교는 공동체의 사람들을 끈끈하게 엮여주며 복잡한 족장 사회와 전근대 국가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발전 속에서 현재까지 존재하는 여러 종교들이 기원전 500년 무렵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수백 년 동안 지중해부터 인도까지 휩쓴 신과 신의 제재에 관한 믿음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원전 500년 무렵부터 특정한 행동에 상과 벌을 주는 능력을 완전히 갖춘 보편적 신(또는 우주적 힘)을 지닌 새로운 종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경쟁에서 현대까지 살아남은 종교로는 불교, 기독교, 힌두교 등이 있다. 나중에는 이슬람이 합류했다.
기원전 200년 무렵부터 이와 같은 보편 종교들은 다양한 형태로 세 가지 핵심적 특징을 띠었는데, 이는 인간 심리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첫 번째 특징은 정해지지 않은 내세이다. 이 종교들의 핵심에는 죽음 이후의 삶이나 일정한 형태의 영원한 구원에 관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내세나 구원은 생전에 특정한 도덕규범을 준수하는지에 따라 정해진다. 천국, 지옥, 부활, 윤회가 이런 개념들이다. 두 번째 특징은 자유의지로, 대다수 보편 종교는 지방적 규범에 어긋나거나 전통적 권위에 저항하는 것일지라도 ‘도덕적 행위’를 선택하는 개인의 능력을 강조했다. 여기서는 개인들의 자유로운 선택이 내세의 운명을 규정한다. 세 번째는 도덕적 보편주의로, 이런 일부 종교들의 도덕규범은 신자들이 모든 민족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믿는 신법으로 발전했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바뀌며 집단의 규모가 커지는 과정에서 종교를 가진 집단이 경쟁에 더 유리했다. 여러 종교가 만들어지고, 종교가 사람들의 생활을 관장하면서 인간 심리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정해지지 않은 내세, 자유의지, 도덕적 보편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이 심리 요인들은 더 낮은 범죄율과 더 빠른 경제성장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여기까지는 WEIRD 지역에서만 일어났던 일이 아니라, 지구 전역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기원전 500년에 보편 종교가 등장하고 약 1000년까지, 보편 종교는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었다. 보편 종교가 등장했을 때에도 대다수의 사회와 국가는 친족 기반 제도에 의해 지탱되었다. 가족과 가문의 힘이 종교보다 강했고 종교는 국가 전반에 걸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 못했으며 한 나라에 여러 종교가 다투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로마 가톨릭교회가 채택한 한 전략과 그 결과에 대해서 알아보자.
많은 이들은 WEIRD 가족의 독특한 성격이 산업혁명과 경제적 번영, 도시화, 근대 국가 차원의 제도가 낳은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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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럽에서는 역사적 순서가 정반대였다. 첫째, 서기 약 400년에서 1200년 사이에 유럽의 많은 부족적 인구 집단들이 지닌 집약적 친족 기반 제도가 서서히 퇴화하고 해체됐으며, 결국 완전히 파괴되었다. 로마 가톨릭교회(이하 ‘서방 교회’ 또는 단순히 ‘교회’로 지칭한다)로 발전한 기독교의 한 분파가 주범이었다.
종교단체도 국가나 다른 사회 조직과 마찬가지로, 영향력을 넓히는 것이 목적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적들보다 더 많은 사람과 돈을 모아야 한다. 서방 교회에는 다양한 적들이 있었다. 조상신이나 토르나 제우스 같은 부족 신들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다른 분파들과도 경쟁해야 했다. 또한 부족과 가문에 대한 충성심, 즉 친족 기반 제도와도 경쟁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교회는 혼인에 대한 규율, 즉 ‘결혼 가족 강령’으로 그 경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했다.
교회의 결혼 가족 강령은 의도적으로 만든 것도 아니고, 초기에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으며, 하나의 프로그램도 아니었다. 우연히 발생해 승리를 거둔 잡동사니 같은 여러 정책들을 수백 년에 걸쳐 모으고 다듬으면서,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냈다. 결혼 가족 강령은 4세기 무렵부터 13세기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견고해지고 뚜렷해졌다.
