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여행 에세이 20
이전 멕시코를 한 달 여행한 후, 옥수수, 살사, 주류, 디저트, 고춧가루라는 5개의 키워드로 멕시코의 식문화에 대해 정리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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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를 한 달 여행하고 난 지금, 이전과 마찬가지로 콜롬비아의 식문화에 대해 내 멋대로 5개의 키워드로 정리해보려 한다.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닭고기, 감자, 커피, 주류, 과일.
세계 어디를 가든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고기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다. 콜롬비아도 마찬가지로 그 세 종류의 고기를 즐겨 먹는다. 가격도 아주 저렴하다. 닭, 돼지는 물론 심지어 소고기도 마트나 정육점에서 100g당 1000원 근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소고기가 그렇게 싸다면 매일 소고기를 먹는 것이 이득 아니냐고? 절반은 맞다. 만약 맛있게 요리하기 위한 적절한 도구와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다. 콜롬비아의 소고기는 한국보다 질기고 육향이 강하다. 코스트코에서 파는 미국산 소고기(중 기름 없는 부위)와 비슷하다. 스테이크용 부위를 사서 몇 번 구워 먹어 보기도 하고, 소갈빗살로 요리를 해보기도 했는데 숙성을 하지 않고 먹기에는 꽤 질겼다. 요리할 만한 여건이 안 된다면 밖에서 Parrilla (그릴) 나 Asado(구이)라고 쓰여 있는 식당 중 리뷰가 좋은 곳을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소고기 스테이크를 충분히 싸게 즐길 수 있다. 씹는 맛과 진한 육향을 즐긴다면 좋은 선택이다.
돼지고기도 비슷하다. 지방이 있는 부위는 별로 없고 살코기가 대부분이다. 딱 한 가지 예외가 치차론 Chicharron이다. (치차론이라고 하면 멕시코에서 주로 먹는 돼지껍질 튀김을 말할 때도 있고 튀긴 통삼겹살을 이야기할 때도 있는데,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물론 후자다.) Bandeja paisa 반데하 파이사 라는 밥, 콩, 계란, 아보카도 등과 각종 고기가 한 그릇에 모조리 올라가 있는 메데진 전통 요리에서 쉽게 찾을 수 있고, 따로 전채 Entrada로 시킬 수도 있다. 편의상 삼겹살이라 말했지만 대부분 껍질이 포함되어 있는 오겹살이다. 이 부위를 직접 사다가 썰어서 요리해 보았는데 껍질의 쫀득한 식감이 예술이다. 그렇지만 다른 돼지고기는 그다지 인상 깊지 않다.
앞에서 소와 돼지에 대해 이야기를 실컷 했는데 사실 이번 키워드는 닭고기다. 콜롬비아에서는 소나 돼지보다 닭고기가 나에게는 더 인상 깊었다는 이야기다. 멕시코에서는 반대였다. 멕시코는 타코가게 Taqueria가 어딜 가든 널려 있는 나라이기에 다들 고기 굽는 실력이 좋아서 그런지, 맛있게 먹은 소나 돼지고기 요리가 많았다. 그렇지만 멕시코에서 먹은 닭고기는 대부분 기대 이하였다. 멕시코에서는 화덕구이 혹은 전기구이 방식으로 기름을 쫙 빼서 요리를 하는 가게가 대부분이다. 퍽퍽해 먹기 어렵고 곁들일 소스도 신맛이 강한 소스가 대부분이라 별로다. 거기다 다른 요리에 들어가는 닭고기도 대부분 가슴살인 것을 보면 멕시코에서는 맛있는 닭고기를 기대할 수 없다. 그렇지만 콜롬비아의 닭은 다르다. 닭다리는 말할 것도 없고 가슴살도 부드럽다. 특히 허벅지살은 야들야들하고 기름의 감칠맛도 좋다. 길거리에서 파는 꼬치구이나 화덕구이, 닭튀김은 물론 맛있고 닭볶음탕과 닭갈비 등 요리해 먹어도 기가 막히다. 가격도 훌륭하다. 한국 영계의 두 배는 되는 크기의 닭 화덕구이 한 마리가 15000원도 되지 않는다. 비싼 식당에 간다면 물론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그렇지만 평범한 가격대에서 소, 돼지, 닭 중 선택지가 주어질 때 닭을 고른다면 실패할 일은 없을 것이다.
