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여행 에세이 19
도시보다 마을이 더 좋다. 시끌벅적하고 다채롭지만 그 면모를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도시보다, 조용하고 아늑하며 마치 내 고향처럼 편안한 마을이 더 좋다.
콜롬비아 제2의 도시이자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도시인 메데인 Medellín에서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산길을 세 시간 반 동안 달리면 하르딘 Jardín이라는 산 위의 조그만 동네를 만날 수 있다. 하르딘 마을 중심에는 아름다운 가톨릭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성당과 그 앞의 광장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3-5 블록이 마을의 전부다. 마을 어디에서나 성당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5일간 머물렀다. 아침 식사 후, 점심 식사 후, 해가 지고 난 후, 그 외에도 시간이 남을 때 마을을 산책했다.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마을 구석구석 둘러볼 수 있다. 이렇게 몇 번 산책하고 나면 마을 전체를 알게 된다. 여기엔 마트가 있고, 저기는 미용실과 과일가게, 저쪽에는 파스타를 잘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지도를 보지 않고 마을을 다니는 데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어진다. 거기다 요리를 하면 마을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더 받을 수 있다. 마트, 정육점, 야채가게 등 관광이 아닌 생활에 필요한 장소들을 방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은 마을은 며칠만 지내더라도 쉽게 친숙해진다.
여행객들은 짧으면 하루나 이틀, 아무리 길어봐야 일주일을 머무른다. 이 정도의 기간에는 한 도시에 쉽게 친숙해지지 않는다. 도시는 원체 넓어 여행객들은 그중 유명한 장소 몇 개를 갈 수 있을 뿐이다. 도시의 가게들은 몇 년 지나지 않아 쉽게 다른 가게로 바뀌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풍경이 바뀌기도 한다. 그렇지만 작은 마을은 잘 바뀌지 않는다. 그렇기에 도시에 방문할 때는 수많은 방문객 중 한 명이라고 자신을 인식하지만, 마을을 여행하며 머무르다 보면 내가 마치 마을의 구성원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건강한 착각이다. 그 착각은 고향이나 수년간 거주했던 곳이 아닌 다른 지역, 심지어 먼 나라에도 내가 구석구석 알고 있는 장소가 있다는 만족감을 가져온다. 사직서를 가슴속에 품고 다니면 마음만 먹으면 때려치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인해 직장생활의 여유로움을 가져다준다. 마찬가지로 먼 나라의 마을 하나를 속속들이 알게 되면, 일상생활 중에 고난을 만나더라도 나에게는 떠날 곳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그 고난을 버텨낼 수 있다. 요즘 한 달 살기가 유행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 이유일지 모른다.
여행지에서 할 수 있는 수많은 일이 있다. 유적지 방문, 박물관이나 미술관 방문, 쇼핑, 맛집 찾아내기, 그냥 누워서 휴식하기, 현지 재료로 요리하기, 여행객이나 현지인과 교류하기 등등. 나는 그중 하나로 마을 산책을 추천한다. 특히나 작은 마을을. 발길 닿는 대로 마을 이곳저곳 산책하며 친숙해진다면, 그 마을은 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여행에서만 가능한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다.
후일담) 이 글을 쓰고 난 후 하르딘을 떠나 메데인에 도착했다. 지혜와 나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거실1 방1인 깔끔한 오피스텔에 널찍한 부엌이 있고 웰컴간식도 준비되어 있었다. 깔끔한 식기,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가능한 스마트티비, 새것이나 다름없는 세탁기, 화장실에 비치된 탈취제까지. 하르딘에 있을 때는 야외나 다름없는 숙소에 화장실도 멀리 떨어져 있고 벌레와 함께 잠을 잤는데… 도시가 최고다.