결혼 가족 강령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한다.
1. 혈족 간 결혼을 금지 (사촌 및 육촌, 심지어 14촌까지도)
2. 인척과의 결혼을 금지 (예시: 남편이 죽은 후 남편의 형제)
3. 일부다처를 금지
4. 비기독교인과의 결혼을 금지
5. 대부모 제도 확립
6. 입양 금지
7. 신랑과 신부가 공개적으로 결혼에 동의할 것을 요구 (중매결혼보다는 연애결혼)
8. 신혼부부의 독립 장려
9. 개인적 자산 소유, 유서로 상속 권장
이러한 제도들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나하나 뜯어보면 명확하다. 친족 기반 제도는 결혼에 의해 혈족과 인척을 늘려가며 세력을 확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혈족과 인척 간 결혼을 통해 유대를 공고히 해야 하며, 일부다처가 필수적이다. 입양, 중매결혼, 여러 사회제도(형제가 죽으면 형제의 부인과 결혼해야 하는 등의)를 사용해 그 유대가 끊기지 않도록 노력했다. 결혼 후에도 같은 집에 살거나 같은 마을에 살면서 하나의 가족으로 생활했으며, 개인의 자산이 아닌 가문의 자산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즉, 결혼 가족 강령의 모든 항목은 친족 기반 제도의 힘을 약화시키고 교회에 힘을 집중시키는 방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속에 대한 항목은 특히 중요하다. 일부다처나 입양, 재혼을 금하기 때문에 물려줄 자식이 없는 사람들이 생겼고, 그들은 내세의 행복을 보장한다는 교회의 속삭임에 의해 죽기 전 재산을 교회에 기부하고는 했다. 이 방식은 교회의 주된 부 축적 수단이었다. 앞서 우리는 수렵채집 사회와 종교가 인간 심리에 미친 영향을 알아보았다. 그 영향들은 세계 전반적으로 펼쳐졌다. 그렇다면 결혼 가족 강령을 1000년 이상 겪은 유럽 사람들의 심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결혼 가족 강령이 바꾼 심리는 간단하다. 이 글의 첫머리에서 다루었던 WEIRD의 심리인 개인주의, 공평한 규칙 선호, 낯선 사람에 대한 높은 우호, 의도 중시, 분석론적 사고 등이 바로 그것이다.
결혼 가족 강령을 오래 경험할수록 타인에 대한 순응도가 낮아지고 (개인적이 되고), 친구를 돕기 위해 법정에서 거짓말을 하는 비율이 감소 (공평한 규칙 선호) 하는 등 WEIRD 심리가 강해진다. 이 결과는 소득, 교육, 종교 교파 등의 다른 요소의 영향을 통계적으로 제거해도 유의하다. 이 심리는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기본적인 경제 구조에 대해 생각해 보자. 타인과의 거래, 무역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수렵채집 사회나 부족사회, 전근대 국가를 생각해 보자. 당신이 곡식을 물고기로 바꾸고 싶다. 옆 부족에 곡식을 들고 찾아간다면, 그들은 당신을 죽이고 곡식을 차지하지 않을까? 거기다 만약 멀리까지 찾아가야 한다면 무역을 할 이유가 있을까?
그럼에도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사회 전역에서 거래가 이루어졌다. 대자석red ocher, 바구니, 깔개, 수정, 부메랑, 그밖에 많은 것들이 여러 종족 언어 집단 곳곳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따금 대륙을 가로질러 이동하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 답은 수백, 심지어 수천 마일에 걸쳐 뻗어 있는 폭넓은 연결망 속에 한데 연결된 개인 간 관계의 연쇄를 따라 교역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는 데 있다. 사회적 유대를 만들어내고 강화하는 친족 기반 제도는 결혼과 공동체 의례 등을 다스리는 사회 규범을 수반했다. 장거리 거래 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 전문화된 일군의 규범과 의례도 존재했다.
