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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주 Jan 04. 2024

여행 전체는 계획한 대로, 하루하루는 내키는 대로

주간 여행 에세이 5

 태평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 멕시코로 가는 것을 첫 일정으로 하여 남미 대륙의 대부분의 국가를 돌아보고, 대서양을 건너 유럽의 몇몇 국가들을 본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이번 여행의 루트다. 어떻게 하다가 이런 루트를 선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세계여행을 가고자 결심한 것은 대학원을 그만두던 때였다. 더 늦기 전에 보지 못한 곳들을 보고 싶었다. 지혜와 함께 가보고 싶은 장소를 리스트 업했다. 나는 스코틀랜드(스페이사이드와 아일라섬) 위스키 양조장들과 아일랜드 더블린의 기네스 공장을 가 보고 싶었다. 지혜는 대학생 시절 일주일 남짓 다녀온 스페인 순례길을 풀코스(약 40-50일)로 가자고 제안했다. 아쉽게도 당장 갈 수는 없었다. 나의 군 문제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년 반 동안 현역으로 입대하는 대신 학위를 이용한 석사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선택했다. 기간은 3년으로 현역의 두 배이지만, 그동안 월급을 받으며 여행 자금을 모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택했다. 여행을 기다리는 이 3년간의 기간 동안 가고 싶은 여행지는 점점 더 많아지고 구체화되었다. 리스트에 있는 국가들의 위치에 따라, 영국에서부터 시작해 스페인을 지나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동유럽을 거쳐 터키를 여행하고, 동남아시아에서 여행을 마무리하는 루트를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전문연구요원의 끝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언제 여행을 떠날 것인지 구체적으로 결정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지혜와 나의 상황에 따른 여러 가지 케이스를 고려한 결과 10월 즈음에 여행을 떠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라 결정했다. 그런데 겨울에는 스코틀랜드가 춥고, 위스키 양조장들도 대부분 투어를 진행하지 않는다. 그래서 순례길을 먼저 갈까, 아니면 루트를 반대로 동남아시아부터 서쪽으로 진행할까, 하는 여러 생각을 하며 정보를 찾아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아메리카 대륙을 떠올렸다.


 떠올린 계기는 디즈니 영화 <코코>였다. <코코>는 멕시코의 ‘망자의 날 Dia de Muertos’ 축제를 소재로 한 영화다. 망자의 날은 영미권의 핼러윈과 유사하다. 해골 모양의 장식물을 만들고 해골 분장을 하며, 멕시코 마리골드와 죽은 자들의 사진으로 장식한 제단을 만들어 죽은 자를 기린다. 2015년에 개봉한 <007 스펙터>, 2017년에 개봉한 <코코>의 영향으로 망자의 날 축제를 위해 찾아온 관광객들이 많아지고, 퍼레이드가 성대하게 열리는 추세라고 한다. 망자의 날 기간은 10/31 - 11/2로, 마침 여행을 시작하는 10월 중순에 가기에 딱 좋다. 멕시코 괜찮은데? 한 번 가볼까? 그런데 좀 위험하다던데 괜찮을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멕시코에 대해 더 찾아보기 시작했다. 멕시코는 의외로 우리에게 잘 맞았다. 테킬라와 타코의 고향이고, 자연은 아름답고 물가는 저렴했다.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대체 왜 이런 장소를 아직 몰랐을까? 하는 이야기를 서로 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 먼 아메리카 대륙까지 가는데 멕시코만 보고 바로 유럽으로 떠나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근처 다른 나라들도 둘러보면 좋지 않을까?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그곳에는 값싼 고기(칠레산 삼겹살, 아르헨티나산 소고기)와 남미 대륙의 와인, 춤과 흥으로 가득찬 도시들, 화산, 마추픽추, 아마존, 우유니 사막이 있다. 또한 터키나 동남아는 나중에 몇일이나 일주일 정도만 시간을 내도 갈 수 있지만, 남미 대륙은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첫 여행지를 멕시코로 정하게 된, 그리고 남미 대륙 전체를 여행하기로 한 이유다.

 나라는 정했으니, 세부적인 일정을 짜야 한다. 지혜와 나도 그렇게 판단하고 멕시코에서 세부적인 일정을 짜기로 했다. 일단 축제는 보기로 했으니 축제 기간 동안은 멕시코시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어디를 갈지 멕시코 도시들을 찾아보았다. 오악사카는 몰레와 메즈칼의 산지고, 과달라하라에는 데킬라라는 지역이 있고 … 이 도시는 3일, 저 도시는 7일, 이 도시에서는 여기랑 여기는 가야 하고 … 이런 식으로 한동안 계획을 세웠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게 계획대로는 될까? 이런 계획이 의미는 있을까? 갔는데 더 좋은 계획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 앞의 도시들에서 시간을 다 보내서, 더 좋은 곳을 발견했는데 머무를 여유가 없으면 어떻게 하지? 이러저러한 생각 끝에 다음과 같은 규칙을 만들었다.

여행 가기 전에 꼭 준비해야 하는 것들 - 여권, 비자, 출입국 관련 서류, 보험, 예방접종 등 -은 꼭 준비하자. 그리고 여행 프로그램이든, 책이든, 인터넷 글이든 이것저것 재미있어 보이는 것들을 왕창 보고 머릿속에 집어넣자. 세부적인 일정은 가서 내키는 대로 일정을 정하자!

 아무리 무계획에 즉흥적으로 여행을 간다 하더라도, 큰 틀의 계획은 세워야 한다. 출국 티켓이 없으면 아예 입국을 시켜주지 않는 나라가 대부분이고, 비자가 필요한 몇몇 나라도 있고, 무비자로는 여행 일수가 제한되는 곳도 있다. 남미나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는 황열병 등의 예방접종도 필수다. 이러한 큰 틀에 대해서는 조사하고 대비하여 계획해야 한다. 하지만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내키는 대로 가장 재밌어 보이는 선택을 하면 된다. 지금 생각한 일정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일정이 짧아질 수도 늘어날지도 모른다. 맨 처음은 유럽과 터키로 시작된 여행계획에서 정작 터키는 빠지고, 유럽은 뒤로 밀려나고 남미가 메인이 된 것 처럼.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주 훌륭하고 여기서밖에 할 수 없는 것들을 내가 놓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훌륭하게 준비해도 놓치는 것은 틀림없이 있다. 반대로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얻는 즐거움은 더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지나온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 현재를 감사하고 음미하는 것. 여행은 언제나 인생의 은유지만, 장기 여행은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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