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여행 에세이 4
한 곳에만 머무른다면 우리는 평생 몇 종류의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재료나 양념 한두 가지를 바꾼 것을 제외한다면 100가지가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몇 년 전 <CNN이 선정한 50가지 세계요리> 기사를 보고 놀랐다.
이 중에서 내가 먹어본 음식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먹어본 몇 가지도 한국 입맛에 맞게 변형된 후에 내 입에 들어온 것이다. CNN이 내 입맛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식도락을 하며 살겠다 다짐한 입장에서는 그 리스트의 대부분을 먹어보지 못했다는 사실, 내 혀가 미식에 있어서 세상의 변두리에 위치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슬프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미식 여행. 어떤 훌륭한 음식은 여행의 목적 그 자체가 되기도 하며, 그렇지 않더라도 여행의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또한 음식은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풍부하게 해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막 성인이 되었을 무렵 친구들과 같이 일본 여행을 갔다. 그때는 인터넷 로밍이나 와이파이 에그같이 여행하며 인터넷을 자유롭게 쓰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는 시기였다. 실시간으로 내 위치를 스마트폰 지도 앱에서 확인하는 대신, 종이 지도나 여행 팸플릿 혹은 가이드북을 들고 길을 찾아다니며 여행을 했다. 그 여행에서 가장 기억 남는 음식이 하나 있다. 어느 날 아침 조금 일찍 일어나, 근처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을만한 곳을 찾던 중 근처의 한 라멘집을 블로그였던가 구글 지도에서 발견했다. 평점과 사진을 보고 괜찮다 싶어서, 위치를 기억한 후 길을 나섰다. 숙소를 나와 가게를 향하는데, 가게가 아직 시야에 들어오기도 전에 꼬릿한 돼지 냄새, 아니 돼지 향이 나기 시작했다. 가게 앞에는 더욱 강한 향이 퍼지고 있었고, 문을 열기도 전에 정장을 차려입은 일본 회사원이 몇 명 기다리고 있어서 맛집임을 짐작게 했다.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배운 어설픈 일본어로 더듬더듬 읽어가며 자판기로 주문을 마치고 카운터석에 앉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받은, 그 돈코츠 라멘의 맛을 지금도 기억한다. 돼지 향은 숨기지 않을 테니 이 강렬함을 즐길 수 있는 사람만 오라는 듯한 대쪽같이 진한 국물과, 그 국물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가느다란 면발, 그뿐만 아니라 가게가 있는 거리나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 가게 오픈 준비를 하는 점원들도 기억난다. 이후로 나는 일본 여행을 할 때마다 그 향과 맛, 장면을 떠올리며 라멘 가게를 항상 찾아간다. 돈코츠 라멘 가게를. 이렇듯 어떤 여행은 한 음식점이나 한 그릇의 음식으로 기억되며 그 기억은 이후의 여행과 삶에도 영향을 준다.
나에게는 특정한 상황이나 시간에서 즐기는 음식들이 몇 가지 있다. 생일에는 미역국이나 갈비찜, 겨울에는 방어와 굴 등등. 자주 먹는 음식들은 아니지만 가끔 즐기면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처럼 반갑다. 누구에게나 그런 음식 몇 가지는 있을 것이다. 여행을 떠나 다양한 음식들을 접하는 것은 이런 반가운 친구들을 사귀는 일과 같다. 아직 지구엔 내 수저가 닿지 않은 나라들이 많다.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날 기다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