초기 무역은 친족 기반 제도에 의해서 유지되었다. 또한 초기 시장은 우리나라의 5일장과 유사하게 정해진 장소에서 특정한 날짜에 이루어지는 정기적 행사로 시장이 발달되었다. 이 시장 안에서는 흔히 폭력과 도둑질에 대한 신성한 금기가 존재했지만, 그 영역 밖으로 나가면 그런 제한이 없었기에 거래를 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강도를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초기의 무역과 시장에서는 비개인적 거래, 즉 익명의 사람들끼리의 거래가 일어나기 어려웠다. 비개인적 거래가 활발히 일어나야만 물질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경제적 번영이 가능해진다. WEIRD 심리의 여러 특징들은 비개인적 거래에 유리하다. 그 후 경제력을 바탕으로 11세기 중세 유럽에서는 다양한 도시 공동체가 발달했다. 농촌에서는 평생 가족, 혹은 다른 몇몇 가문들과의 교류가 전부이지만, 도시 공동체에서는 다양한 지역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경쟁을 통해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기술을 개발하며 점점 더 발전을 이루었다. 이러한 도시 공동체는 15세기 이후 신항로와 신대륙 발견을 통한 상업 혁명을 일으킨 주체였으며, 여러 기술의 발전을 통해 산업 혁명을 일으킨 뿌리였다.
비슷한 시기의 중국에서는 전혀 다른 형태로 무역이 발달했다.
중국의 광대한 지역에 걸친 거대한 교역의 흐름을 뒷받침한 것은 씨족의 유대와 주거의 연계, 개인적 관계로 연결된 채 흩어져 사는 상인 디아스포라 집단이었다. 가령 후이족回族 상인 길드는 12세기부터 양쯔강과 그 너머를 따라 이뤄지는 교역을 지배했다. 하지만 이를 ‘길드’라고 부르는 것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 유럽의 길드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많은 부계로 이루어진 일종의 거대한 씨족 집단이었다. 재산은 씨족이나 한 혈족이 공동으로 소유했고, 재산을 사용하고 수익을 나눌 수 있는 권리는 혈통과 경제적 기여에 좌우되었다. 서로 다른 부계를 공통 조상으로 연결하는 족보가 만들어졌고, 이 족보를 통해 후이족 상인들 사이에 상업 연락처와 연줄을 정리한 자료와 도로 지도가 제공되었다. 후이족 혈족 사이의 결속은 혈족들이 서로 신용과 자본을 확대하는 데 필요한 신뢰를 창출했다. 후이족의 사업체는 혈족 성원들과 하인들을 직원으로 두었다. 이 세계에서 각기 다른 지역들이 상업화되는 정도는 친족 기반 유대가 정교해지고 이런 혈족 조직이 세력을 키우는 것과 나란히 증가했다. 씨족은 후이족 빈민을 위한 자선과 후이족 노인 돌봄, 유력한 공직을 얻을 만큼 유망한 후이족 학자들을 위한 교육 기금 같은 공공재를 제공했다. 후이족 상인들이 상업을 지배하자 ‘후이족이 없으면 장이 서는 도시도 없다’는 말이 널리 퍼졌다.
교회로 인해 친족 기반 제도가 무너진 유럽과 달리, 중국이나 이슬람 등 유럽 바깥에서는 무역이 친족 기반 제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며 비개인적 거래는 활발하지 못했다. 또한 자치가 가능한 도시 공동체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15세기에 서유럽 전역에 도시 공동체가 존재했지만, 중국과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자치 도시 공동체가 하나도 없었다. 이러한 차이가 경제, 법률, 정치 등에서 큰 차이를 냈으며, 그것이 현재의 불평등이 발생한 시작이었다.
1068년 이슬람 학자 이븐 아흐마드 사이드는 유럽을 여행하고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과학을 일구지 못한 이 집단의 다른 민족들은 사람보다는 짐승에 더 가깝다. 최북단, 그러니까 일곱 기후 중 마지막과 인간 거주 한계선 사이에 사는 이들의 경우에 천정선天頂線과 비교해서 태양이 매우 멀기 때문에 공기가 차고 하늘에 구름이 많다. 따라서 그들은 기질이 냉랭하고, 체액이 진하며, 배가 불룩하고, 피부가 하얗고, 머리카락이 길고 부드럽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리한 이해력과 명료한 지능이 부족하며, 무지와 냉담, 분별력 부족, 어리석음 등에 압도당한다.