고기 이외의 단백질 섭취수단인 생선 이야기를 간단하게 해 보자. 콜롬비아 북부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모아라 Mojarra라는 물고기를 튀긴 Mojarra frita를 많이 먹는다. 내륙산간지방에서는 송어 Trucha를 튀기거나 스튜형태로 먹는다. 내륙지방에서는 흔하게 먹지는 않는 듯하다.
안데스 산맥은 남아메리카 대륙의 서쪽 태평양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다. 7 국가를 관통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산맥이다. 콜롬비아에는 세 줄기의 안데스 산맥이 북부에서 서남부로 지나간다. 산맥의 동쪽은 열대 초원과 아마존 우림으로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다. 서쪽도 평지가 적고 우림지역이라 부에나벤투라 항구를 제외하면 인구가 적다. 따라서 대부분의 콜롬비아 사람들은 안데스 산맥이 끊기는 북쪽 카리브해 연안과 세 줄기의 산맥 사이사이의 도시에 거주한다. 멕시코 하면 옥수수인 것처럼, 안데스 산맥 하면 바로 감자다. 안데스 산맥 사이사이에 사는 콜롬비아 사람들이 예전부터 감자를 즐겨 먹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식당에서 닭튀김을 시키면 감자칩을 같이 내어주고, 스테이크를 주문해도 당연하게 프렌치프라이를 곁들여 준다. 길거리 닭꼬치를 사도 웨지감자 혹은 프렌치프라이가 같이 나오거나, 꼬치 끝에 알감자를 끼워주기도 한다. 거기다 맛있다. 다른 건 몰라도 감자튀김은 특히 맛있다. 한국 감자튀김에 사용되는 감자는 주로 수입 냉동산을 사용하는데, 여기는 감자튀김에 적합한 신선한 감자를 얻기 쉽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탄수화물로 감자만 먹는 것은 아니다. 쌀밥도 흔하게 먹고, 아레파나 파타콘을 많이 먹는다. 쌀은 동남아 쌀과 비슷해서 얇고 길쭉하고 날리는 쌀밥이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쌀을 사려면 sushi라고 적혀있는 쌀을 사면 되는데, 멕시코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콜롬비아에서는 구하기 어렵다.) 아레파 Arepa는 옥수수가루 반죽을 구운 빵이다. 길거리에서는 빵 사이에 고기나 치즈 등을 넣은 아레파를 팔기도 하는데, 식사로 할 때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얇게 구운 아레파가 주로 나온다. 파타콘 Patacon은 플랜테인(요리용 바나나)을 얇게 잘라 튀겨낸 요리다. 피타콘은 식사에 곁들여 밥처럼 먹기도 하고, 오가오 hogao라는 콜롬비아 전통 토마토소스를 곁들여서 간식으로도 먹는다.
콜롬비아에서는 이 단백질 (소, 돼지, 닭)과 탄수화물 (감자, 밥, 아레파, 파타콘)들을 오늘의 정식 Menu del dia의 형태로 많이 먹는다. 콜롬비아의 (관광객용 식당이 아닌) 일반 식당에서는 오늘의 정식을 대부분 판매한다. 수프, 단백질이 포함된 메인메뉴, 밥/감자/아레파/파타콘 등의 탄수화물, 샐러드, 후식(혹은 주스)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메뉴도 다 같이 판매하면서 오늘의 정식을 다른 메뉴보다 저렴하게 파는 방식인 가게도 있고 오늘의 정식 한 메뉴만 파는 가게도 있다. 이런 가게는 메인메뉴만 닭/돼지/소/생선 등 여러 가지 중에서 1택이고 그 외 수프나 밥, 샐러드, 주스 등은 매일 바뀌지만 선택지는 없는 방식이다. 어딜 가든 수프는 대부분 치킨스톡의 맛이 강하게 느껴지고(맛없다는 뜻은 아니다.), 메인메뉴/탄수화물/샐러드는 한 접시에 내어진다. 메인메뉴, 그러니까 단백질의 양은 약간 적다. 맛있게 먹고 싶을 때는 좀 부족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한 끼 배를 채울 때는 딱 적당한 정도의 양이다. 일반적으로 5천 원 정도에 먹을 수 있는 저렴한 한 끼다. 콜롬비아의 백반 같다고나 할까.
지금까지 콜롬비아의 단백질과 탄수화물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 보았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이러한 단백질과 탄수화물만 섭취하면 되지만, 인간답게 산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맛있는 것 3가지 - 커피, 술, 과일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