두 번째 밀레니엄 초반부만 하더라도 중국, 인도, 이슬람 문화권의 제도와 과학이 압도적으로 우수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차이로 인해 1300-1400년 경에는 유럽 대부분이 도시화되고 법률, 건축, 과학기술 등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럽에서 15세기 상업 혁명과 18세기 산업 혁명이 일어났다. 그 이유로 잉글랜드의 석탄자원, 유럽 해안선의 길이,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요인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교회가 유럽의 친족 제도를 해체함으로 인해 발생한 심리적 변화라는 것이 이 책의 주요한 주장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서는 1000년의 지구에서 발생한 불평등을 대부분 설명한다. 유라시아와 중동 지역의 기후와 동식물 분포 등의 지리적 요인은 초기 국가를 건설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으며, 더 크고 복잡한 사회와 체계를 만드는 데 유리했다. 유럽에서는 초기 국가의 출현, 농업의 발달도 늦었다. 하지만 초기 조건에 따른 차이는 1200년 무렵부터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다. 또한 초기 조건의 차이로는 산업 혁명이 왜 유럽에서 일어났는지, 어떻게 지구 전역에 유럽의 식민지가 존재할 수 있었는지, 현재 국가 파워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다. 교회의 친족 기반 제도 해체에서 비롯된 심리와 제도의 공진화를 통해 이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
개인과 인구 집단들이 지각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추론하고,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방식에서 서로 다르다는 것이 중요할까? 또한 문화적 진화가 이런 차이를 만들어냈으며, 이렇게 변화하는 심리적 풍경이 우리의 정부와 법률, 종교와 상업의 특징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중요할까?
정말로 중요하다. 이런 견해는 우리가 어떤 존재이며, 우리의 가장 소중한 제도와 믿음, 가치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인지에 관한 이해를 바꿔놓는다. 인권, 자유, 대의민주주의, 과학같이 많이 알려진 서구 문명의 이상들은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순수한 이성이나 논리를 기리는 기념물이 아니다.
이 책은 <문화와 인간은 공진화한다.>라는 주제와 함께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 알려진 ’인간 심리‘에 대한 연구들 중 다수가 서구 도시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이며, 일반적인 심리라고 알려진 많은 것들이 사실은 WEIRD 심리라는 사실이 최근에 와서야 알려졌다.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학자들도 많다. 정책 결정자의 입장이라면 이러한 심리 차이를 이해하고 적합한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제도가 인간 심리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사실 또한 인지해야 한다.
- 또한 이러한 사실은 우리나라의 세대 차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MZ 세대는 그 이전 세대와 왜 그리 다른 걸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최근 급격한 서구화를 겪었다. 이전 세대는 친족 기반 제도에 따라 자랐지만, MZ 세대는 그렇지 않다. 부모와 자식은 유전자를 공유하지만, 자란 환경과 문화는 상이하다. 그로 인해 심리가 큰 차이가 나며, 이것이 세대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은 틀린 것이 아니라, 태어나고 자라며 겪은 문화가 다르기에 발생한 결과다. 왜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작이 될 수 있다.
- 세계는 점점 더 빠르게 발전한다. 지금 20대가 자란 환경과 지금 태어난 세대가 자란 환경은 매우 다르다. 따라서 다음 세대의 심리는 매우 상이할 것이다. 지금의 세대 차이는 별것 아니게 될 확률이 높다.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이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와 심리의 공진화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WEIRD 심리의 독특함의 근원을 찾아가는 이 여정에서 <개인과 인구 집단의 사고방식과 도덕적 판단이 서로 다르다>, <문화적 진화가 심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라는 사실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이 사실이 주는 함의도 크지만, 수천 년간 문화와 제도, 인간 심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아보는 이 거대한 여정 자체만으로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